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창세기편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먹기를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구분하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인간이 선악을 구분하게 된 것을 하나님은 죄로 여기시고 그것을 단죄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함으로써 비로소 고등생물로 진화를 완성했으며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여타생물들은 나아닌 타자를 인식할 때 먹이와 먹이가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오로지 인간만이 먹이와 먹이 아닌 것 뿐 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엄을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 그것은 하나님에겐 죄악이었으나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졌던 것이다.
이 부끄러움은 죄악을 낳은 게 아니라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고비고비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국가를 국가답게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더욱 가까워 진 것이다.
2013년 대한민국은 모든 부끄러움을 돈을 위해서, 남한테 튀기 위해서, 사리사욕을 위해서 모두 던져버렸다. 심지어 부끄러움을 던져버린 자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소위 종북 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표현의 자유(?)를 당당하게 누리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정원은 법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서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질서의 최고 가치인 선거에 개입해 그 고귀함과 존엄을 훼손하고 조롱했다. 그리고 그 사법적 단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중범죄를 저질렀다. 이전 정부의 정상회담 록을 일개 공무원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쉽게 공개해버리고 욕보이는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살인자가 살인죄를 받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훼손된 헌법적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대통령과 여당 국회의원은 이를 부끄러워하거나 바로잡기는커녕 나 몰라라 하거나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조롱을 퍼붓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가기밀문서를, 국가 간 약속과 신뢰를 아무런 안전장치나 법으로 정하는 절차 없이 일개 공무원이 자신의 정파적 또는 사리사욕 목적에 의해 아무렇게나 다루는 집단으로서 국가로서의 국격을 갖추지 못한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나라란 말인가?
이 세상 어느 문명국가가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2013년 대한민국은 에덴동산에 있던 선악과를 필요로 하는 국가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것을 지켜야하고 지키지 못했을 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모인 것이 국가란 말이다.
그렇게 조롱꺼리로 전락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에서 엿듣게 된 노무현은 참으로 멋있는 사나이였다.
국가 정상 간의 협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주어진 제약조건과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상대의 완고함 앞에서 상대의 자존심을 흠집 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누구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
이런 대통령을 지켜내지 못한 우리에 포함된 내가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내 모습이 너무도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