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대선때의 '비판적지지'부터 나의 정치적선택과 고민이 시작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전에야 '군사독재타도'하나만으로 충분했던 시간들이었지만 87년 대선때의 '비판적지지'는 많은 고민과 갈등을 불러온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대북특검'을 수용할때도 그렇게 투명하게 가는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판단이 더 우세하였고, '대연정제안' 또한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가장핵심적인 내용때문에 지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파병','한미FTA'등등 격동하는 대한민국은 시시때때로 어려운 정치적선택을 강요해 왔습니다. 어렵고 힘들기만한 그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의 원칙은 항상 '어떤 선택이 나와 국민모두에게 이로울까'란 것이었습니다
지난 5년동안 참여정부에 대한 악랄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건 바로 이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다소의 실수와 패착이 없지 않았지만 '무엇이 국민을 위한 길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한 노짱과 참여정부의 총론에 동의하기 때문에, 수구와 진보를 넘나든 공격에도 튼튼한 방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어렵기만한 정치적선택을 강요받고 또 해야될 시기가 왔습니다. 며칠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의 근거는 때려죽여도 "수구꼴통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것 딱 이거 한가지였습니다.
나에게는 북녘땅이 고향인 연로하신 아버님이 계십니다. 국민의정부 5년동안은 터를 닦는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여정부 5년동안은 생사확인이라도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것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10년은 우리가족에게 희망을 가져다준 10년이었습니다. 아버님 눈감으시기전에 북녘의 고향땅 한번 밟아보게 하는 희망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만약 지난대선때 이회창이 당선되고 북핵위기가 닥쳐왔더라면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님 살아생전 단 하나의 꿈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북녘의 수해소식에 걱정을 놓지 못하시는 아버님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민주개혁정부에 대한 끌어오르는 열망을 한시도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와 함께한 5년간의 밤택시생활은 민주개혁세력에 대한 수 많은 공격들과 부딪혀온 5년이었습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에서부터 시작된 공격은 탄핵을 거치면서 부동산폭등에 정점에 다다랐고 소위 '경제파탄'논리와 힘겨운 싸움을 해왔습니다. 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전시작전권환수등등 사회적 이슈들이 제기될때마다 나는 손님들과의 힘겨운 설전을 벌여 왔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자신을 조선일보 기자라 소개한 손님을 태웠는데 이사람 타자마자 "노통이 경제완전 말아먹어서 택시하시기 얼마나 힘듭니까? 택시에 대한 기사를 준비중인데 좀 도와주십쇼. 소정의 사례도 하겠습니다"이러길래 차 세워놓고 혼구멍을 내준 일도 있었습니다.
"개좃선은 완전 파쇼집단이다. 파쇼가 뭔지는 알기나 아냐?택시도 열심히 하면 먹고 사는데 아무지장없다. IMF이후 힘들지 않은데가 니들말고 또 어디있었냐?. 한국경제 체질개선 하려고 노통이 노력하는거 니들 눈에는 안보이냐? 내가 경제가 안 좋아 택시하기도 힘들다 그러면 니들은 노통때문에 택시 다죽었다 이렇게 기사 쓸놈들이다." 차비도 안받고 내쫒아버렸습니다. 불친절로 신고하겠다고 그러길래 제발 신고좀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개좃선 종업원이 택시기사 신고한 사연 보도해 달라고 이곳저곳 언론사들 쫒아다닐테니까.
지난 5년간의 싸움을 결코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제3기 민주개혁정부를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수 많은 손님들과 나누었던 얘기들도 부당한 공격에 대한 맞짱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제 며칠간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민심은 열린우리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해도 믿지 않을만큼 돌아섰습니다. 그것을 되돌리기엔 이미 돌아 올 수 없는강을 건넜고 시간이 너무도 부족합니다.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고 자체경선을 통해 후보를 확정하여 단일화를 이룬다'는 것에서 가장 두려웠던것이 단일화과정에서 열린우리당후보로 과연 이길 수 있을까?란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만나는 세상과 손님들은 나에게 '열린우리당이 뭐 하나 제대로 한게 있냐?'는 것이었고 이는 '노무현이 뭐하나 제대로 한게 있냐?'는 물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의 뜻을 존중하며 그와함께 가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며칠간의 고민끝에 내가내린 결론입니다. 이번대선이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나가진 않을것이며 손님들은 힘의균형을 요구하고 있다는 지난글에서와 같이 이를 실현시킬 우리의 후보는 유시민밖에 없다는 나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올바른것'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바리케이트 앞에 화염병을 든' 5년전 유시민의 심정이 지금의 내심정이라면 너무 오버일까요. 기꺼이 오버하겠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정해지는 저들의 후보를 물어뜯는 오버도 기꺼히 하겠습니다. 민심을 돌려세우고 우리의 후보가 승리하는 12월까지 손짓,몸짓,말짓을 총동원하여 오버하겠습니다.
나에게는 살아생전 북녁땅에 모시고 가야할 아버님이 계신것이 그 하나의 이유이고 내가 살아온 밤택시5년동안의 삶이 헛되지 않게하기 위함이 또 다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