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개조론>을 이제야 다 읽었다.
책 내용이야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서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을듯 하다. 그러니 이 책이 독자인 나에게 준 첫머리 느낌만을 써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유시민은 책 머리에 굴원의 <어부사>를 인용하고 프롤로그에는 남명 조식의 <단성소>를 거듭 인용하여서 인상적인 서두를 이끌어냈다. 굴원과 조식의 이 두 명문은 정치적 의미를 떠나서 매우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을 짙게 풍기는 글이다.
흔히 어부사를 모르는 분들이 이 책의 머리에 있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을 굴원이 부른 것으로 오해하는데, 정치적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굴원을 보며 멱라수가에서 만난 어부가 부른 부분이 바로 이 창랑가이다.
당대에 굴원은 정치적으로 비타협적인 노선을 견지함으로써 숭앙을 받았지만, 이러한 굴원의 경직된 태도를 비판하는 어부의 태도 역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처신의 문제에서 많이 거론되어 왔다. 어떻게 보면 굴원은 정치 현실에서 끝까지 싸우지 않고 죽음으로 도피한 것일 수도 있다.
굴원의 초사 이래로 중국과 조선의 문학적 전통에서 흔히 '어부'는 문인이나 지식인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출사해서 치인, 치국의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가 귀향해서 부르는 노래가 주로 어부사이다.
이 때 귀향은 정치적 도피가 될 수도 있지만 또한 수신을 통한 재충전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유시민은 이 <어부사>의 창랑가를 앞머리에 올려놓았을까? 아마도 자신의 가까운 정치적 과거와 현재의 처지에 대한 곤혹스러움과 씁쓸함, 그래도 또 그 혼탁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개인적 판단 등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연속되는 프롤로그는 <단성소>로 시작된다. 이 단성소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상소문으로 너무나 유명한 것이다. 이 상소는 비록 조식이 관료가 아니었지만 정치 현실에 대해서는 관료 못지 않은 철저한 공론의 참여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식은 궁벽한 시골의 선비였지만 정치적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면 어떠한 길도 피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유시민의 단성소는 그 대상이 왕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들이 어느 정도 유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같은 국민은 귀를 기울이지만 아마도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부사와 단성소를 글의 첫머리에 배치한 유시민은 품격 높은 정치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준다. 본문의 글 내용 역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쓰고 있다. 이 정도의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정치인은 소중한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지금도 대한민국 정치인 중의 다수는 국민은 오로지 지금 먹고 쓰고 싸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쓰고 심지어는 늙어서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지도 걱정한다. 게다가 국민은 어떤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공동체의 선한 가치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정치지도자는 위선을 부리지 말고 욕을 먹더라도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유시민의 책에는 그런 점들이 잘 드러나 있다.
때로 언어는 세상을 규정하고 말은 사람을 지배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정치적, 경제적 지식의 담론은 복잡해져서 일반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아진다. 그러므로 정치인의 제대로 된 진짜 소통 능력은 가장 중요한 자질이 된다. 유시민은 우리 정치를 제대로 된 말의 정치가 가능해지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현재 유시민이 꼭 필요한 것이다.
추신) 다 늦게 뜬금 없는 독후감 죄송합니다. ㅡ.ㅡ 다 읽고 나니 한 마디라도 쓰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