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장을 만든건 팔할이 광주였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 5월 18일,
나는 광주 전남대에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한총련 선배들에게 말하며 결별을 고하고
수많은 전경들의 원천봉쇄를 뚫고 망월동 국립묘지로 향했다.
가벼운 마음이었다.
관광 또는 성지순례 가는 그런 마음?
하여튼 그랬다.
막상 가서 알게 된 진정한 5.18광주는
충격이었다.
무서웠다.
믿을수가 없었다.
티비를 통해서,신문을 통해서 접했던 5.18광주와 전혀 다른
<진짜 5.18광주>가 그곳에 있었다.
악마라는게 존재해서 지상에 강림한다면
전두환의 몸을 입어 강림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로부터 보름동안 병을 앓았다.
밤마다 5.18광주가 생각나서 잠을 이룰수없었다.
그리고 5.18광주를 만든 악마들의 후예들과 그들과 손을 잡은 자들이
여전히 우리나라의 정권을 잡고 있으며
나아가 5.18광주의 일부분인 김대중과 호남인들을 탄압하고있다는 사실이
정의는 탄압받고,불의가 득세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당시 만으로 채 20이 안된 나의 가슴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열아홉청춘에
자칭 정신적호남인이자
타칭 김대중광신도가 되었으며
조선일보스토커,개혁당원,이후 탄핵을 거쳐
노빠이자 유티즌으로 계속 진화해왔다.
저번주 금요일에 <화려한 휴가>를 보았다.
나는 다시 열아홉 피끓는 청춘이 되었다.
주체할수없는 '슬픔'과 '노여움'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분출되어 눈물과 탄식으로 터져나왔다.
그들을 응징하리라고 다짐한지 어언 10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해내지 못한 '슬픔'
"우리는 폭도가 아니라"며,
"우리를 잊지말아달라"며
절규하며 스러져간 먼저 가신 님들의 소원이
아직 다 풀리지않았다는것을 보며 느끼는 '슬픔'
학살자들의 후예들이
광주의 자식들의 목을
여전히 누르고있는 광경을
목도하며 드는 '노여움'
광주를 팔아 입신양명한 자들이
진짜 광주의 자식들을 배제하고,왕따시키는
패악질에 대한 '노여움'
광주의 피값으로 헌법기관이 된 자들이
광주의 자식들을 고소하고 고발하고 검열해대는
작금의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노여움'
김대중대통령은 광주가 만들었다.
6.10항쟁은 광주의 아들 이한열과 광주가 흘린 피가 차곡차곡 쌓여 태어났다.
노무현과 참여정부도 국민통합을 간절히 원했던 2002년 광주가 낳았다.
5.18전야에 서울에서 텅빈 학교를 홀로 지키다 잡혀간 유시민도 광주가 낳았다.
김반장도 광주가 낳았다.
우리 모두는 광주의 자식들이다.
<화려한 휴가>를 보며 다짐했다.
절대로 학살자들의 후예들에게 지지않겠노라고..
절대로 광주를 팔아 사리사욕을 챙긴 자들에게 지지않겠노라고..
많은 일들,많은 상처,많은 고민으로 지치고 힘들때마다
극장에 가서 <화려한 휴가>를 보며 다짐하리라.
당신들을 잊지않겠다고,
그리고 잊혀지지도않게 하겠다고.
반드시 처절한 복수의 철퇴를 그들에게 내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