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헌장
나는 바람이다. 혼탁하고 어두운 빛을 몰아내는 바람이다. 들녘, 강, 바다, 산에서 부는 바람이다. 도심 빌딩, 주택, 사람의 가슴에서 부는 바람이다. 나는 인류 인간 이래,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람 가까이 사람을 대하며 존재했다. 계절에 따라 이름을 달리했다. 봄바람은 따스하고, 여름바람은 시원하고, 가을바람은 쌀쌀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이 받아주어 낭만이 되기도 했다. 겨울바람은 추위를 달고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기에 어디에서든 불어오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바람이라는 내 이름을 두고는 누구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 나로인해 꽃이 피고 지고, 구름이 있고, 비가 내리고, 산천 초목이 있다. 나는 자연이다. 나는 인류 인간의 역사다.
바람인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여러 의미들이 있다.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시가 되기도 했고, 노래하는 가객은 나를 가장 많이 소재 삼기도 했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게는 휴식이 되기도 했다. 무엇으로든 나는 만족했다. 이렇게 많은 존재의 의미 중에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람개비다. 공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를 사용할 줄 알았던 사람들의 지혜라 여긴다. 비록 몸집이 작고 가는 막대기라 해서 개비가 붙긴 했지만 바람과 개비가 만나 바람개비가 되었다. 바람개비가 하나였을 때는 네 귀 달린 장난감으로만 보였을지 몰라도 하나가 모여 열이 되고 수백 수천이 되었을 때는 바람개비의 모습이 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 크기대로 윙윙 소리를 낼 줄 알았다. 그 소리는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변화 시키는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개비였고, 개혁하고자 했던 정조 이산의 바람개비였다.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드골 정부의 바람개비였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의 바람개비였고,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말하던 노무현의 바람개비였다. 부패한 정권에 철퇴를 내린 광화문광장 촛불과 함께한 바람개비였다. 앞이 깜깜한 50대 실직 가장의 바람개비였고, 명절에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쪽방 고시촌 청춘의 바람개비였다. 쌀가마에 앉아 한숨 짓는 농민의 바람개비였고, 서울역 지하상가 어느 노숙자의 바람개비이기도 했다. 조류인플렌자 때문에 땅에 묻혀야 하는 닭들의 바람개비였다. 컴컴한 어둠 속 절규하는 세상의 모든 억울함을 담고 도는 바람개비였다.
평화누리에서 형형색색 돌고있는 바람개비는 평화와 통일이다. 봉하마을 수천 노란 바람개비는 사람사는 세상 이다. 서울대공원 놀이터에 꼬마 아이가 들고 서있는 바람개비는 우리들의 미래다.
세상을 향한 이 모든 것들의 소리, 윙윙윙 돌아가는 그 소리를 바람개비는 안다. 내가 너와 다르지 않아 함께 아프고 함께 어깨동무 해야 할 나의 동지, 그것이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것을. 차별과 소외, 억울함을 몰아내고 평등과 화합, 공평과 정의의 날개를 돌리는 바람개비라는 것을. 이로서 나는 우리와 함께 바람개비다.
내가 처음 바람개비였을 때는 모든게 서툴렀다. 바람의 반대편에서 돌다가 풀이 죽은 적도 있었다. 얼마나 잘 도는지 시험삼아 돌다가 어지러워 바람개비 되기를 주저한 적도 있었다. 의와 불의의 간격을 몰라 구분 없이 돌기도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당당히 바람개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얻은 이후부터는 한눈 팔지 않고 밝은 세상을 일구는 바람개비가 되고자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고자 한다. 누군가는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없는 바람도 우리가 달리면 바람이 된다. 달려서 바람의 결에 맞춰 네 귀 날개를 돌려야 한다. 네 귀 모서리가 둥근 원이 되고, 싱싱싱 도는 소리. 힘차게 솟아나는 용기. 기쁨 아니겠는가. 우리가 돌리고 있는 바람개비 소리, 세상 바뀌어가는 소리, 살만한 세상,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어가는 저 바람개비의 소리. 적폐를 청산하고, 너나없이 평등공정한 나라, 그러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한 바람개비다.
나는 바람개비다. 혼자 도는 바람개비가 아니라 수천 수만이 함께 도는 바람개비다. 민주주의 신념과 올바른 주권을 가진 바람개비다. 그 어떤 권력도 국민에게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바람개비다. 광화문 광장 촛불 민심을 온전히 이루어낼 바람개비다. 따뜻한 오월의 바람과 함께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갈 바람개비다.
우리는 바람개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