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에게 1 - 고별서,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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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네님이 보내준 술을 한 병 다 마셨다. 그리고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몽땅 천천히 다 읽었다.
책의 끝부분에 연암 박지원이 죽음의 순간 친구들을 초대하고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나 죽거든 화장하여 수목장을 치러 달라. 내 몸과 우주의 모든 것들이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유시민의 유언서 같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삶보다 죽음을 설명한 부분이 더 많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처음의 제명에 어울리는 책이었다.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유시민의 삶의 역정이 연도 별로 꽤 충실히 그려져 있었다.

그는 나답게 살자고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 두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관심은 야당이 지지부진할 때 민주당도 아니면서 대선 후보 15%의 지지율로서도 왜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하였는가.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런데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내게 민주당과 합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에게 정치 참여와 대통령 출마를 권했다.  나는 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후 벌어진 일들과 관련한 내 안의 미움, 본노, 원망, 두려움이 여전히 갈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 191쪽

나는 머리를 끄덕이지도 않고 몇 번이나 이 부분을 읽고 있었다. 아, 그랬었구나. 민주당과 합치면 금새 40%의 지지율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랬었구나, 그랬었구나.
대통령을 왕이라 치면 동북아는 내성외왕을 대통령의 조건으로 본다면,
내성외왕이란 안으로 도덕적으로 성인(聖人)이 되고 밖으로 실천적 능력을 갖춘 왕이 됨이다. 동북아의 성인은 도덕성만 강조하지도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도덕성에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춘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유시민은 충분하다. 그는 자신의 가슴 속에 담긴 분노와 보수 세력에 대한 미움으로는 대통령의 자격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기야 유시민이 보는 내성외왕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지근하게 보이건 말건 분노를 드러내지도 복수를 행하지도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內聖外王(안으로 성인이었고 밖으로 왕)이었다. 유시민의 김대중 대통령 이야기를 좀 적자.

유시민이 보는 인간은 생물학적 노화로 필연적으로 바보처럼 살게 된다.
청년 헤겔과 노인 헤겔, 청년 마르크스와 노인 마르크스, 청년 김지하와 노인 김지하를 생물학적인 노쇠함의 탓으로 보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생물학적 노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예외적인 인물로 보았다. 문익환 목사와 리영희 선생도 나이가 든 뒤에도 철학적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 시킨 인물로 보았다.
- 76쪽

유시민, 그러한가. 내가 그대를 좋아한 이유는 분노와 미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성외왕의 도덕적 성찰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소시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시민을 좋아한 것이다. 유시민은 내면에 도사린 분노와 미움을 싫어하였고 나는 내면에 도사린 본노와 증오를 사랑하였으며 논리적 정합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썼다. 이점에서 유시민과 나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 민망해진 나는 그의 나이가 나보다 7살 적다고 내가 더 나은 게 무언가 생각해 보았다. 아 내 눈이 그보다 더 좋다. 그는 원시가 되어 돋보기를 끼고 책을 본다고 하였다. 나는 대부분의 책은 돋보기 없이 본다. 탐구당의 동양사연표는 손바닥보다 작다. 활자는 4-5포인트나 될까. 이 책조차 눈을 가늘게 뜨고 그냥 읽는다. 책을 보니 내가 그보다 나은 점은 그뿐이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을 정리하면서 하루 종일 들었다는 the saddest thing과 dust in the wind를 들으면서 쓰고 싶다. 자신의 장례파티에서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유시민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여, 자신이 이러한 부모님 아래 태어난 것을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을 80%는 행운이라고 하였다. 나 역시 그렇다. 만약 내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못하였다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식으로 내 나이 12살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내게 물러준 것은 그 또래 나이나 그 후나 현실에 취약한 자신의 조건을 확인하고 감수해야 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간적 존엄과 긍지를 품고 살았다. 그 긍지를 남들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해도, 나에게는 그 어떤 긍지보다 크다. 그리고 부모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유시민은 서른 가까운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나는 어릴 때 잃었다는 것이 아버지가 더 오래 살았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일찍 돌아가심에 방점을 찍고 싶지 않다. 예순을 넘기면 불운과 그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지 못한 것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내가 남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들은 모두 아버지에게서 비롯된다. 귀가하면 호롱불을 켜 두고 책을 읽으시던 모습, 새벽에 일어나 쇠죽을 끓이시면서도 사서오경을 외우시던 모습, 이러한 아버지를 기억하는 나는 얼마나 큰 행운아인가. 율곡에는 못 미치지만 웬만한 역사적 인물보다는 어린 시절 공부를 훨씬 잘했던 나의 가계까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 이 글에서 밝히지만 다산 정약용의 머리는 우리집에 왔으면 머리축에 못 낀다. 단지 그의 가계를 살펴보면 출세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랑스런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긍지 있는 삶을 살았는가. 그렇다. 언제나 그렇다고는 못 해도 분명히 그렇게 살았던 기억이 수십 년은 된다. 이 글은 유시민의 책과 그 독후감이므로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자. 그러나 간간히 말한다. 책은 어차피 내가 읽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이런 말을 한다. 이걸 나는 참 좋아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듣고 능동적으로 세상과 부딪치지 못했다. 번민하면서 주저하는 내게, 세상이 먼저 부딪쳐 왔다. 세상은 내게 체념하거나 굴복하라 했고, 나는 저항했을 뿐이다. 부당한 강요에 굴복하면 삶이 너무 비천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과 품격을 지키려고 발버둥쳤다. 성년이 된 이후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한 감정은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었다. 수치심과 분노, 슬픔, 연민, 죄책감,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 34쪽

유시민은 대학의 학과를 선택할 대 법학과가 아닌 경제학과를 선택한 이유를 길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법학과 보다 경제학과 합격선이 유시민이 사회과학대에서 학과 선택 시에도 월등히 높다고 하였다. 그렇다. 유시민 시기가 아니라도 광복 이후 거의 70년 동안 경제학과는 법학과 보다 커트라인이 월등히 높았다.

기득권과 더불어 살면서도 그 달콤함과 안일함에 젖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거나 악에 가담하지 않고 살려면 내면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아예 기득권 근처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 인간으로서 자존은 확실하게 지키고 싶었다.
35-36쪽

유시민은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노라고 길게 언급하고 심지어 독일어로까지 읽으면서 이해하고자 했던 카프카의 <성>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 그런 내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기 어려운 것을 누구보고 읽으라는 거야.

나도 실존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도 유시민과 같은 말을 하겠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공부하면서다. 온통 한자어였다. 사서오경을 읽고 가르치는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아이쿠라 법대 출신의 바보 자식들...

하여간 유시민은 실존주의의 이해 방식이 틀려 먹었었다. '삶은 불안하고 허무하며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고? 그거야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 유시민은 이런 식으로 참 영리하게 읽었었다. 실존주의는 실존이라는 말이 본질과 반대어 또는 상대어라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들은 본질을 까 부수려 했다는 거다. 본질, 보편 즉 서구 중세 철학을, 그때까지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던 기독교적 명제를 거부한 것이다. 하여간 그만 두고... 책은 제대로 못 읽더라도 열심히 탐구하려 했으면 그만인 거 아닌가.
유시민은 실존주의를 넘지 못할 벽이라고 실토했다. 내 보기에 유시민은 실존주의를 이미 넘어 선 경지였다. 국회 첫 등원 때 백바지를 입었으면 실존주의자인 것이다. 실존주의는 기존의 사고를 깨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이 책은 제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주제임을 알게 된다. 그는 말한다. 자신도 자살하고 싶었다고. 우리나라는 자살공화국이다. 이 자살은 서양의 어떤 철학자가 하루에 12번씩이나 자살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걸 읽은 기억도 나에게 있다.  유시민은 국군보안사 대공분실에서 죽어버리지 않은 것을 후회할 만큼 얻어터졌다고 했다.

왜 사냐 싶었다. 휴교령이 내려지면 모든 도시에서 동시에 민중봉기를 일으키자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오직 광주의 대학생들만 그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그곳에서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 있었다. 학살을 저지런 자들의 훈계를 들으면서 구차하게 살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절망감이었다. ... 81쪽

유신헌법의 포장지만 바꾼 국민투표에 참가했고 국민 96%가 참여했고 투표자의 92%가 찬성표를 던졌다. 전두환은 새 헌법에 따라 임기 7년의 대통령이 되었다 ... 나는 실망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하고 싶은 생각도 의지도 없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때 나를 붙잡아 준 것은 희망이나 용기가 아니었다. 억울함과 분노, 복수심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82쪽

그는 죽음, 자살 이런 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했지만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으며,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읽었지만 '주사파'는 아니었다. 그 이유를 그는
공부의 출발점은 호기심이지만 그 과정은 의심이다. 공부한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인다면 누구도 특정한 '주의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 88쪽

유시민의 초등학교 6학년은 우리나라 수출액이 10억 달러였다. 수출입국은 나라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국어시간에는 수출입국의 표어 짓기를, 미술 시간에는 포스터를 그렸다. 10억 달러 돌파의 기적을 예찬하는 대형그림판이 붙었으나 수입이 그보다 훨씬 많았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만 말을 하는시대여서 누구도 이런 헛소리를공개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딴소리를 하다가는 종북세력이나 친북좌빨로 몰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거꾸로 매달릴 위험이 있었다.
유시민은 나보다 일찍 알았겠지만 박정희 18년 동안 무역수지는 적자 230억 달러였으며 김대중 정부 5년의 무역수지는 흑자 1800억 달러였다. 대중들은 박정희는 흑자로 김대중은 적자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대중들에게 지배당하고 무시당한다.

그리고 그는 죽음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 생물학적인 죽음과 철학적 죽음, 그리고 유물론을 말한다. 오늘날 죽음, 생물학적인 죽음은 뮤물론의 바탕에 있다. 병원에 가 봐라. 생물학적으로 죽었을 때 환자라고도 않고 환자의 시신을 철거하라고 말한다. 철학자라고 죽지 않았다고 심하게 떠들면 정신병자 취급한다. 이런 생각을 따르면서도 유물론자라고 말하면 아직도 화내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유시민의 자살 충동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그가 왜 정치를 구만 두겠다고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유시민은 <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의 주제로 옮긴다. 긴 사색 끝에 프로이트를 언급한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전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꼭 집어낸다. 그는 신경생리학적 지식이 부족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을 언급한다. 타인의 기쁨과 고통을 인지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신경세포 거울뉴런이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정신장애아로 분류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다산 정약용 같은 놈은 기생과 즐기고 기생을 욕한다. 거울뉴런이 작동하지 않는 정신쟁애아 또는 짐승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인간의 이해는 신경생리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됨도 알 수 있다. 과학적 사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모두가 유시민의 다독의 영향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죽음을 말한 책답게 <나는 무엇인가>를 천착한다. 나는 이런 주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질문에 따른 해답이 지나치게 많으면 생각을 중지하고 소박한 견해 정도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나름대로 옳은 반론이 결론보다 수백배나 되는 생각들은 정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혜민 스님이라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다는 백인이 있다. 이 놈이 쓴 글에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찾아헤매었다는 글을 읽었다. 참 돌대가리로다. 사실 이 남자는 돌대가리다. 미국에서는 결코 팔리지 않을 책을 한국에서 백인이라니까, 하버드 대학 졸업했다니까 잘 팔리는 거다. 하버드 대학이 참 좋은 대학이고, 서울대학은 나쁜 대학이며 학생들까지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거의 99.9%일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고 반대이다. 하버드 대학은 몰라도 하버드 대학생은 90% 정도 머리가 나쁘다. 한국에서 공부했다면 지방대학도 겨우 들어갔을 아이들이다. 어떤 여학생은 몇 년 동안 거리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였다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기도 하였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럴 거라 여기었다. 나의 짐작을 확인하는 기쁨도 느꼈다. 2-3년 노숙자가 되면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볼 수 있겠는가. 미국 교육 제도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보다  좋은 점은 별로 없고  나쁜 점이 더 많다. 서울대학교 인문대생들에게 경제학이건 자연과학이건 의학이건 가르치면 먹혀 들어간다. 하버드 대학 말인가, 이런 건 상상도 못한다.
내 말에 동의하건 말건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돌대가리로 보니까. 하여간 유시민은 혜민 스님과 다른 방법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천착한다. 자신의 과거, 운동권이었던 삶, 한국의 억압, 그리고 생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의 권리를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음 속에 정치를 그만 둔다는 말을 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유시민의 죽음 이야기는 계속된다. 레이건대통령이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 그는 자신의 병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철학적 자아의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였다고 말한다. <존엄한 죽음>에서 이렇게 말한다. 2008년 2월 폐질환을 받던 고령환자가 의식을 잃었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고 있음과 가족들이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병원에 요청한 사건이 있었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만장일치로 확정한다. 유시민이 이 글에서 명석함을 발한다.


연명치료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철학적 자아는 감각과 정신, 욕망과 이성의 통일이다. 운동을 멈춘 몸에 존재하는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교수'와 '김한조' 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존엄이었다. - 129-135쪽

여기까지 읽었을 때 유시민은 자신의 철학적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나는 판단하였다.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는 없는데 지지자들을 그에게 이를 위해 연명할 것을 요구한다. 유시민은 자신에게 연결된 산소호흡기를 스스로 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아주 슬픈 이야기를 한다. <자유 의지>라는 장에서다. 스티븐 호팅 박사 이야기는 그런 대로 인간의 의지와 그 승리를 말한다. 자살에 성공한 라몬 삼페드로(Lamon Sampedro)라는 남자 이야기다. 25살에 해변에 떨어져 일곱 번째 경추가 부러진다. 그는 펜을 입에 물고 글을 쓴다.

라몬 삼페드로는 고통, 절망,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분이다. - 144쪽

그에게는 육체적 감각이 너무나 중요했다. 감각이 없이는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수 없다. ... 그 여인은 키스만으로, 그가 존재한다는자체만으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그는 그녀가 예전에 하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몸을 통하지 않으면, 성적으로 느끼지 못하면,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빗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빗물은 느낄 수 없었다. 사랑을 머리로는 알 수는 있지만 몸으로 느낄 수 없는 삶은 라몬에게 그것은 지옥이었다. 그는 지옥을 떠나 자유를 얻고 싶었다. - 145쪽
...
살아 있는 순간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는가. 라몬 삼페드로가 이렇게 묻는 것 같다. - 146쪽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2가지 관점으로 써진 책이다.
첫째 ; 유신체제와 그 연장인 전두환 독재에 저항하였으며 최소한도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였다.
둘째 ;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는 생물학적인 죽음이며 하나는 철학적 죽음이다. 죽음을 천착하는 과정에서 유시민은 자신이 정치적으로는 생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죽었음을 자신을 따르는 유관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안락사를 선택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자살을 도와주는 것이 유시민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임을 설득하고자 한다. 그리고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유시민은 정말 죽은 것일까. 왜 죽어 버렸을까.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과 떼어 놓을 수 없다. 2003년 개혁당을 만들어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다. 유시민의 기여는 개인이나 단체 수준으로 보아도 가장 컸었다. 그래서 노무현은 당선된 이후에 민주당으로 먼저 가지 않고 개혁당의 유시민을 먼저 찾는다. 그 다음날부터 유시민에게는 안티라는 안티가 다 몰려든다.
노무현 재임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민주당의 안티 노무현이었다. 이는 정똥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자발적으로 안티 노무현이 되는 호남 유권자들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호남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안티 성향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나에게 누가 그 이유를 물으면 안티 노무현, 안티 유시민 행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모두 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안티 노무현과 안티 유시민을 말하려면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감정의 원인은 경상도 민중들과 정치세력이 확대 조장한 것이며 전라도 사람들은 억울하게 당하였다. 마치 유시민이 부당하게 고문으로 폭행을 당한 것과 같다.
이 원한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았다. 호남사람들과 대화하다 듣는 말이 있다. 우리 호남사람은 영남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위대한 자존심은 간간히 역으로 분출하기도 한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준 후에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2003년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 중에는 안티 노무현으로 돌아선 사람들 대부분이 호남 사람들이었다고 나는 추정한다. 대중은 민중 민주주의 혁명의 주역이기도 하면서 자진해서 지역감정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개상도의 또라이들은 언급하지도 말자. 위대한 민주주의 역명 전사 호남 사람들이 표변하였고 그 오물을 유시민이 모두 뒤집어 쓴 것이다.  
5년 내내 노무현에게 오물을 퍼붓다가 노무현이 죽으니 숙진 듯하였으나 MB 정권 내내 유시민을 씹었다. 그리고 문재인과 안철수에게는 관대하였다. 마치 유시민을 씹은 것이 유시민에게 결함이 있다는 논리적 정합성과 실제적 적합성이 있었음을 입증하려는 듯하였다. 


당신은 유시민 실패의 원인을 왜 호남 유권자 탓을 돌리는가. 한국 정치지형도에서 지역 감정은 논리적으로는 바르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찾아야 될 것이다.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기초 의원 선거에서는 야당 유권자들의 표가 여당 유권자보다 많이 나왔음에도 같은 날 같은 투표소에서 찍은 도지사 선거에서는 야당 유권자의 지지표가 적었었다. 야당 유권자의 표는 거의 70% 정도가 호남유권자에게서 나온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 될 것인가. 그렇지는 않거나 완화될 거라고 본다. 유시민에게 오물 뿌리기가 지나쳤음을 후회할 시기도 되었으며, 문재인 안철수 지지 성향에서 그런 병폐가 개선되었음을 지난 대선에서 확인한 것이다.

유시민은 죽었다. 생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죽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독후감을 유시민의 고별서라고 제명하였다. 제명이야 어떠하건 독재자의 딸이 어른거리는 앞으로 5년 동안 유시민은 인간적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까. 그토록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유시민에게 분노 미움 좌절이 사라졌을까. 이 책이 끝나는 339쪽까지 꼼꼼히 읽었으나 146쪽 라몬 삼페드로의 죽음 이후는 재미가 없었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내놓은 사족 같았다.

그리고 유시민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생물학적으로 죽은 것인가고. 여인의 엉덩이가 저렇게 허벅진데도 서경덕처럼 생물학적으로 죽어 버릴 만큼 도통(道通)하였느냐고. 저 여인의 엉덩이는 우리가 이 땅에 실현해야 하는 이상이지 않는가고.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거나 포기한다면 비겁한 일이 아닌가고. 베토벤은 끝없이 자살을 꿈꾸면서 작곡을 하였다. 생명을 연장하는거나 다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살린 것은 음악이었다고 유서 아닌 유서를 남기었다.
우리가 이 땅의 이상, 민주주의와 통일을 포기할 수 있는가고. 나는 아직도 문재인보다 안철수보다 유시민 당신을 더 사랑한다. 유시민 당신은 道通하지 말라. 본노와 미움을 김대중 대통령처럼 없애지 말고 더 미워하라, 더 분노하고, 더 좌절하라. 그리고 끝까지 가라. 당신이 실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까뮈였고 사르뜨르였으며 니체였다. 당신이 도통할 필요가 없다. 사악한 독재자처럼 자신의 말을 뒤집어도 좋다.
저 여인에게 물어 보라. 서경덕처럼 도통한 남자를 좋아하는지... 이 땅은 당신의 분노를 기다린다.

자 다시 유시민에게 묻는다. 고별의 책에 당연히 있어야 할 자기 반성은 적절하고 진지한가. 저 여인을 이 땅이라 여기면 당신은 55년을 함께 살았다. 저 연인을 정치적 동반자나 지지자였다면 10년 이상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 서경덕 같은 도덕군자의 횽내를 내어도 되는가. 당신의 잘못은 무엇인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이어 쓴다.  

유시민에게 2 - 반성없는 실패,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