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유시민을 만난 날
이제는 친구들 내지는 가족들보다 유시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납니다.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순간 만큼은 이런 하루하루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시민광장에 적을 두게 되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닮은 부분을 조금씩 찾게 되는 그 기쁨은 살면서 좀처럼 만나지 못할 소중한 것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저는 대학생이 아닌데 8월말이라는 시간이 다가오니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이 여전히 대학생의 물이 덜 빠진게 확실한 듯 합니다.
군을 갓 제대한 파릇파릇한 예비역들처럼 갓 복학한 2005년 1학기의 저는 군대가기 전에 ‘빵꾸’낸 학점을 제대로 메꾸고 졸업할 때까지 가열차게 취업에 필요한 조건을 쌓아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 취직을 하겠노라는 꿈을 안고 교문에 조심스런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근3년만에 접하는 학교의 수업들은 굳어버린 예비역의 머리로 흡수하기에는 좀 곤란한 감이 없지않았지만 질 수는 없다는 굳은 의지로 따라 잡을만한 수준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복학 첫 학기가 끝나고 받아든 성적표는 썩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남 부끄럽지않을 정도는 되더군요.
그렇게 나름대로 성실한 1학기와 학점을 맹렬히 메꾸기 위한 계절학기로 불타오른 여름방학을 보내고, 1학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으로 2학기를 시작했습니다.
1학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생활 패턴도 1학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저보다 먼저 복학한 친구녀석들과 가볍게 소주 한 잔 정도하면서 개념 없는 후배들을 씹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수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죠.
2학기 중간고사를 치고 살짝 숨을 돌리려는 와중에 학교 교문 즈음에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시민이라는 국회의원이 학교에 강연을 온다는 것 이었죠. 사실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이라고는 딱 두 명의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유시민과 전여옥. 왜 이 두 명만 알고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을 안 드려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유시민의원이 학교에 오기 한 달 전쯤이었나, 손석희 아나운서가 학교에 강연을 하러 왔을 때 학교 대강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사실 손석희 아나운서가 나름대로 인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교 대강당이 가득 차고, 수업이 있는 친구들은 수업을 제끼면서 들으러 가고, 자리가 가득차서 문 밖에서라도 듣고자 안간힘을 쓰는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었죠. 사실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일이 있으니까 괜히 무슨 말 하는지 듣고 싶더군요. 결국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막연하게 유시민의원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그런 사태가 일어날 듯 하여, 수업을 제끼고 한시간 전부터 대강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손석희 아나운서의 경우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더군요. 나름대로 객석을 가득 채우긴 했지만 문 밖까지 꽉 차서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예비역의 단순한 머리는 ‘아, 손석희보다는 덜 유명한가 보다’라는 아주 무식한 판단을 내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강연 당시의 감흥이래봤자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습니다. 정치현실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똑똑해봤자 정치가겠지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 나도 유빠구나’라는 걸 자각하는 지금 같으면야 ‘오호라~’하면서 들었겠지만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굳이 꼬집자면 말 참 잘한다 이 정도 였겠죠.
어설픈 정치의식
9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의 대학들은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애를 썼습니다. 6,70년대 의무교육과 경제성장기의 패러다임안에서 삶을 체험한 이들은 남들보다 더 배우는 것이 살 길이다라는 사고방식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짧은 역사의 전통적 사고방식이 그나마 먹고 살만해졌다고 회자되는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접어들자 대학교육의 급격한 공급 증가 현상으로 그 영향력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전체 졸업생수에 대학정원수가 점점 수렴하기 시작하며 각 대학들은 몸집을 불리거나 이리저리 독특한 전공을 개설해 각자의 생존방식을 찾아나갔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변혁을 꼽자면 복수전공과 학부제의 채택이라 하겠습니다.
비슷한 성질을 가진 전공들을 하나로 묶고, 최소한의 전공이수과목의 구분만을 둔 채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는 지극히 효율적인 방식이 바로 학부제였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구분만을 남겨두기에 전공의 선택이 과체제에 비해서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었지요. 그래서 남는 학점으로 다른 전공을 이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을 테구요.
제가 입학할 당시는 과체제를 경험한 선배들이 학교에서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부제임에도 불구하고 입학당시부터 신입생들의 전공을 나누고 그것을 과에 속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덕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그냥 경제과라는 소속을 가지게 되었지요.
제가 속한 경제과라는 곳은 나름대로 운동권이라 불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내에서 주류를 이룬다는 세력들이 소위 운동권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과 차원의 사업들은 대부분 대외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행사들에 편중되어 있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경제과의 일원으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원자주화투쟁’에 가담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록금동결, 재단 전입금 확충과 재단 예산 사용내역 공개를 주장하는 과의 선배들을 따라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교무처의 집기들을 들어내고 창문에 계란을 던지는 일련의 행위들이 제 대학생활의 첫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마냥 선배들이 손을 붙잡고 이끄는 데로 간 것이었죠. 사실 좀 재미는 있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누구와 으르렁대는걸 좋아해서 그런것인지, 사람이 근본적으로 타고난 유전자안에 그런 본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요.
하지만, 이유없는 행동은 싫었습니다. 그냥 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 시키는 데로만 하면 다 잘된다고 하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식으로 설득하는 선배들을 멀리하게 되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순 투성이였습니다.
87년의 6월을 뜨겁게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압받는 민중들의 해방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과 그 안에서 누릴 무한한 자유를 꿈꾸며 말하는 그들이 후배들에게 먹지도 못하는 술을 잔뜩 먹여놓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단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싸가지 어쩌고하면서 뺨을 후려갈기고, 군기 운운하며 군사 파쇼스러운 행동론을 강요하는 것에서 적잖이 염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교생활 순탄하게 잘하려면 그들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된 동기 녀석들은 곧 그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언어로 새로이 들어오는 후배들을 ‘선도’해 나갔습니다.
그냥 마음맞는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고 온갖 귀여운 사고들을 저지르고 다니던 와중에도, 그런 이들을 향한 자그마한 항거는 저의 일상이자 유흥이었습니다. 과게시판을 점령하고, 선배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어설프게 비판하고, 학기초에는 반갑게 인사하던 선배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제게 쌓이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사리분별에 맞지 않는 행위들이 눈에 거슬려서 그것을 어떻게든 쓸어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좀 성실해진 저였지만, 그런 기본적인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극렬해졌다고 할까요. 학생총회에서 연설하는 학생회장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멱살을 붙잡고 단상에서 끌어내고자하는 운동권의 변함없는 방법론에 다시금 실망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행태를 보면서 자연스레 대자보를 휘갈기고, 학교 게시판을 저의 어줍잖은 의견으로 채우면서 댓글로 밤을 새워 논쟁하는 일상을 이어 나갔습니다.
학교생활은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만났지요.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
노무현이 좋아진 계기는 그냥 인상이 좋아서였습니다. 5공 청문회에서 명패를 던진 건 알지도 못하고 삼당합당에서 오롯이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도,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에 내려가서 낙선한 것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수더분하고 푸근하게 생긴 인상이 좋아서였죠.
그런데 사람 볼 줄은 알았나 봅니다. 노무현의 인상이 좋아서 관심을 가지다가 제가 접할 수 있는 모든 매체로 알아본 노무현은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분명히 다른 모습을 가진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침없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확실한 사람. 자신을 믿어달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언제나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사람.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이제 제 안목에 자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노무현을 좋아하고나서 사람들한테 왜 좋아하는지 설명을 해야 되는데 막연히 인상이 좋아서 좋다고 그러면 좀 쪽팔릴거 같아서 저런 식으로 좋아하는 이유를 나중에 만들었습니다. 사람들한테는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죠. 이제야 사실대로 밝히는군요. 그런데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별로 틀린 거 없잖아요.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유도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꽤나 오랫동안 난 유빠가 아니야라고 주장하고 다녔죠. 죄송합니다. 저 유빠 맞습니다. 좀 어설프지만. 사실 유빠 아니라고 말해도 믿는 사람도 없었습니다만서도.
유시민도 화장실 갑니다.

유시민의원을 처음 가까이서 대면한 것은 2005년 12월 꽤나 추웠던 날, 영등포시장에 있던 옛 참정연사무실의 화장실에서였습니다.
11월 강연회가 끝나고 참여연대로 잘못 알고 발을 디딘-이제는 지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후부터 뻔질나게 드나든 참정연 사무실은 재밌고 신기한 놀이터였습니다. 분명 정치조직이지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들 다하고 노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참정연 송년회 연습을 하던 날이었는데,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중에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서서 저와 같은 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익숙한 얼굴은 바로 유시민의원이었죠. 뭔가 신기하고 반갑고 그런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사하기도 좀 이상한 상황이고, 그냥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볼 일이 다 끝났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계속 서 있었습니다.
유시민의원은 자기 볼 일이 다 끝나니까 유유히 나가더군요. 나중에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데 어찌나 뻘쭘하던지요.
유시민의원이야, 그런 세세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저의 뇌리속에는 제대로 틀어박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유시민도 화장실에 간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여성유티즌 여러분, 유시민도 화장실 갑니다. 다른 남자들처럼 할 거 다 하는 사람이에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 유시민이 대선에 나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인으로써 이 사람이 좋다라고 생각한 마당에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에 머물러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건 어떻게 보면 좀 모자란 행동일지도 모르죠. 이왕 이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거 오를 수 있는 데까지는 올라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지자로서 마땅한 행위가 아닐까요. 그 행위가 투표에서 그 사람을 위한 한 표를 던지는 것, 몸빵을 뛰면서 온 동네를 유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가득채우는 것 어느 것이든 말이죠.
저는 아주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유복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세끼 걱정이나 학비걱정은 제 차원에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권이라 불리는 학생들과 섞여서 대학생활을 보냈지만, 전경의 진압봉을 구경해 본 적도, 매캐하다는 최루탄냄새를 맡아본 적도 없습니다. 한나라당의 철옹성이라는 대구에서 고등학교시절까지 자랐고, 대학에 올라와서는 어떤 정치서적이나 사상서적을 일부러 접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조선일보를 극렬하게 싫어하지도 않고, 딴지일보같은 인터넷 언론은 천박한 말투가 재밌어서 즐겨보았으며, 익스플로러 초기화면은 언제나 네이버이며 취미는 게임입니다.심심풀이로 사주관상을 보기도 하고, 한 번씩 술에 취해서 로또를 만원어치씩 긁기도 하며, 짧게는 한 달 두 달 뒤를, 길게는 10년,20년 뒤의 삶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명박을 좋아하는 사람들, 노회찬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 중에도 저와 다르지 않은 이들이 분명히 있겠지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문제를 당연히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전 유시민을 좋아합니다. 노무현을 이어받아, 돌아가면 국가위기사태밖에 없는 ‘잃어버린 10년’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게 할 것이라 믿고, 당연한 것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덮어버리지 않을 것을 믿으며, 과거의 추억에 매몰되어 미래를 보지 못하는 교조주의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믿으며, 언제나는 아니지만 최대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항소이유서와 서른 살의 자화상으로 미루어 본 따뜻한 감성과 상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고드는 냉철한 이성은 좋아하는 이유의 옵션쯤 되겠지요.
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세상, 주눅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세상, 내가 좀 여유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세상, 일한 사람들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세상, 출신 때문에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시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는 것이 그저 제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유시민이 조물주가 아닌 바에야 그 모든 것을 이룩해 낼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그를 내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으로 만들고, 그가 이끄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해 그가 이끌도록 하는 노력.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삶은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요.
내가 원하는 세상을 보고, 내 자식과 당신의 자식이 그 세상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 유시민이 전부 해낼 수는 없지만 유시민을 거친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꿈입니다.
그래서 유시민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