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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지원 선진화는 그동안 각 부처별로 운영되던 폐쇄적인 기자단의 특권적 편의 대신 개방된 브리핑과 합리적 절차를 통한 취재지원을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의 뒤틀린 관행을 이제야 사회 발전 정도에 맞게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를 언론탄압-취재봉쇄로 몰아가며 언론의 자유가 마치 ‘특권적인 취재 편의를 통해 달성된다’는 과거의 낡은 관행과 고정관념에 집착하며 취재지원 선진화의 본질을 오도하고 있다. “기자를 불편하고 하고 기자를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은 취재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라는 엉터리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
이들 주장의 밑바탕에는 ‘취재 편의’‘현장 접근’‘언론의 역할’ 등 3가지 부문에서 중대한 억지와 오해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오해를 털어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거대한 언론의 특권의식과의 힘든 싸움이다.
1. 특권적 취재-편파적 보도-무책임한 답변의 관행을 계속하자?
우선 사회적 수준과 무관하게 기자가 취재하는 데 편리하기만 하면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것일까? 최근 언론들의 주장은 특권적 편의와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절차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과거의 특권을 고집하는데서 빚어진 억지다.
언론들은 정부가 기자를 쫓아내고 취재를 봉쇄한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과거처럼 부처마다 기관마다 기자실을 두고, 한정된 기자단이 담당 과장, 국장 사무실을 언제든 들어가 정책정보를 묻고 공무원도 개인적 판단에 따라 ‘무책임한’ 답변을 나누기도 하는 방식을 고수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이 개방화되고 다원화된 사회 시스템에 맞지 않고, 조율되지 않은 정보의 유통과 편파적 보도, 유착관계 등을 유발한다는 판단아래 정부 합동 브리핑센터로 통합하고 정책홍보관실을 통한 조율된 언론접촉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언론들은 마치 취재지원 선진화가 기자와 공직자의 접촉을 완전 차단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취재지원 선진화는 취재원과의 대면 취재 또는 전화통화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며, 다만 이를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공식화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거처럼 사실상 출입기자단이 무책임한 정보와 편파적 보도를 양산해 사회적 발전을 저해할 것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방법과 절차를 통해 보다 책임 있는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정책홍보관리(관)실을 경유하는 합리적인 취재를 통해 언론은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정부기관과 소속 공무원을 상대로 얼마든지 대면 또는 전화통화 취재를 할 수 있고, 공무원은 언론의 취재요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취재를 지원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정정당당한 취재 요구를 회피할 공무원이 없어지고, 오히려 언론은 보다 책임 있는 공직자의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이제 우리 언론은 자꾸 ‘특권적 편의’만 억지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언론도 룰을 지키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폐쇄적 기자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현장취재라는 억지
언론들은 부처별 기자실 존치 이유로 ‘현장’을 이야기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기자실은 현장이 아니다. 기자실은 그야말로 ‘기자들을 위한 편의공간’일 뿐이다. 과거 부처별 기자실이 장관실과 가까이 있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넓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론과 정부가 적당히 유착하던 ‘과거’일 뿐이다.
장관이 기자실에 내려와 환담을 하며 단지 출입기자들과의 ‘친소관계’만으로 정보를 유통하거나 정책추진 동력을 얻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으로는 오늘날과 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 시장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할 정책기관의 정보가 정제되지 않고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됐을 때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시장 왜곡과 사회적 혼란의 비용은 엄청나다.
기자실이 기관마다 있어야 ‘정책감시’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자가 얼마나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며 전문가 네트워크를 통해 정책의 역사와 배경 그리고 정책대안을 가지고 있는지가 기사의 질을 말하고 제대로 된 정책감시가 이뤄진다.
개인 사무실 같은 과거의 폐쇄적 기자실이 개방된 합동 브리핑센터의 송고실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취재에 임하는 기자의 자세에 따라서는 ‘개별 취재 활동’에 달라진 제약이 없다. 언론들은 “브리핑만 받아쓰면 개별 취재가 불가능하다”는 억지논리를 펴고 있지만 진정 브리핑만 받아쓸 언론과 기자는 없다. 개방된 통합 브리핑룸과 송고실에서도 얼마든지 심도 있는 분석취재와 개별취재를 할 수 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은 부처별 대변인제를 통한 충실한 브리핑을 다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취재를 위한 합리적 지원과 정보공개를 약속하고 있다.
정보는 폐쇄적 기자단이 모여있는 기자실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루트를 통해, 그리고 ‘기자실 현장’이 아닌 진정한 ‘현장’을 찾아가고 독자에게 다가갈 때 비로소 잡히는 것이다.
3. 사회발전과 법·제도를 부정하는 비리감시의 궤변
언론들은 마치 부처와 기관마다 폐쇄적 형태의 기자실과 기자단을 운용하고 기자들이 정부기관 사무실을 무단 출입할 수 있어야 비리 감시와 인권보호가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기자는 국민이 시장을 통해 선정한 대표 감시자다’(한국일보 8월20일자)라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갑자기 우리나라가 사회적 비리 감시를 기자들과 언론에 맡겨 놓고, 언론의 고유한 역할이 마치 공무원의 숱한 비리를 감시하는 일로 둔갑하는 어리둥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공정한 수사보다는 각종 ‘게이트’라는 이름의 ‘아니면 말고 식’ 편파보도가 더 공신력이 있고, 사법적 판단 보다는 여론 재판이 더 사회적 영향이 있는 그런 사회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공직 비리에 대한 감시를 언론이 전담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설사 일부 공공기관의 인권침해 사례나 잘못된 관행, 그리고 공직자들의 비리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자들의 업무공간 무단 출입과 개별 기자실 존재로 감시되고 근절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그리고 민주화된 의식을 통해 하나하나 개선돼 가야하는 것이다.
오히려 낡은 취재 관행과 무차별적인 의혹제기가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 왔다. 언론의 속보 경쟁과 특종 욕심 앞에는 피의자나 일반 공직자는 물론 개인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개인 인권침해와 관련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이 패소하는 경우는 늘어났다.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시대의 언론의 역할은 공정하고 알찬 보도로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고 독자들에게 보다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