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포스코그룹 공정거래협약 허위자료 제출 및 공익제보자 탄압 전모 폭로 기자회견’에서 김성진 참여연대 시민경제위 부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 김모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대기업에 회사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회사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A 대기업에 많은 물량을 납품했다. 문제는 A 대기업이 김씨 회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눈독을 들이면서 시작됐다. A 기업은 김 대표에게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김 대표는 당연히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A 대기업은 납품계약 물량을 대폭 줄여버렸다. 김 대표는 버틸 수 있는 재간이 없었다. 핵심기술을 보유해 잘 나가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에 졸지에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국정감사를 준비 중인 모 국회의원실에 들어온 제보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 등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기업의 횡포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면서 “여전히 갑인 대기업의 횡포는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허울뿐인 상생, 대기업 과실 챙기기

이명박 정부 시절 핵심 정책으로 꼽혔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허울뿐인 제도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공정위 직권조사 면제나 과징금을 깎아주는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서류조작까지 서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공정거래 위반사실을 숨기고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등급 인증을 받은 기업들도 있었다. 반면 중소기업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중소기업청의 여러 사업에는 대기업의 참여가 저조하다. 대기업들이 동반성장을 핑계 삼아 과실만 따먹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얼마 전 불거진 포스코의 동반성장협약 이행 평가자료 허위제출은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월 30일 ‘포스코의 공정거래협약 이행 평가자료 허위제출 관련 조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포스코가 2012년에 제출한 ‘2011년 공정거래협약 이행실적 자료’ 일부가 허위자료임이 확인됐고, 포스코가 받았던 인센티브를 박탈한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공정거래협약 이행실적 평가자료의 날짜와 회의록을 가공한 것이 적발됐다. 포스코는 2년간 공정위의 서면실태 및 직권조사 면제와 공정위 표창 지위를 박탈당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담당자의 과욕 때문에 실수가 생겼다. 고의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반면 참여연대는 “포스코 계열사에서도 자료조작 의혹이 나오는데, 공정위가 포스코 한 곳만 적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장흥배 간사는 “내부 고발자를 통해 이 사안이 밝혀졌다. 제보자는 포스코와 계열사가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허위기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포스코와 계열사의 동반성장 담당자가 모인 회의록에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나온다. 하지만 공정위는 계열사를 조사했는지, 안 했는지도 밝히지 않고 포스코 한 곳만 허위기재를 했다고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 관계자는 “여러 의혹이 나와서 포스코 계열사도 조사했다”면서 “계열사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참여연대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포스코와 같은 사례는 4월에도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27개 기업을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등급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여기에 선정된 기업은 과징금 감경, 직권조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경실련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선정된 기업 중에 불공정거래로 과징금을 받은 기업이 많아, 심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가 맞았다. 지난 4월 공정위는 포스코, 포스코강판,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신세계 등 5개 기업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우수등급 기업 인증을 취소했다. 담합, 계열사 부당지원 등의 불공정행위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경실련 경제정책팀 이기웅 부장은 “동반성장과 관련해서 대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어떻게 규제하겠다는 것은 없다”면서 “대기업들이 여러 가지 꼼수를 부려 동반성장 관련 인증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페널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7일 동반성장위원회 유장희 위원장(왼쪽)이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와 중기 적합업종 지정 권고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전문가들은 공정거래협약 이행 평가자료 허위기재가 포스코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장흥배 간사는 “동반성장 관련 정책이 대기업을 제재하는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 문제”라며 “이번에 포스코는 공정위에 걸려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다른 대기업이 허위자료를 제출한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허위서류까지 만드는 대기업들이지만, 정작 중소기업에 도움이 되는 사업에는 참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시늉만 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동반성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원가절감형 대·중소기업 공동사업’ ‘동반성장 복지포인트 제도’ ‘대기업 무상이전 특허 상업화’ 등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청 사업, 대기업 참여 저조

원가절감형 사업은 대·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부품 성능개선, 수율개선 등의 원가절감형 과제를 수행하는 경우 정부가 1년간 소요비용의 50%를 지원하게 된다. 나머지 50%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눠서 부담하는 형태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었다. 대·중소 동반성장 사업인데도 갑과 을이 명확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컨소시엄이 부담해야 할 기업자부담분(50%)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떠안고 있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민주당)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업자부담분(52.2%) 중 대기업이 부담한 것은 11.2%에 그쳤고, 나머지 41.1%를 중소기업이 부담했다. 2012년에는 기업자부담분(50.8%) 중에서 대기업이 17.3%를 부담해 조금 올라갔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이 31.9%를 부담했다.

‘동반성장 복지포인트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정부와 대기업, 중견기업, 협력사가 공동으로 자금을 조성해 1·2·3차 협력사 종사자에게 복리후생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중소기업청은 이 사업을 위해 2012년에 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실제 사용한 것은 1억원에 불과했다. 이 제도에 참여한 대기업은 전무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국전력 자회사 6개사만 참여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와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가 많은데 어떤 곳은 해주고 어떤 곳은 안 해주는 것을 어떻게 정하나”라면서 “대기업은 나름대로 협력업체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을 내세운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 역시 근절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2012년 동반성장지수 대상 73개 기업과 거래하는 1차 협력사 902개 가운데 23.9%(216개사)가 최근 1년 이내에 불공정거래를 당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대기업들은 7485억원의 상생협력 출연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모아진 출연금은 1907억원으로 25.5%에 불과했다. 2011년 2376억원을 약속한 포스코는 3년 동안 295억원을 내놓았고, 587억원을 약속한 삼성디스플레이는 51억원, 현대중공업은 190억원 중 11억원, LG전자는 93억원 중 12억원만을 출연금으로 내놓았다. 언 발에 오줌만 찔끔 싼 격이다.

박완주 의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선언’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월한 대기업의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정부도 상생협력을 제도적으로 상시화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