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자 baekjison 님이 쓴 리뷰 내용이 좋아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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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사회과학 서적 몇 권을 보았다. 오바마 책이야 아직 큰 반응은 없지만, 이 책은 매우 주목받는 것 같아 반갑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나 <대한민국 개조론>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 이 나라가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해 술자리에서 핏대만 올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책을 사서 읽으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유시민 의원의 필력은 중학교 때 읽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도 시간 나면 읽어볼 생각이다.
유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디어에서 바보처럼 묘사되는 현실에서 함께 평가절하당하며 진보적 논객으로서의 고상한 이미지에 많은 손상을 입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매우 박학다식하고 인간적으로 소탈한 사람들일 것 같다. 전에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지만, 공개 토론을 하면 그들을 당해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게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복당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설득당하는 데 더 거부감이 적으니까. 어쨌든 그들은 정치인이 되어 미디어의 공세에 시달리면서 갑자기 어리석고 고집세고 무능한 인물들로 보이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정치가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보다 뭐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후보나 박근혜 후보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대선에 나선 것이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후보만 하더라도 부모님이 모두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고 어떤 종류의 사명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왜 편하게 살지 않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는지 개인적으로는 안쓰러운 느낌이다. 물론, 그들이 내세우는 7% 성장론이나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건설 공약'에 대해서는 현실성과 타당성에 대해 상당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명박 후보에게 제기되는 의혹들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동산 의혹 등은 대한민국 상류층의 일반적인 행태이므로 특별히 윤리의식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별 양심의 가책 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개천에서 난 용'이지만, 이미 상류층이 된 후에는 자식 세대에게 상류층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점에서(이른바 '맹모삼천' 의혹 등) 점차 계층간에 두터운 벽이 생기고 신분 상승이 힘들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인적으로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이유들 때문에 나는 유시민 의원도 어느 정도 부당한 비난과 네거티브 공세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을 때 혹시 그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책의 명성에도 흠집이 되지 않을지 우려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단숨에 베스트에 진입한 걸 보면, 역시 몇 안 되는 인지도 있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재야 논객으로서 외부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할 때와 보건복지부 장관(사실 이 자리는 교육부 장관과 더불어 누가 되더라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본다)으로서 실제로 국정을 책임져 본 후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책에서 '책임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서 그런 변화가 느껴진다. 그리고 당위성과 현실성의 충돌, 즉 돈 문제(복지는 곧 행정비용이 되기 때무에)를 자세히 다루는 데서도 그런 부분이 느껴진다.
이 책과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은 큰 참고가 되었다. 특히 이 책의 내용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의료 문제에 대해서 많은 걸 느꼈다. <담대한 희망>은 민주당 후보 오바마가 미국이 당면한 좌우의 분열, 양극화, 종교, 복지, 고용, 세계화, 교육 문제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실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미국이 당면한 문제와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한 국가가 당면한 총체적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는 것은 국내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오바마의 공약 중에서 대표적인 것 하나는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이다. 믿기지 않게도, 미국에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어서 4,700만 국민이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하는 신세라고 한다. 또한 의료보험을 직장에서 들어주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고용이 불안정한 세상에서는 중산층이라도 직장을 잃으면, 동시에 의료보험을 잃고, 그 상황에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바로 파산하게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제도는 덴젤 워싱턴 주연의 <존 큐>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곧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부가 같이 벌어야 중산층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데도, 유럽에 비해 탁아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주로 베이비시터를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공공 탁아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인가 보다.
오바마의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던 미국의 모습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데, 가령 흑인들은 왜 그렇게 슬럼가에서 마약이나 팔며 사는지, 미국 특유의 승자 우선주의(Winner takes all)는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복지제도가 우리가 기대하던 선진국의 수준과 거리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며, 놀라게 되고, 심지어 우리나라보다도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오바마의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미국인 특유의 자력갱생 정신, 경쟁지향적 문화, 기업가 정신이 성공과 실패를 주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때문에 복지제도가 그만큼 취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복지제도를 완비했는데, 그후 7,80년대를 거치며 경제가 어려워지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면서 복지정책이 오히려 퇴조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오랫동안 기회의 땅이었으며,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화 속에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데, 그것은 단지 노동자들이 자기계발을 한다고 해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미국적인 신분 상승의 신화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빈부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과 의료의 혜택은 골고루 받아야 하는데, 오바마에 따르면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엄청난 학자금 융자를 받는 데 그것을 갚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바마 역시 <담대한 희망>(이렇게 무게 있는 책이 미국에서는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과 향후 쓸 책 두 권에 대한 어마어마한 인세를 받아 학자금 융자를 간신히 다 갚았다고 한다(또 시카고에 집도 하나 구입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도심에 있는 공립학교는 범죄와 마약이 난립하고 교사에게 줄 월급이 없어 파트타임 교사를 고용하는 바람에 단축 수업을 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는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교외 지역에 집을 사서 그곳에 있는 사립학교에 자식들을 보내는데, 그런 지역에 집을 사서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려면 중산층 부모라도 허리가 휜다고 한다.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가계가 파산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고 보니, CSI나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병원비가 없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를 보았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유례 없이 격렬해지고, 기독교 근본주의까지 세력이 강해지면서, 미국이 분열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오바마의 진단이다.
내가 요즘 우려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모델로 삼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제3세계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엘리트들은 서양에서 지적, 정신적, 문화적 자양분을 얻었다. 그런데, 그것이 요즘은 부쩍 미국 중심이 되었다. 요즘은 유럽에 유학하는 사람들도 드물고, 웬만한 재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소위 우리나라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는 사람들은 거의 미국 유학이나, 미국 체류 경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재력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과 주로 교류하며 상류 문화를 맛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사회의 좋은 면을 주로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부쩍 미국 보수주의자들을 닮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경제 이론도 미국에서 수입하고, 종교 이론, 보수주의 논리도 미국에서 수입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이 개인주의 문화, 자력갱생 문화가 강한 데 비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복지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은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들(주로 서민과 중산층에 속한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든,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든, 보수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대개 복지제도가 강화되길 바란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것은 매우 아까워한다. 우리나라의 세금이 스칸디나비아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 정도의 복지를 바란다면, 세금을 그들만큼 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세금 부과의 투명성과 효율성, 분배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혼자 잘먹고 잘살면서 부를 과시하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 아마도 어떤 집단주의적 정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미국보다는 유럽식 모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드는 보험이나 연금도 위험하고, 까다로운 규정 때문에 제때 보상을 못 받거나, 원금을 잃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국민연금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할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것은 인지적 오류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판단으로 든 보험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과신은 인지심리학에서 지적하는 주된 오류 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렇듯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며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 책은 주로 복지정책에 치중하고 있는데, 이 점은 보수주의자들의 비난을 사기 쉽다. 만약, 이 책이 대선을 앞둔 예비주자로서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경제와 복지에 둘다 방점을 두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점은 민주노동당에 지적하고 싶은 점이다. 바쁜 직장인으로서 잘은 모르지만, 민주노동당이 다양한 계층을 네트워크로 엮는 작업에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직 종사자나 심지어 금융인 중에도 리버럴한 사람들이 많다. 열린우리당도 그 점 때문에 지적을 많이 당했는데, 만약 민주노동당이 이 나라를 총체적으로 책임질 만한 실무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유권자들은 표를 찍을 때 계속 주저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약진하려면, 경제, 법, 행정, 경영, 전문기술 등 각 분야에 해박한 인재들을 확보해야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그 인재들은 지식뿐 아니라 각계각층에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 내보내는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연령도 어리고 사회경험도 부족해 보이고 뾰족하게 내세울 만한 전문성이나 경륜이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바마처럼, 한국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을 매혹시키는 진보주의 정치인이 출현하길 바란다. 사실 보수주의자들은 뿔 달린 악마도 아니고 다 우리의 부모님이나 선생님, 직장 동료 같은 사람들이다. 서로 정치적 견해가 다른 것은 명백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도 아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누가 당선되든 특별한 이권이 걸려 있지는 않다. 물론 대기업 총수나 파워 엘리트에 속한 사람들은 첨예한 이권이 달려 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인구 구성상 소수이므로,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호소하는 화합의 정치를 추구한다면(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뭔지 명확히 인식한다면), 이해관계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라는 개념 자체도 우리나라와 미국은 다르다. 가령,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건설'은 진보적인 민주당의 뉴딜 정책을 연상시킨다. 미국 보수주의의 특징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인데, 박근혜 후보나 이명박 후보의 공약을 보면, 과연 그것이 보수주의인지 의문이 들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 7% 경제성장이라는 공약 자체가 모순이 될 것이다.
또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지적했듯,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세계화를 추진했던 경제관료들은 과연 진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을 낳았다. 외국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입장이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잣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중구난방 써내려왔는데, 끝으로 북유럽의 복지제도를 지적하고자 한다. 나는 90년대 말 외국에서 수십 명의 스칸디나비아인들과 함께 지낼 기회가 있었다. 다른 한국인들처럼, 그들의 복지제도를 부러워하며,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복지제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인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복지제도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걱정 없는 세상에서 자라났는데도 매우 부지런했다. 주로 20세를 전후한 어린 친구들이었는데도, 중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기 때문에 필요한 돈은 자신이 벌어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 한국인들은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 일이 흔했고, 다 큰 성인인데도 외국여행 비용조차도 부모에게 타서 쓰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경쟁이 격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 개개인이 더 노력하게 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계층간의 벽을 쌓는 경향도 농후해지는 것 같다. 특히 경쟁사회에서 자식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하기 위해 부모들은 교육, 경제적 지원, 인적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서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부모 잘못 만난 아이들'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쏟아붓는 시간과 자금은 점점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하류층에서 빈곤의 악순환은 점점 심화된다.
복지제도의 강화는 그런 면에서 '기회'의 평등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면, 가난한 부모의 자식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고,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어야 한다. 병에 걸리거나 직장을 잃어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책이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바란다. 그리고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이 보수주의자들도 설득할 수 있는 경제 논리와 실행력과 정서적인 호소력을 갖추고 계속 전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