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심상치 않은 위기를 맞이한 것 같다. 마치 난파선처럼 서로의 살 길을 찾기 위해서 허둥거리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다시 창당의 의미와 뜻을 돌아보고 왜 위기가 초래된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돌아볼 때이다.
1. 바람직한 정당은 무엇인가?
정당은 본래 정책적 지향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선거승리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결성되는 것이다. 정당이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모이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 선거에서 항상 패배하는 정당도 오래갈 수 없다. 정책지향을 상실해도 존립할 수 없다.
우리의 정당들이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 중심인물들이 정책지향보다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지지기반을 가진 것도 정당사를 발전시키는데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유일하게 그나마 부작용이 덜한 요소는 독재와 민주의 구도를 형성한 점이다.
해방후 좌우의 대립, 외세와 민족주의 세력의 대립, 독재와 민주주의 세력의 대립,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적 대립이 정당들의 명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파의 승리, 외세의존 세력의 승리, 독재세력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우리의 정당문화는 많은 왜곡이 있었다.
특히 각 대립세력이 중심인물의 카리스마를 형성하면서 일인보스 정당들이 수 없이 생겨나고 없어지곤 하였다. 현존하는 정당들의 역사도 매우 일천하기 그지없다. 한인물의 정치적 쇠락이 정당의 지속적 존립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왔던 것이다. 이런 정당사의 반복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정당은 뚜렷한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결성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중심인물은 수없이 바뀌고 정책의 지향점도 시대를 반영하여 변할 필요가 있지만 계속 허물고 다시 건설하는 것은 대단히 퇴행적인 일이다. 정당이 큰틀을 유지하면서 중심인물들이 계속 교체되는 쪽이 허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정책지향을 중심으로 모이고, 시대흐름을 반영하여 발전하며, 오래 지속되는 정당이 바람직하다. 일인중심의 정당이 아닌 당원이나 국민의 의사가 상향식으로 잘 반영되는 정당이 좋다. 정책의 지향과 정체성이 국민에게 명확히 알려지는 정당이 되어야 국민의 선택이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아진다.
2. 열린우리당의 창당의미.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엇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한 쪽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모인 것으로 과거의 정당들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싸늘한 시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발전적 형태의 정당이라는 우호적 시각이었다. 돌아보면 대통령의 일사분란한 지휘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후자쪽에 가까운 것이 증명된 셈이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적으로 부패없이 깨끗한 정치와 당원이 주인되는 상향식 정치를 지향하며 출범하였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당을 운영하면 깨끗한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과 일인지배 정당을 지양하기 위하여 당원들에 의한 상향식 정치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당연히 지역기반을 가진 보스가 없으니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추구할 수 있었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고 했다. 약자는 죽고 강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는 잔인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공존이 가능하고 룰이 지켜지는 시장경제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해방후 줄곧 유지되어온 선성장 후분배론에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깨끗한 정치, 잘사는 나라' ,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 ,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당' , '백년가는 정책정당' 이런 것들이 열린우리당의 창당명분이었다. 그런 지향점들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한국정당사에 가장 훌륭한 정당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며 거수기로 활용하던 정치가 사라졌다. 낮은 지지율이지만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아내는데도 성공을 거두었다. 당의 리더쉽을 창출하고 허무는데 당원들의 역할이 작용한 부분도 발전이라 하겠다. 탄핵의 역풍때문이기는 하지만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정청이 갈등하고, 고른 지지율도 사실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 처해 있다. 당원들의 권한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점차 약화되고 유명무실한 장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당이 백년을 가기는 커녕 깨질 위기를 맞고 있기도 하다. 총선승리후 정책지향이 급격히 보수화 경향을 보이며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재보선과 지방선거등에서 지속적으로 참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성공보다는 실패한 부분이 훨씬 커 보인다. 존립도 의심스럽다.
3.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핵심원인은 국민의 기대와 당원들의 꿈에 아랑곳하지 않는 조악한 수준의 정치인들 탓이다. 우리의 정치판에서 선수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은 여전히 구시대적 정치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창당의 명분과 창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것들에 충실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자영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의하여 참여한 정치인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창당의 의미는 시작부터 훼손되고 있었다.
첫째, 기간당원제와 상향식 정치의 후퇴이다. 스스로 당비를 내고 시간을 쪼개서 선거를 돕던 당원들이 정치인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존재였다. 돕는 것도 그리 반갑지 않을 정도로 귀챦고 간섭이 많은 존재처럼 느낀 것이다. 특히 자발적 참여당원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견제하고 당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편법으로 기간당원제를 훼손하려고 노력하였다. 전략공천을 남발하며 당원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둘째, 지역구도 극복과 국민통합의 실패이다. 지역구도에 익숙한 정치인들이 지역적 지지기반의 상실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이 잦았다. 이미 지역적 지지기반을 상실해가던 민주당과의 통합론은 오히려 전략적 역작용을 일으켜 민주당의 지역기반을 복원해주는데 기여하였을 뿐이다. 더욱 불안해진 일부 의원들은 지역적 지지기반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등을 성취하지 못하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마저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혹평으로 어렵게 됐다.
셋째, 당정분리에 따른 역할혼선이 극심하여 분열을 증폭되고 있다. 당정분리라는 것이 대통령의 정당지배를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하는 권인데 역으로 당이 정을 지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하여 당은 건의나 논거가 확실한 비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물론 청문회등을 통하여 검증하는 것은 야당과 반대로 감싸기만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자신들의 역할에는 충실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당이 선호하는 인물을 등용하라고 하거나 당에서 싫어하는 인물을 배제하라고 요구하는 데까지 오버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만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넷째, 개혁입법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민에게 약속한 개혁입법들을 거의 이루지 못하여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잦았다. 당의 정체성과도 같은 개혁입법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핵심지지층의 이탈이 가속화 되었다. 국민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수적 정책들을 들고 나와서 지지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여론을 수렴했다면서 여당의원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거의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요구를 담고 있다. 진정한 여론이 무엇인지 혼동하고, 정치공학적
여론수렴에 대한 깊은 고려가 결여된 것이다.
그렇게 열린우리당은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회복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방법으로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듯하다. 희망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는 백년가는 정당은 커녕 앞으로 1년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4.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살려라.
열린우리당이 거대정당으로 유지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성인자가 사분오열되어 있는 정당이 대통령의 임기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그나마 국민의 지지가 높으면 존속이 가능할 일이지만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수준의 지지율 탓에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서로 헤어지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당을 양분하고 있던 양대계파는 이미 창당의 의미조차 잊은지 오래다. 지금은 선거공학적 계산에 분주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열린우리당은 이미 불편하고 안맞는 옷이다. 그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창당의 명분을 훼손하고 흠집내는 자해를 멈추고 차라리 자신들의 지향에 따라서 당을 나가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옳다. 다른 당에 입당할 사람은 하고 신당을 만들 사람은 만들고 남을 사람만 남으면 된다. 그렇게 헤어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창당의 명분자체가 싫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면 떠나는 것이 옳다. 물론 유력정치인을 중심으로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물중심 정당으로 퇴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에 남을 사람은 창당의 명분과 진정한 백년정당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이미 대통령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선거에서 이길 비젼도 가지지 못한 정당이니 정치자영업자들에게는 의미없는 정당이 되고 말았다. 창당의 명분에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서 창당정신을 유지해가면 된다. 의석이 몇명인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소속만 여당이고 실제로는 야당인 사람들이 함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정당의 정책과 지향점은 일개 정치인들의 자영업 행위에 비하여 훨씬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향식으로 운영되는 정당, 전국에서 지역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고른 지지를 받는 정당이 하나는 존재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위하여 중요한 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당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일들은 유용한 의미가 없다. 당은 두고 맞지 않는 사람은 나가고 맞는 사람은 들어오면서 발전과 쇠락을 반복하는 백년정당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그것을 허물고 언젠가 다시 시작한다면 이런 일은 또 다시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이 아닌 무엇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의석의 다소나 지지율의 고저에 상관없이 지속적이고 예측가능한 정책정당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초심을 오롯이 간직한 사람들이 바로 그 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