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보다는 좀 한가한 제가 인사나눔터 올리는 것도 작은 배려겠져^^
예전에 읽은 책들중에 정민교수의 "죽비소리"가 많은 깨달음을 주곤 했었는데
하 대목 나눕니다요...솔직히 옛글도 좋지만 정민교수의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는^^;;
개심(開心)
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초 하나 바위 하나가 별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보았지만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리지 않았으나 그린 것이나 진배없을 따름입니다. -조희룡-
누군가 축수의 그림을 청해왔던 모양이다. 그리기는 해야겠는데 흥이 오르지 않는다. 공연히 먹을 갈아 붓을 끼적거려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붓하고 종이만 있으면 저절로 글씨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아는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잘 모른다. 흥이 돋아 붓끝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삽시간에 몇 장이고 끝마칠 그림이 몇날 며칠을 끙끙내도 난초 하나 바위 하나 그릴 수가 없다. 오죽 괴로웠으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결국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지만 나는 벌써 수십 번도 더 그린 셈이니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자료를 모으고 구상을 익히는 동안은 아무리 컴퓨터 앞에 앉아봤자 소용이 없다. 딴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생각은 온통 그리로만 향해 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환하게 열리면 컴퓨터의 속도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신명을 따라잡지 못한다. 몇 날 혹은 몇 달을 답답하게 꽉 막혀 있던 생각의 봇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예술을 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 인생을 산다는 것은 불현듯 다가오는 그 짧은 격정의 순간을 위한 기다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