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년이 지났다.
27년이면 그 해에 태어난 아이가 장성하여 또 아이를 낳을 세월,
한 세대가 지난 것이다.
실제로 -영화의 한 장면에도 나오는- 아빠의 영정을 들고 눈물이 그렁하던 아이가
결혼을 했다는 소식도 몇해전 들은 기억이 난다.

지금 그 또래들은 5.18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내가 태어날 무렵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내가 어떻게 기억 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면,
그 세대들이 가지는 5.18에 대한 인식과 체감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한두해 전에 있었던 4.19나 5.16에 대해 나는 책으로 밖에 본 바가 없다.
지극히 추상화 되어 있었다.
나에게 4.19나 5.16은 훨씬 이전에 있었던 갑오농민혁명이나 일제 강점과 체감도에 있어서 별 다를 게 없었다.또 어떤 때는 책으로 전달되는 정보마저 왜곡되어 내 인식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4.19는 고등학교때 까진 학생 의거였고 대학 이후론 혁명이었다.
5.16은 혁명이었다가 쿠데타가 되었다.
지금 세대들에게 5.18은 소요 사태였다가 민주화 운동이 되었다.
좀 더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민주 항쟁, 민주 혁명이기도 하다.
지금은 교과서 실린 공인(?)명칭은 민주화 운동이다.

이 영화는 그 세대들과 타지역에서 정권의 통제와 언론의 왜곡에 의해 인식의 변화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을 조문객으로 불러들여 제를 올리며 읊는 축문이다.
많은 걸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직 5.18이 소요가 아니라 항쟁이었음을,
시민이 폭도가 아니라 정당방위를 행사한 피해자였음에 포커스를 맞춘다.
추상적 인식의 토대에 인식의 변화까지 겪어야 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니,
시종일관 진지하고 비장한 가운데서도 우스개와 너스레를 끝까지 끌고 간다.
마치 구사일생의 고생을 겪은 이가 처음 몇번은 눈에 핏발이 서고 목이 메이도록 고생담을 풀어
놓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사이사이 농담을 섞어 가며 하는 이야기를 듣는 듯 하다.
들어주고 봐주는 이를 배려하는 이 모습을 통해 슬픔의 농도는 더 진해지고,
듣고 보는 이가 웃으면서도 울어야 할 대목에 울어 줄 수 있다면 한판의 진오귀굿은
성공적으로 치러 진 것이리라.
광주에 항쟁을 직접 겪은 이들이나 80년대 비밀리 유포되던 5.18비디오테잎이나
기록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사실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가 현실을 반도 그려내지 못했다는 리뷰를 보기도 했다.
영화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 하거나 덮어 두고 넘어 간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러나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이 실사로 그대로 찍는 길만이 능사가 않을진댄,
이 영화는 적절하게 잘 씌여진 한편의 추도사이자, 잘 치러진 한판의 진오귀굿이다.
거기에다 영화의 예술적,기술적 관점의 평을 한다는 것은 -그럴만한 능력도 없고-축문을 놓고
문학평론을 하는 것 처럼 쌩뚱맞고 우스운 일이겠지만,
영화는 재미있다.울고 웃긴다.감동적이다.
잘 만들어진 시퀀스중 하나인 금남로 발포장면에선 숨이 막힐 뻔 했다.
지금까지 45년을 살아오며 그렇게 슬픈 애국가,하지만 살아 있는 애국가를 들어 본적이 없다

뒷담화를 듣자하니, 영화는 기획단계에서 부터 5.18관련단체 분들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만들었다 한다.실제로 영화의 몇몇 장면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낯익고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피해의 직접 당사자인 분들도 이젠 그렇게 이 하드고어(?)한 역사를 진도의 상가에서 다시래기
굿을 하듯, 웃어 가며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주요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 처럼 대부분 죽고,
살아 남은 여주인공(이요원 분)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 하나의 환영을 만든다.
당연히 옆엔 죽은 남주인공(이상경 분)이 팔장을 끼고 있고,죽은 신부의 아버지(안성기 분)도 있고 죽은 신랑의 동생(이준기 분)도 있고...죽은 사람들이 거의 다 하객으로 나와 결혼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모든 죽은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하게 파안대소를 하는데, 살아남은 신부만 아무런 표정이 없다.오히려 그늘진 표정이다.
그럼 진짜 살아 남은 우리들은, 우리들은 과연 어떤 표정으로 저 영화를 봐야 할까?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 이 또한 보는 사람의 인생이 표정을 각기 다르게 해주리라.
표정 관리는 관객들의 몫이다.
p/s :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보면 ' 화려한 휴가'는 '화려한 육아' 가 된다.
단, 심약한 아이나 저학년에겐 좀 무리.
<올해 오월문학상에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대상 작품 아시죠?>
그 날
정민경 (경기여고 3)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 도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이 밑에 껀 그냥 한번 보고 웃으세요^^>
내 그 날
-정민경 양의 발뒷굼치를 따라-
아름답지도 더럽지도 않지
백주의 태양광 아래 뒤집힌 개미굴 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 줄 뿐
진실은 그런 거지
낯익은 것들이 생소하게 보일 때
믿었던 이들이 적으로 다가 올 때
우리는 비로서 믿고 싶지 않지만
진실과 마주 봐야 했지
그 날도 그랬지 군인들은
보기에도 든든한 탱크를 타고 왔지
하지만, 탱크의 배암머리 같은 포신은
우리 쪽으로 향해 있었지
무어라 소리치며 산등성이를 떼지어
넘어 오는 걸 뻔히 보고 있었는데
우리 집 담벼락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지
그러면서도 참 바보 같이
지구 반대편 머나 먼 나라를 믿었을까
그들이 와서 싸움을 말려 줄 것이라고
그들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밑도 끝도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함은
언제부터 우리 머리속에 있었을까
그렇게 그 도시는
백주에 파 헤쳐진 개미굴이 되고
물가에 심어진 버드나무 같던 꿈은
베어지고 꺽여지고 부러졌지
그래서 비로서 알게 된거지
진실은 더 이상 안온하지 않다는 걸
꿈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는 걸
저들이 우리편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보호자가 아니라 착취자였다는 걸
조국이 아직 식민지였다는 걸
민주공화국이 아니였다는 걸
그것이 그 날의 진실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