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열린우리당을 죽였나?
- 부제 : 우리는 열린우리당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 열린우리당이 사라졌다. 오늘 열린당이 그 숨을 거두었다. 열린당이 죽었다고 슬퍼하는 소위 열린당 사수파 당원들을 보자니 인지상정으로 마음이 아프다. 대부분이 생활인인 그들이 열린당의 패망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동안 식물정당이었던 열린당이 오늘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고 그 숨을 거두었다. 열린당의 탄생과 활동 과정에서 지지자였던 나도 깊은 만감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와 오늘날 열린당 패망의 그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이 역사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먼저 소위 열린당 사수파들이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은 기실 열린우리당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열린당이 뇌사상태에 빠진 식물정당이 아니라 그전에 이미 그 다 죽은 시체인데 산소호흡기를 꽂아놓고 마치 죽지 않은 것 처럼 쇼를 한 것을 왜 모르는가. 이제 무더운 여름철, 그 시체가 썩어가며 온 사방에 악취를 풍기니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게 된 마당에 마치 안락사를 시키는 양 마지막 전당대회를 열어 산소호흡기를 떼어 내고 만 것이다. 그런 마당에 순진한 우리 열린당 사수파들과 김원웅을 비롯한 몇몇 의원이 그나마 그 산소호흡기를 떼지 말라고 애쓰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으로 안쓰러울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인간적 몸부림을 심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국민이라는 위대한 의사가 이미 사망선고를 내려버렸으니 어찌 할 수 없는 도리가 아닌가. 어쩔 수 없다 죽은 건 태우던지 묻어야 한다. 아무리 생전에 위대한 사람이라도 더욱 그런 것인데, 살아서 방탕한 생활로 병들어 몸을 망친 시신이라면 더욱 빨리 태워버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왜 죽은 열린당을 오늘까지 마치 산 것처럼 산소호흡기를 꽂아놓고 이토록 시간을 끌었냐 하면은 아직도 죽은 열린당을 붙잡고 그 시신에 코를 박고 입을 박고 남아 있는 무언가를 뜯어 먹으려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맨 처음의 의문, 누가 열린당을 죽였는가의 의문은 죽은 열린당에서 아직도 무언가를 뜯어 먹으려는 자가 있다면 혹시 그 자가 아닌가 한다. 물론 열린당은 집단 살인에 의해 죽었지만, 그 자가 혹시 주범이 아닌가 한다. 이는 마치 범인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죽은 시신을 숨기고 그 앞에서 적당한 쇼를 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역사는 실패에서도 배운다. 패망에서도 배워야 한다. 누가, 무엇이 열린당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가.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열린우리당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것이 이 긴 글의 주제이다.
백년정당을 추구하다 채 4년을 넘기지 못한 그들의 한계와 오류를 살펴보기 전에 진단의 방향성을 짚어 보자. 혹자는 열린당을 조중동 사이비 언론이 죽였다고 억울해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확하게 범인을 알 수 없다. 그들이 몇 대 때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죽음에 이르게 한 요인으로 볼 수는 없다. 열린당의 사망원인은 분명 외부의 충격에 의한 외상이 아니라 사망요인은 암과 동맥경화, 간경화와 같이 주로 내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 넘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발목을 잡혀서 넘어졌다고 사람이 쉽게 죽겠는가. 그렇게 자꾸 남 탓을 하면 국민이라는 위대한 의사가 내린 열린당 사망선고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 안을 수 없는 것이다.
2004년, 152석의 원내 제일당이 2007년, 3년 만에 사망한 이 전무후무한 한국 정치사의 엄혹한 교훈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열린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병과 범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도 죽음에 이르는 그 병의 치료약을 찾지 못하며 열린당을 죽인 살인자를 잡지 못하게 된다. 또한, 열린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병과 범인에 대한 처방과 처벌이 없다면 그 병균과 범인들은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민주신당을 또다른 제물로 삼을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점 각성하여야 할 바이다. 나아가 자신의 병력과 병균을 그대로 가지고 민주신당에 오르고 하는 사람들의 무모한 형태를 볼 때 어렵게 시작하는 신당이 출발선상에서 더러운 병균에 감염될까 저어되어 부득이 이 글을 쓰게 된다.
지금은 유시민처럼 죽은 시체 옆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대선 출마를 할 것이 아니라, 썩고 병든 시신이라도 후세를 위해 그 병세를 기록하여 이제라도 예방하고 재발을 방지하기위해 차분하게 해부를 해보야 할 때이다. 해부에 방해되니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은 방해하지 말고 좀 조용히 하거라.
이 시신의 사인 해부는 나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썩은 살점이 묻더라도 먼저 메스를 들어 죽은 장기를 파헤치기로 하겠다. 선배 제인들의 더 명쾌한 해부와 진단을 바라는 바이다.
열린당을 죽인 범인과 병균은 첫째, 과제와 목표를 혼동하는 정치이다. 우리의 과제는 반한나라당이고 민주평화세력의 집권이며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목표는 국민이 민생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행복하게 사는 나라이며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통일의 초석을 놓는 나라이다. 그런 목표를 위해 우리는 과제를 해결하고 목표라는 제단에 놓여져야 할 제물이며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열린당은 자신이 목표를 위해 바쳐져야 할 희생양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민주정당으로써 국민의 민생과 행복, 국가의 선진화를 위한 제물임을 인정하지 않고 열린당은 거꾸로 자신의 영속(永續)이 목표가 되어 국민과 국가를 자기 제단에 희생물로 삼으려 달려들었다.
그런 혼동이 아직도 남아있어 열린당이 없으면 마치 온 세상이 망한 것 처럼 패배주의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빨리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을 위해 언제라도 기꺼이 희생물이 되지 못하는 정당은 민주정당이 아니다.
이와 연관되어 둘째는, ‘빠’의 정치를 추구하여 ‘비판적 지지’라는 고상한 정신을 망각한데 있다. 열린당과 노무현은 비판적 지지가 없는 ‘빠’의 정치를 추구하였다. 특히 이른바 노빠들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소수자이며 조중동으로부터 탄압받는 사람이라는 피해자 이미지를 만들어 모든 정치적 사안을 그런 잣대로 꿰어 맞추려고 하였다.
굵직하게만 살펴보아도, 정권 초기의 대북특검 수용과 노무현의 엄청난 오류인 한나라당 대연정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말하고, 노무현의 대선거구제 주장은 지역주의 타파로 무조건 맞다고 말한다. 대북특검과 대연정 주장은 옳은 것이 아니다. 또한 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 타파에 일정 기여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대선거구제는 한나라당을 영원한 영남집권당으로 백년정당으로 만드는 초석이 되는 아주 위험한 발상인대도 마치 누군가가 말하면 생각도 없이 무오류의 복음(福音)인 것처럼 반복한다.
올 제헌절에는 노무현이 내각제까지 꺼낸 것을 보면 이제 민주화 세력의 내용마저 다 까먹으려고 JP의 지론을 들고 나오는 참담함을 보게 된다. 솔직히 노무현 지지자 중에 내각제 지지자가 몇 명이나 있었나, 그런데도 아무런 비판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빠’의 정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열린당과 참여정부의 담론 현장에는 진지한 논의와 토론의 장은 상실되고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같은 ‘빠’적 신앙 간증만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것은 지지자들을 선도하고 내용을 마련하여야 할 정치 담론의 장으로써 ‘서프라이즈’ 등 논객들이 주도한 측면도 있다. 지지자들이 ‘빠’적인 속성에 빠져도 이를 올바로 지도해야 할 ‘노사모’의 지도자들이나 논객들이 한결 더 나서서 “그래 나는 노빠다” 라는 속된 구호를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남용하면서 병든 몸에 올바른 처방은 없고 진통제만 자꾸 먹으니 몸이 나을 턱이 있나. 비판적 관점이 실종된 담론의 장에 빠돌이, 빠순이만 설치고 병든 몸에도 입에 쓴 약은 도무지 먹으려 하지 않으니 죽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진즉에 비판적 지지의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질려서라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셋째, 나아가, ‘빠’의 정치는 결국 옛날 궁예의 정치, ‘관심법(觀心法)’의 정치로까지 막 나가게 되었다. 옛날 궁예도 혼탁한 세상에서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때 백성의 지지를 받아 이 땅에 미륵의 세상을 세우고자 한 개혁가였지만,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자신이 스스로 미륵이라고 칭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이다. 궁예의 최후야 다 알겠고, 그가 살아 ‘관심법’이라는 특유의 정치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그가 한번 사람을 쓱 쳐다보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다 읽고 알게 된다는 것이다.
‘빠’들도 개혁에 방해가 되는 세력이라고 그들이 한번 관심법을 휘두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명 궁물 세력, 난닝구 세력 등 일종의 타도 세력이 되어 버린다. 어떠한 진정성도 노력도 다른 관점도 그들이 한번 눈 뒤집고 쓱 쳐다보면 민주평화세력인지 아닌지 개혁세력인지 아닌지 다 판단하고 규정한다. 말이 필요 없다. 궁예는 관심법으로 수많은 대신들을 죽이고 결국 자신의 처자도 철퇴로 내리쳐 죽였는데, 오늘 '빠‘들의 관심법에 걸려 죽어간 수많은 열린당의 정치인들이 있다. 특히,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근태가 노무현과 좀 다른 얘기했다고 일명 노빠, 유빠들의 관심법에 걸려 철퇴로 맞아 죽어 가는데 어찌 ’빠‘들의 정치가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과 좀 다른 얘기를 하면 모두 다 잡아다 관심법의 철퇴를 휘두르니 누가 무서워 말을 하겠는가. ’미륵관심법‘은 본래 남의 마음과 생각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반성하는 것인데 마치 열린당의 내부는 ’미륵관심법‘이 아니라 궁예의 ’관심법‘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
문제는 그런 관심법적 정치관에 빠지면 나중에 궁예가 관심법으로 일러준 대로 자기 처자식을 의자에 묶고 반개혁세력이라고 철퇴로 머리를 부수는 정신이상자가 될 수도 있다. 아니 나중에는 그런 짓을 못해서 안달이 난다. 누차 말하지만 여러분은 혁명 전위 지하당을 만들어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장혁명투쟁도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열린당은 보다 많은 사람을 묶어세우는 대중적 민주정당이며 의회를 기반으로 한 입헌적 정당이다. 그런데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자꾸 죽어나가는 당을 계속 존속시킬 수는 없다.
넷째는, 분열의 정치를 즐긴 것이다. 후단협의 후과가 있다고 해서, 당시 민주당 내에 지역주의 성향이 있다고 해서 분열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열린당의 선명성 경쟁이 결국 민주당과의 분열로 한국 민주평화세력의 분열로 나타났는데도 이를 무조건 지역주의 타파로만 덮을 수는 없다. 지역주의 타파도 민주와 평화, 민생 행복의 목표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지역주의 타파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목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지다.
물론 분열과 배신에 열 받은 민주당의 오판으로 탄핵이 일어나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쪽박을 차게 되고 국민들이 열린당의 손을 들어 주며 열린당의 탄생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 열린당은 가난한 민주당을 인정하고 손을 잡아 민주평화세력의 통합에 힘써야 했었다. 탄핵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탄핵의 판정은 국민이 다 내려주었기에 국민이 더 원하는 정치를 펼쳤어야 한다. 사실 탄핵으로 열린당은 원내 일당이 되고 민주당은 쪽박을 차지 않았나. 분명히 포용하고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하는 것은 열린당이어야 한다. 그러나 열린당은 계속 민주당을 조롱하기만 하고 탄핵의 책임을 물을 뿐 함께 하지 않는 분열의 정치를 펼쳤다. 잘못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열린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빠지기 시작한 것은 결국 지역주의 타파라는 열린당의 주장이 전국적 민주평화세력의 통합된 정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 기반의 가난한 민주당만 때려잡는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분열을 떨치고 통합의 길로 나가는 것은 승리의 교두보도 되지만, 그 자체로 한국 정치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자꾸만 누구 때문에 안 된다고 변명하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여야 한다. 잘 안되더라도 누가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했는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국민들은 열린당이 분명히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다리고 지켜보다 이제 시한 종료를 내린 것이다.
다섯째 병마는 개혁의 과제를 자신의 정치적 제물로 아전인수(我田引水) 하는 불순함이다. 사람의 뜻이 아무리 옳아도 그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4대 악법 개정 등 수많은 개혁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개혁적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한 기반으로 이를 이용하였다. 민주 정당 내부가 모두 자신의 세력권은 될 수 없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합의하고 힘을 합쳐 개혁의 과제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들은 과제를 이루기보다는 과제를 통해 자신의 세력권을 확보하는데 더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세력이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세력이란 진정성과 올바름으로 얻어야지 편 가르기로 얻으면 사상누각이 된다. 그들은 개혁의 내용을 차근차근 챙겨나기기 보다는 편 가르기가 우선하고, 개혁의 과제가 일차 실패하면 반성하고 다시 시도할 방법을 찾기 보다는 누구 때문에 잘못된 것으로 타인에 그 책임을 돌리고 정치적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는 데 더 혈안이 되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 개혁도 알고 보니 민주당 때려잡는 세력 판도만 추구하고, ‘기간 당원제’, ‘상향식 공천’이라는 당내 민주주의 개혁은 알고 보니 어떤 세력의 정치 세력권 추구에 더 이용하며 진정한 개혁 내용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정치 술수가 되었고, ‘사학법’ 등은 진짜 개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정치적 교환을 하기 위한 떡고물로 사용되었다.
물론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할 수도 있고, 한나라당의 반대로 미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정성은 분명히 국민들에게 각인되어야 개혁의 힘을 모우고 이후라도 추진할 수 있는데, 국민들은 열린당에서 그런 진정성을 느끼기 보다는 개혁 장사꾼들의 비열한 정치 투쟁만 실컷 보았으니 어찌 이를 용서하겠는가.
여섯째는, 세력 싸움에 몰두하다 보니 나아가, 어떤 리더쉽도 인정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작태와 비민주주의적 작태가 만연한 당의 기풍이 그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
대중적 민주정당은 다소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 정당에서는 다소 다른 의견과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 토론과 합의를 통해 결정한 의견과 행동에 대해서는 결정난 사항에 대해서는 성심껏 받들어 나가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즉, 민주주의적 집중제라는 조직의 기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나 열린당은 이러한 조직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 스스로 손해보는 당 기풍이 마련되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자기 먼저 나서서 좀 다른 소리를 내어야 한다. 그래야 언론에서라도 좀 다루어 주니까. 개인적 개성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소신을 억누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자신의 소신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의 합의와 타협을 통해서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당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한 것인데 자당에서는 분명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 집중제라는 것은 민주적 합의와 집중적 행동통일의 원칙이다. 정치사에서 보면 이것이 깨지면 정당도 깨어지게 되어 있다.
이 오류 역시 ‘빠’의 정치 이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결코 상대의 지도력, 전체의 리더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너무나 옳다 보니 민주적 리더쉽에 대한 의무감과 승복의 자세가 없다. 그래서 민주신당에서 벌써 노빠, 유빠들은 자기 편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옛날 후단협 짓이라도 할 태세이다. 한심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쉽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예 책임 의식도 실종되어 버린다.
그동안 열린당에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었다는 것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절정은 열린당이 어렵게 되면서 더욱 명백해졌고 열린당이 최종 사망신고를 하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오늘날 최대 152석이었던 여당, 열린당이 사망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회사가 하나가 망해도 책임지는 사장, 이사가 있으며, 한국 축구가 성적이 안 좋다고 감독 베어벡이라도 물러나는 스포츠 세계가 있는데, 이유여하를 떠나서 결과가 이른데도 내가 이에 책임지고 적어도 내년 총선 불출마에 백의종군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불쌍한 열린당 사수파 지킴이 당원들만 당을 지키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다. 이 무슨 슬픈 일이냐.
마지막으로 열린당의 위기 상황에서도 당을 위해 헌신하는 자가 드문, 그 과정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이득만 따지는 무책임자들의 모임체가 열린당이었다.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유시민이 10명의 의원만 남아도 열린당을 지켜나가겠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듣고 그래도 위안을 삼은 분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적 소돔과 고모라가 된 열린당에 10명의 의인이 있을 리가 없다. 오로지 기회를 보아 대선 출마하려는 10명의 대선병 정치꾼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열린당도 사라지고 열린당 지도부도 사라지고 열린당 국회의원들도 다 사라졌는데 오로지 (구)열린당 친노만 묶어세우겠다는 대선 주자들만 횡행하고 있다. 참 헷갈리는 일이고 염치없는 일이다.
아직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열린당 출신 정치인들이, 소위 열린당 지도부 출신 대선 주자들이 아직도 열린당의 시신에 코를 박고 열린당 정신을 팔아 먹고 있다. 예전에 열린우리당이 어떠한 고상한 정신을 가졌다 하더라도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아무 정신없는 정당. 절대 본받지 말아야 할 정당이 되어 죽어갔다. 그 이유는 그 놈의 정신을 하도 이 놈도 팔아먹고 저 놈도 쑤시고 하여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 창녀같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결한 창당 정신을 지 욕심에 강간한 놈들이 열린당의 지도부 출신들이며 일명 노빠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오늘날 열린당의 순결한 정신은 이 놈 저 놈이 돌림빵 한 걸레같은 정신이 되어 버렸다. 그 남은 쪼가리조차 대선 출마에 나선 놈들이 주워다가 자기 밑을 닦고 있다.
열린당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함께 했던 기간 당원들, 당원들, 지지자들이 열린당 패망의 원흉들을 쫓아다니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참 한심하고 기가 찰 뿐이다. 어떻게 자신의 순결을 더럽히고 자신을 창녀처럼 내다 판 자를 지 서방처럼 모신단 말인가. 어떻게 당을 망치고 죽여버린 그 정치적 살인자들에 한마디 항의도 못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조중동도 참 문제가 많은 언론이지만, ‘서프라이즈’, ‘시민광장’ 이런 인터넷 매체가 또 얼마나 큰 정신적 해악을 가진 매체인지 깨닫게 된다. 얼마나 열린당의 당원, 지지자들이 세뇌되었기에 저런 패망의 원흉들을 따라 멍청히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배신당하고 쳐 맞을수록 더 쾌감을 느끼는 정치적 매저키스트(masochist)가 되어버렸는지... 그 가증스러운 이미지 설정과 세뇌기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열린당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지도부 출신들은 반드시 정치적 심판을 받을 것이며 받아야 한다. 내년에도 총선시민연대가 결성되어 낙선 운동을 벌인다면, 열린당 지도부와 열린당 국회의원들은 전원 낙선 운동 대상자감이다. 선거법 위반, 정치자금 위반도 잘못이겠지만, 국민이 만들어 준 소중한 152석의 원내 제일당을 처참하게 날려먹고 민주평화세력을 끝없는 침몰의 나락으로 몰아 넣은 것은 쉽게 씻을 수 없는 아주 큰 과오이다. 근래 이보다 더 큰 정치적 잘못을 찾기 어렵다. 군대식 집단 처벌을 받는다면 모두 얼차려 감에 영창감이다.
열린당 지도부 출신들은 언감생심 대선 후보사퇴를 하여야 하며, 양심 있는 열린당 출신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양심 있는 시민사회세력이 민주신당의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뒤에서 도와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 남은 정치적 도의이며, 죽고자 하면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여기 저기서 계속 까불면서 ‘빠’들을 이끌고 오늘 하는 말 다르고 내일 하는 말 다른 언행으로 열린당을 망친 그 작태를 그대로 계속하며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다 빨아먹겠다는 폐악를 보인다면 영원히 재기할 수 없는 정치적 사망선고가 뒤따를 것이다.
오늘날 열린당을 죽인 살인자들이 갑자기 민주신당에 나타나 열린당의 정신을 계승하라고 우기고 있다. 우리는 말로만 지껄이고 행동은 정 반대로 하는 것을 ‘정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가 죽인 ‘정신’을 이제 와서 찾는 위선자들의 알리바이에 속아 넘어갈 멍청이들도 아니다.
우리는 열린우리당 패망의 역사에서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종간과 같은 간신 짓을 하여 노무현을 현대판 궁예로 만들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외척의 전횡을 막는다는 구실로 권력을 뭣도 없는 자기들의 사타구니에 낑겨 넣은 십상시(十常侍)에 불과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삼국지의 그 십상시가 불러 온 것이 동탁이라는 괴물의 집권이었다.
그러나 민주신당은 궁예의 관심법이 아닌 왕건의 ‘혼인정책’이 필요한 대통합의 정신으로 뭉쳤기에 저들을 용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보여지는 언행과 태도가 저들이 정치 생명의 연장이냐 소멸이냐를 판단하는 냉혹한 기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구)열린당 당원 및 지지자 여러분, 이제 그만 무분별한 ‘빠’의 정치를 종식하고 건전한 지지자로 돌아오라. 이제 신당은 과제와 목표를 혼동하지 않는 비판적 지지자들의 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민생 제일주의의 기치를 높이 세우고 민주주의와 민주적 집중제의 기풍으로 당 운영을 하며 말만 앞세우는 정치가 아닌 일치의 흔들림 없는 행동주의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이것만 하여도 크나큰 정치 발전이다. 민주신당은 정치가 이제 사람을 살리고, 개혁이 이제 민생을 살려야 함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열린우리당이 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마지막 충고는 열린당 출신의 사람들은 모두 대선 출마를 할 것이 아니고 손학규가 행한대로 그 반에 반만이라도 민심대장정을 떠나 그들의 정치적 과오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염치없지만 착하신 우리 국민들이 또 한번 우리에게 기대를 해 주시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도 오늘 열린당의 시신이 마치 가마떼기에 싸여 죽음의 골짜기에 내던져진 날에 그 열린당의 살해자들이 손에 묻은 피를 씻지도 않고 민주신당에 입당하면서 손학규를 비롯한 또 무슨 세력을 타도대상으로 삼아 비열한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마타도어를 일삼고 있다. 정말 통탄할 노릇이다. 반성은 커니와 적반하장이요 안하무인도 유분수이다.
유시민이 바로 그 장소에서 소수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춤추고 노래하며 대선출마를 선언할 것이 아니고 하루라도 슬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출발이 그래서는 안 된다. 유시민이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긴다”고 했는데, 그런 형태를 보니 은혜는 돌로 찍고 원수는 물로 씻어 준 인생처럼 보인다.
이제 다 낡아 빠지고 피 묻은 그 정치적 빽바지를 벗어던지고 든든한 민심의 몸빼를 입어야 할 때임을 왜 모르는가. 손학규가 그랬던 것처럼 방법은 모두 지하갱도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임을 왜 모르는가. 혹자는 그것도 쇼라고 폄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국민은 죽은 시체 옆에서 방정맞게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쇼보다는 라면에 탄가루를 씹어 먹는 그런 쇼를 더 원하지 않겠는가. 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그대들을 또다시 죽음의 길로 인도하려하겠는가, 그래도 남은 애정이 있어 마지막 살 길을 알려주는 것 뿐 일세.
끝으로 이순신 장군의 그 일갈이 그들에게 진심으로 전달된다면 이 모든 나의 글을 가름하리라.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死卽生, 生卽死)
2007. 8. 19
대낮의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