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 재보선의 해석이 분분합니다. 한나라당의 불패신화가 깨졌다느니,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느니, 민주당이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쥐었다느니 각양각색의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과연 정치권과 언론들의 그같은 해석이 옳은 것인지에 회의가 듭니다.
1. 선거결과의 해석.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자유지만 때로는 오도되고 비틀어져 진정한 의미를 알지도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입니다. 이번 재보선의 결과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요? 표피적 의미부여는 심각한 오류를 낳을 수도 있기에 좀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한나라당의 불패신화는 깨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4곳중 3곳에서 압도적 승리를 했고, 한 곳에서 패배를 했지만 그 곳은 본래 한나라당이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곳입니다. 수해지역 골프나 기초단체장들의 삽질에도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무 약체 인물을 공천한 것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패인중에 하나입니다. 한나라당의 불패신화는 계속되고 있을 뿐 입니다. 아직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물론 그렇게 해석하고 싶을 것입니다.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완전히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선이 탄핵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탄핵당시의 참패와 낙선은 탄핵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선이 면죄부라면 당시의 참패는 국민의 정계은퇴 요구였을 것입니다. 지금 면죄부를 국민의 의사로 존중하려면 당시의 응징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탄핵은 이미 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지금에야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죠.
정계개편의 주도권이 민주당에 넘어갔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탈지역주의,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 창당했다는 열린우리당이 12석의 미니정당에 흡수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이 다음에는 지역구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살 길을 찾아서 흩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집권의 가능성도 없는 민주당으로 갈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부는 한나라당에 가서 다시 여당하고 싶겠죠. 또 일부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붙잡고 지켜가려고 할 것입니다. 갈라지고 깨지기는 하겠지만 민주당의 주도권 운운은 쉽게 될 일이 아닙니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결국 다시 지역주의의 위력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성북을에서 영남당이 당선된 일이 없었던 과거를 재연한 것과 마산갑과 송파갑은 영남지역구이거나 영남인구 비율이 높습니다. 부천소사는 영호남의 팽팽한 비율속에 호남출신들의 표가 갈라진 것이 결과를 좌우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지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은 성북을에서 10%에 못 미쳤지만 나머지 3곳에서 20~30%를 득표하였습니다. 당선될 수는 없지만 열린우리당만큼 영남과 호남의 고른 지지를 받았던 정당은 일찍이 존재한 일이 없습니다. 전국에서 골고루 20~30%를 득표하는 정당이 거의 의석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선거결과를 예상하게 되는 상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지역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그런 정당의 존재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전국적 지지율이 5~6%인 정당은 당선되고 전국에서 20~30%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모두 낙선하는 극단적인 현상은 지역주의와 그것의 위력을 최대화하는 선거구 제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정부여당의 정책, 정치전략, 사분오열, 개혁후퇴등 잘못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잘해도 지역주의의 거대한 벽을 넘기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2. 탈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의 말로.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국민통합을 창당의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 이력속에도 면면이 배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역주의의 벽에 거듭거듭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희망으로 해석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태동한 열린우리당이 지금은 퇴로도 없는 패잔병처럼 돼어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잘못도 있지만 무능보다 부패를 선택한다는 국민이 정상이랄 수도 없습니다. 깨끗한 정치를 주장하던 정부여당이 좀 무능하고 미숙한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만 그렇다고 부패하면 유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민주화 세력이 무능하니 독재세력은 유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이없는 일입니다.
여당이 비교적 깨끗하지만 무능한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칩시다. 한나라당의 부패는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지만 능력은 알려진 것도 검증된 바도 없습니다. 독재세력의 후예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유능할지 아닐지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설마 정부여당보다 더 무능하겠어? 대답은 예일수도 아니오일 수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도 열린우리당의 끝없는 추락도 유능과 무능을 대비하여 해석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역시 지역주의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창당부터 무모한 행보를 시작한 것입니다. 호남의 민주당, 영남의 한나라당, 충청의 당시 자민련등이 차지하고 있었던 견고한 지역주의의 성을 허물려고 했던 일이 무모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역주의가 견고한 성이라면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엄청난 도덕성의 우위에 서거나 치밀한 전략전술이 있어야 했지만 그다지 준비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자라지만 그런 도전과 열정은 대단히 칭찬할만한 진보일 것입니다. 당연히 그 방향으로 초지일관 했어야 합니다.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의 병폐는 다시 거론하지 않아도 모두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을 허무는 일이라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지일관하지 못했습니다. 선거만 생각하면 불안한 정치인들이 끝없이 선거공학적 계산에 매달리며 민주당과의 통합등을 주장하였고, 그런 행동들은 민주당을 점점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시키고 말았습니다.
국민도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아젠다에 그리 동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 국민스스로 지역감정의 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영남의 서민은 한나라당을 호남의 부자는 민주당을 찍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은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든든한 지역적 지지기반을 가지지 못한 열린우리당이 바로 지역주의 때문에 존립하지 못할 기로에 서게 된 것이죠.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지역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역적 다름은 결코 수용도 용납도 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의 잘못이 큽니다. 지역주의에 반대하는 정당은 이렇게 다르고 깨끗하고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혀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욱 못난 모습을 보이기 일수였습니다.
지역기반을 가진 정당은 그정도 잘못으로 이렇게 철저히 외면을 받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것이 없는 열린우리당은 쉽게 외면을 당하는 것입니다. 점차 지역주의에 기대서 정치적으로 살아남으려는 구성원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당의 말로를 보이고 말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일입니다.
3. 선거구 제도.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살 길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스스로 찾아서 흔들림없이 그 길을 가지 않았을 뿐 길은 두가지나 있었습니다. 첫째는 기존정당들에 비하여 철저히 깨끗하고 유능하며 개혁과제를 잘 풀어간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국민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길입니다. 둘째는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길입니다. 두가지 모두 열린우리당은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위기의 원인입니다. 두가지 모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둘 다 하거나 적어도 하나는 성공을 했어야 합니다.
물론 기존정당들과의 차별화는 국민에게 인정받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여전히 지역주의적 선거를 하고 있는 국민이기에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은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살길이라고 인식했다면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하였을 테지만 쉬운 곁길이 정치인들의 눈에 자꾸 보였던 것이죠. 지역구도에 다시 편입되는 길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염동연 의원이나 임종석 의원이 그런 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열린우리당의 주류를 형성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반한나라 연합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연합론은 민주당의 가치만을 키웠고 쓰러져가던 민주당을 부활시켜서 열린우리당의 쇠락을 부채질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민주당은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여 점점 부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약간의 가능성을 비치다 때로는 완강히 부인하는 전략으로 정치적 이득을 상당히 챙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역적 기반이 확고한 한나라당은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죽어갈 열린우리당의 운명을 알기에 살려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죠. 열린우리당이 뿌리를 내리면 지역주의 정당들의 장차 점점 고사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민주당도 호남을 독식하던 시기에는 한나라당에 비하여 파이가 적었으므로 그런 변화를 선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나뉜 후에는 상대적으로 확고한 지역기득권을 내어줄 이유가 없었겠죠.
결국 국민을 설득하고 호소해서라도 선거구제를 고쳤어야 열린우리당이 살 수 있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고루 20%의 지지율을 가진 정당은 지역구 전멸입니다. 전국 평균이 5%라도 특정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높으면 당연히 많이 당선이 되죠. 그런 모순은 점점 탈지역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선거구제가 바뀌어 전국에서 고른 득표를 하는 정당이 유리하게 되어야 지역주의에 집착하는 정당들도 방향을 바꿀 것입니다. 정책대결은 그렇게 토양이 갖춰져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겠죠? 선거구제 개편은 열린우리당이 반드시 해야할 자신들의 생존수단이었습니다.
4. 대연정.
열린우리당의 탈지역주의에 대한 창당초심은 매우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과제도, 선거구제 개편논의의 주도도 하지 못하고 야당들에게 끌려 다녔습니다. 무능하게 보여서 더욱 지지율은 전국에서 골고루 낮아졌습니다. 개혁의 선명한 정체성도 점점 희석되어 지도부에서 상생과 실용을 들고 나옵니다. 결국 정책적인 스탠스가 한나라당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정책만으로는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 시기에 대통령의 대연정론이 등장합니다. 정책적 차이도 별로 없고, 선거구제를 고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동의가 있어야 선거구제 개편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사의 가능성이 낮은 정치적 상황에서 그것을 내밀어 처참하게 거절을 당했고 지지율은 더욱 급전직하합니다.
한나라당이 집권의 가능성이 매우 낮고 선거구제 개편이 큰 타격이 없는 경우에만 연정은 가능한 카드였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은 집권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현정부의 권력을 나누어 가질 이유가 없었죠. 조금만 참으면 송두리 채 차지할 수 있는 것을 왜 나누어 가지겠습니까? 그 것도 자신들의 영남아성에 적들을 진입시키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여당을 살려주게될 선거구제 개편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은 대연정이라도 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하지 않으면 열린우리당이 고사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기 때문에 대연정을 제의한 것입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의 반한나라당 연합에만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것도 역시 번번히 민주당의 거부에 직면하며 점점 곤란한 처지가 돼고 맙니다. 영남과 호남의 협공,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협공은 그렇게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아직도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의 살길을 마련하지 못한 셈입니다. 선거구제를 고치지 못한다면 철저히 개혁의 정체성이나 지켰어야 일부 살아남을 수 있을 터인데 그것도 모두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탈지역주의 추구정당은 그렇게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5. 이제 헤어질 시간.
마지막으로 남은 길이 하나 있습니다. 당을 쪼개는 길입니다. 물론 그냥 두면 저절로 쪼개질 것입니다만 그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붕괴되는 것보다 서로 갈길이 다른 사람들은 헤어져서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민주당과의 합당론에 목을 메던 사람들은 탈당하고 민주당에 돌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렇게도 그러워하던 호남의 철통지지를 회복하는 것이죠. 염동연 의원이 앞장서고 임종석 의원이 뒤를 바치며 탈당에 대한 백배사죄와 함께 원대복귀하면 따스한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 집권당 체질인 사람은 차기 집권이 유력한 당으로 가면 됩니다. 어차피 열린우리당이 집권당이어서 들어온 것이니 미리 차기 집권당을 찾아가서 자리를 잡는 것이 뒤늦게 가고 싶어도 안받아주는 상황보다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과반수 의석도 만들고 하면 서로 좋겠죠.
셋째, 열린우리당의 창당초심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남아서 명확히 개혁의 정체성을 지키면 될 것입니다.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도 원없이 해보고, 깨끗한 정치개혁도 거침없이 주장하며, 한국정치를 지역주의로 부터 구원하는데 자신을 던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책경쟁을 해야 국민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정치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신속히 서로 헤어지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서로 생각은 천차만별인데 모여서 임기도 다된 정권과 아웅다웅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갈 사람들은 빨리가서 자리잡고 남은 사람들은 신속히 정체성을 확랍하는 것이 좋습니다.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