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표모반신(박선훈)입니다.
글재주는 없지만 그저 첨맘님에 대한 팬심과 고마움으로 부끄러움을 잊은 채 이벤트에 도전해봅니다. 이벤트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주최의도를 예측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읽힐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고려하기에는 아직 글쓰기 능력과 통찰이 부족하여 잘 알지 못하기에 그저 마음 끌리는 대로 ‘첨맘님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첨맘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첨맘님은 누구인지 이야기하기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 솔직하게 첨맘님을 알고 나서 변화되었던 나에 대해 돌아보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 불의에 대해 느끼고 있으나 앞장서 행동하기보다는 조용히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라는 시에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해서 분노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일 것입니다.
무언가 잘 못되었다는 것은 살아오며 충분히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척적인장애를 가진 아버지,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가난, 집안사정으로 인해 일찌감치 꿈을 포기했던 친구들, 제가 태어나기도 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삼촌의 이유모를 죽음, 고향이 전라도라는 이유로 들었던 사기꾼 소리,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더 많은 문제점들과 사람들의 고통.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는 방향으로 가기보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했습니다. 남보다 똑똑해 보이길 원했고 누군가 날 무시하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사실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쓰면 똑똑해 보일까 싶어 인터넷을 뒤지다 ‘항소이유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는 가 궁금하여 ‘100분토론’을 보다가 첨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감탄과 부러움. 그때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첨맘님이 대단한 것은 학력, 지식, 명석함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입니다.
말로써 고결한 것은 얼마나 쉬운 것인가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흘리는 피와 땀, 눈물 뒤에서 나만 챙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가진 자기타협의 힘은 어떤 이에게는 부족할지 몰라도 저에게는 충분히 강했으니까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찾아간 망월동 묘지. 세월이 지났음에도 마치 어제 자식을 잃은 듯 울부짖는 노모를 보는 슬픔. 그 앞에서 들이민 카메라 렌즈보다 건조한 눈빛의 기자가 보여준 차가움. 나뭇가지에 처량히 늘어져 있는 리본과 띠들 사이 싸구려 스피커에서 쇳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우울함. 그 모든 것이 무섭고 슬픈 일로 느껴졌습니다. 행동한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 그 무거움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먹고 살 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세상을 바꾼다니 그런 것은 그저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이사회가 잘못된 부분이 있고 저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잘 못된 일이라고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그 조차 모르는 사람에 비해서는 나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 보고 싶어 하지 않던 저의 모습을 직면하게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간혹 인생에 있어 어느 사소한 순간에 들었던 말이 평생 기억에 남는 중요한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이었습니다. 여름날의 불쾌한 끈적임을 더 키우려는 듯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저녁. 저희 과 교수님과 함께 갔던 호프집에서 교수님은 저와 선배에게 자신의 대학시절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금 사회의 부정부패와 비상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다가 문득 저희에게 소리치셨습니다. “이 비겁한자식들아! 너희는 왜 분노하지 않느냐! 왜 행동하지 않느냐!” 그 말은 갑자기 굵어진 빗소리와 유난히 쓰게 느껴졌던 그날의 김빠진 맥주와 함께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분노하고 행동하지 않는 젊은이를 비난하는 그 말에 그저 쓴웃음을 짓는 것밖에 아무 반론도 하지 못했던 그날이후 그래도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들이 있다 스스로 타협하며 살던 도중 노무현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고서야 그 씁쓸함과 부끄러움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그저 비겁하게 살아왔었던 것입니다. ‘항소이유서’에 있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의 의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하룻밤을 울고 울다가 찾아간 분향소 근처를 몇 번을 서성였지만 구석에서 줄담배만 피웠을 뿐 나는 감히 그분을 조문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에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연설하던 사람. 저는 그분에게 투표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강한 자에게 굽히지 않고 약한 자에게 더 낮은 자세로 대하던 그분이 있으니 나는 나대로 내 살길 찾아 열심히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날 그 모든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후, 저는 보았습니다. 첨맘님의 조용한 분노의 눈빛과 슬픔을 보았습니다. 첨맘님은 처음부터 가방끈 길이로 노무현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지켜드리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내 잘난 것만 내세워 다른 사람 깔보지 않고 자기보다 나은 점을 찾아 배우고 사랑했습니다. 편한 길을 찾아가기보다 거울 앞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대로 살아가려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전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첨맘님의 글을 읽고 방송에서 강연에서 하시던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첨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똑똑하고 못하는 것이 없는 분 같았지만 늘 성공하기만 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캠프가 망하기도 하고 낙선하기도 하고 어쩌면 성공보다 실패가 많아 보였습니다. 아니 ‘실패’라는 말은 잘 못되었네요. 첨맘님이라면 ‘배움’이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가고자하는 곳에 갈 때 어떤 이는 비행기를 타고가고 어떤 사람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듯이 그 모든게 길이라고 하시겠지요.
첨맘님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당장의 부끄러움과 손해는 삶에 있어서 실패가 아니라 배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나만의 선거운동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를 하고 투표결과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 첨맘님의 영향으로 제가 조금은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첨맘님이 하신 "진보어용지식인" 발언을 듣고 저는 시민광장의 회원으로 가입하였습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어서 어떤 일을 한다기보다 그 일을 해야만 하기에 스스로 “진보어용지식인”을 자처한 첨맘님의 그 말은 스스로 비겁한 시민이라 자책하며 멀찍이서 바라보던 저의 등을 토닥이며, 지금 당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시작하라는 격려로 들렸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꼭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지금 나라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부터 함께 다시 시작해 나가자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나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면 이제부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자라는 마음으로 오게 된 시민광장은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진지함보다는 유쾌함으로,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참여로, 수직적 상하보다는 자유로운 소통으로,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곳이었습니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닮아가는 것인가 봅니다.
첨맘님의 모습에서 옳음과 정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로써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참여이며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늦게나마 조그마한 힘이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노력해보고자 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소심하고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이라도 우리 사회를 보다 좋은 곳으로 바꿔나가기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언젠가 스스로의 자책을 벗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빈소를 찾아 그분에 대한 사죄와 고마움과 사랑을 털어놓을 수 있겠지요.
첨맘님은 저에게 삶에 대해 늘 고민하게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노력하게 하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을 바꿔 나가는 위대한 시민이자 이웃의 등 뒤에 조용히 한발 더 다가가 마지막까지 함께 서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과 고마움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도종환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로 첨맘님과 시민광장에 대한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