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미 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주 등은 지난 24년 동안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던 텃밭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공화당 간판을 달고 나온 트럼프라는 정치 '아웃사이더'를 지지했다. < 270towin.com 캡쳐>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미국 대선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대다수 언론의 예측을 깨고,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해 대통령 당선을 확정지었다. 압승이 예상됐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10일 기준 22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과거 미국의 대선과 비교했을 때 차이는 미국 북동부에서 명확했다. 트럼프 후보는 북동부의 위스콘신, 미 시간, 오하이오, 인디애나, 펜실베니아주까지 이른바 러스트벨트를 싹쓸이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해당 지역이 전통의 민주당 텃밭이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미국 정가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호남에서 박근혜를 찍은 것이고, TK에서 문재인을 지지한 격”이라고 비유했다.

◇ 24년 민주당 텃밭, 실업난 초래한 기성정치권에 ‘분노’

실제 이들 지역은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물론이고, 부시 대통령 시절에도 민주당을 지지했던 곳이다. 이 가운데 위스콘신, 미 시간, 펜실베니아는 무려 24년 동안 변함없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준 지역이다. 현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의 텃밭 민심이 트럼프 후보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언론들은 ‘제조업 몰락에 따른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 해당지역은 이른바 ‘러스트벨트’라고 통칭되는 미국의 공업지대 중 하나로 100여 년간 호황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지역경기는 쇠퇴를 거듭했다. 따라서 지역민들의 기성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커졌고 이것이 트럼프라는 ‘정치 아웃사이더’로 표출됐다는 얘기다. 트럼프 후보가 제조업 몰락의 원인을 기성 정치권의 자유무역 확대정책으로 돌리고, ‘보호무역’이라는 다소 노골적이지만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 먹혀든 것이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전략이 단순한 ‘정치수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난 10월 발간된 David Autor의 논문을 보면, 미국의 제조업 몰락과 장기실업이 중국과의 교역확대 이후 발생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중국과의 교역 이전에 미국은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선진국과 교역을 하면서 비교열위에 따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집약형 제조업에 특화한 중국과의 무역규모가 커지면서 제조업 부문에 충격이 발생했다. 이에 제조업이 밀집한 지역의 고용이 감소했으며 그 규모는 직간접적으로 98만~200만에 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과론적인 분석이지만, 트럼프 후보는 기존 공화당 지지층 외에 공략이 가능한 집단을 특정하고 기성정치인이 아닌 자신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단순명료하게 주장해 대이변을 연출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막말’ ‘인종차별’ ‘여성비하’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통의 민주당 지지층을 돌려세울 만큼 영리한 선거 전략을 세웠던 셈이다.

▲ 2016년 미국 대선결과와 차이나쇼크의 관계. 오른쪽 지도에서 붉은 정도는 중국과의 교역확대로 인한 지역별 피해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민주당 텃밭이었던 위스콘신, 미  시간, 펜실베니아 등이 포함돼 있다. <참조=David Autor 논문 '차이나쇼크에 따른 미국 노동시장의 적응'/키움증권>

◇ 기성정치권에 분노하는 대한민국, ‘아웃사이더’ 대통령 배출할까

이는 내년 말 예정된 우리 대선의 풍향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미국 대선의 본질은 ‘기성정치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시민들의 분노다. 특히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다. 물론 분노의 대상이 현재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집중돼 있지만, 얼마든지 정치권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정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세계 정치의 기류가 기존 엘리트에 분노하고 있고,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아웃사이더에 주목하고 있다”며 “정책적으로만 보자면 트럼프 후보 보다 힐러리 후보가 더 진보적이었고 백인 노동자에 더 유리했다. 그럼에도 힐러리 후보가 텃밭에서 지지층을 잃었다는 것은 기성 정치인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기득권 체제가 다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대안, 기존질서를 엎는 파격적인 대안이 나타났다”며 “미국 백인 중산층의 불만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불만인데,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서 트럼프라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를 택했다”고 풀이했다.

다만 노 원내대표는 “문제제기는 정당하고 근거가 있지만 대안으로 채택된 것은 상당히 불안정하고 또 그것이 실제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우리의 경우에도 이유 있는 항변이 잘못된 대안과 만나게 되면 트럼프 꼴이 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