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의 한 귀퉁이
2002년 6월 말 부터 2년간 제가 지낸 곳은 양평의 한 보급부대였습니다. 그 곳에 전 주특기번호 2113-일반물자저장관리병이라는 보직을 얻게 되었습니다. 보직의 정식명칭이라 좀 길긴 하지만 간단히 말해서 군에서 제 역할은 창고병이었지요.
창고에 들어오는 보급물자들을 관리하고 수불하는 그런 역할 말입니다. 덕분에 군생활은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병기본훈련이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분대전투니 박격포운용이니 하는 것은 저는 물론 제 동료들에게는 거리가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습니다.
창고병 일을 할 때 제가 맡은 주 업무는 2종 폐품담당이었습니다. 보직의 역할을 설명하자면 좀 길고, 일종의 고물상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군대에서 1종이라 함은 음식전반을 말합니다. 2종은 생필품부터 의복, 사무집기등 굉장히 분야가 많죠. 그 뒤로 3종 유류, 4종 건축자재 이렇게 주욱 나가게 되는데요. 그래서 보통 보급부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이 2종입니다. 저는 그 중 한 분과였구요.
보급부대는 전시 훈련 상황이 되면 창고에 있는 물자를 싸그리 트럭에 적재하는 게 일입니다. 혹시라도 훈련중 화생방상황이 걸려서 방독면을 쓰고 박스 나르라고 하면 아주 죽을 맛이죠.
그런데 요상하게 2종창고 중에서도 재활용품을 모아놓은 창고 한 귀퉁이에 있는 마대자루 몇 개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훈련상황이 걸려도 그 마대자루들은 적재를 하지 않았던 것이죠.
짬밥이 딸릴 때는 그게 의문이었습니다. 뭔데 적재를 하지 않는 것인지. 어차피 그 창고는 제 소관도 아니고 해서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보니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나중에 짬밥이 지긋해지고 부대 내의 이 창고, 저 창고를 마음대로 둘러보게 될 만해지자, 그 마대자루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2종 창고를 담당하는 간부에게 물어보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5.18때 사용한 진압봉과 손목보호대랍니다.
그 얘기를 듣고 마대자루를 풀어보니 페인트칠이 벗겨져가는 낡은 나무막대기와 헤진 손목보호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습니다. 나무 막대기에는 꺼림칙한 검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는 27년 전 하나회의 멤버였던 박준병소장이 이끌던 20사단이었습니다. 나중에 드라마 제 5공화국을 보고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사단은 5월 20일 광주의 외곽경계를 위해 투입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창고의 진압봉은 20사단이 단순한 외곽경계의 역할로만 국한되지는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지도 않은,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는 미약하게나마, 그렇게 저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낡은 내러티브, 그러나..
사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이 발표되고, 티저포스터를 비롯한 영화의 정보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기대감이 커지는 동시에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은 배로 온다고 하니 그런 맥락에서의 불안감이었겠죠. 기대 잔뜩했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해 뭐 그런.
연인, 시민군대장, 형제라는 인물 설정은 또한 진부함에 대한 불안감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뻔한 신파조에 괜히 억지로 눈물을 짜내려는건 아닌지 하는 얕은 비판의식이랄까요. 마치 한국 멜로드라마에서 솔찬히 등장하는, 사실은 이복남매에 여자는 불치병, 뭐 이런 공식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기대감을 잔뜩 품고 영화관에 들어서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내심 이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냐,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보여 봐라’

영화의 시작인 남쪽으로 향하는 군수송기의 장면부터 이어지는 2시간 남짓은 안타깝게 지나가버렸습니다. 정말 안타깝게요.
솔직히 얘기합니다.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분명히 제가 애초에 품었던 예상대로 영화는 낡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제와 친구의 죽음으로 분노하고, 분노는 또 다른 죽음을 낳고, 시작되는 연인은 사랑의 봉우리를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 손을 놓습니다.
하지만 그 진부함을 도저히 비판할 수 없는 것은 그 진부함이 굉장히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이었죠.
사람의 근원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을 건드리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죠.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 그 한토막에서 빚어진 끔찍한 일들이 진실의 힘을 빌어 눈 앞에 재구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영화의 전개는 생각보다 담백합니다. 최대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덜어내려는 의도가 보였달까요. 정치적사건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빼고 보는 것은 힘들겠지만, 상황에 얽혀 일어나는 사람들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를 최대한 단순하게 끌고 가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전두환의 빛나는 머리 뿐 아니라 그의 이름 세 글자조차도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장군’정도로만 언급이 되지요.
그럼에도 그런 단순한 신파성 이야기에서 가슴이 들끓는 것은 영화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겁니다. 그 단순한 조각에서 뻗어 나오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그들의 후일담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봉건적 위계질서와 휴머니즘
어느 시대이건, 어른을 존중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의 미덕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것을 알고 있고 미래에 들어설 제 자신이 존중받는 것을 원하기에 어른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가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그런게 좀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마주하는 이 사람을 과연 어른으로 존중해도 되는가하는 의문이 들 때 말이죠. 그러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화가 납니다. 그러면 어설픈 먹물근성으로 봉건시대의 지배관념인 성리학의 잔재가 나의 행동양식을 억압하는구나하면서 마음속으로 헛소리를 해대지요. 물론 사회생활이라는 명목하에 그런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배경을 작당한 어르신들께는 그런 속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위계질서의식보다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심스럽게 한마디 해봅니다.
‘전두환, 야 이 개새끼야. 그리고 전두환 밑에 붙어 먹은 걸레짝 새끼들아.’
2시간 그리고 고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부끄럽게도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려버렸습니다. 안구건조증이 있는데다가 엥간한 최루성영화는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치부해버리는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가 저인데 말입니다.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시민들이 마주한 현실은 내가 살고 있는 틈, 어느 한 구석에 대한 시선이 소원해지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신 겪은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들이 안타까워 눈물이 흘렀습니다.
또한 그런 현실을 만들고도 뻣뻣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악한 이들에 대한 분노, 그런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쉰다는 부끄러움이 벅차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모든 진실을 도외시한 채 그 사악한 무리들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기생하는 인간들이 불쌍하여 눈물이 흘렀습니다.
말초적인 감정, 싸구려 휴머니즘이라도 좋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한 명이라도 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혹여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손을 붙잡고 가서 봐야 합니다.
영화는 이요원의 외침으로 막을 내립니다.
‘광주를,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흘린 피가 제 삶과 제 삶의 터전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날의 총탄에 스러져간 아이의 아버지, 여고생, 동네 아저씨의 억울함과 간절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했던 당신들의 순진한 노력이 역사를 옳은 방향으로 아로새기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고맙습니다. 내가 아직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을 일깨워줘서.
< 화려한 휴가 영화 번개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