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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 을 보고
ㅡ 왜 감자(지슬) 인가?
잉카제국을 몰락시킨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감자가 전해졌던 때의 유럽은 종교와 미신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마녀사냥의 시기였다. 이단의 땅에서 전해진 까닭에 악마의 식물이라 여겼던 감자는 시체를 파내어 영혼을 잠식하는 악마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춘궁기가 되면 차디찬 땅속에서 꺼내어져 가장 굶주리고 절박한 이들의 마지막 식사가 되곤했다. 우리의 감자 역시 유럽의 감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식인 쌀이나 잡곡이 귀한 가장 척박한 곳, 제일 가난하고 굶주린, 땅의 사람들에게 감자는 귀한 양식이었다.
영화는 흑백이다. 계절 역시 녹원의 푸르름이나 다채로운 색이 사라진 무채색의 겨울. 오직 두가지로 양분된 그 곳의 이야기는 흑백으로 보여진다. 죽이려는자와 살려는 자 옷을 벗기고, 때리고, 유린하고, 먹는 자가 있고 도망가고, 매맞고, 짓밟히고, 굶주린 자가 있다. 언어 역시 그렇다. 제주의 말을 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관객은 이 흑백의 객관자가 되기위해 자막을 보여준다.
영화는 제주 4.3 항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은 왜인지 이유조차 묻지않고 죽이고 죽어갔음을 말한다.
북쪽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의 끝에서 끊임없이 식칼을 갈던 사내 자신의 어머니 복수를 위해 낯선 이의 어머니를 죽인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죽는 순간, 도망간 자식의 마지막 양식이 될 감자를 품는다. 500명의 아들을 먹이기위해 스스로 끓는 죽 속에 몸을 던진 제주설화의 할망처럼....
끊임없이 물동이를 지고나르며 돼지를 삶아 대던 어린 취사병은 학살과 폭행, 겁탈을 일삼는 마약중독자인 형을 감자를 삶듯 뜨거운 솥에 넣고 죽인다.
영문도 모르고 학살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마치 땅 속에 숨어 자라나는 감자처럼 동굴에 숨어 무기력하게 기다린다. 이유모를 이 환란이 어서 끝나주길 기대하면서....
그러나 죽은 어미의 곁에서 버둥거리던 갓난 핏덩이의 울음조차 끝내는 힘없이 잦아들며 이 학살의 비나리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영화는 제의의 형식으로 때론 관조적으로 때론 담담히 정지화면같은 유려한 영상을 통해 어이없는 역사를 말한다.
감자처럼 땅속에 숨었으나 끝내 캐내어져 죽어간 감자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묻는 듯하다. 이 광기의 현대사가 모든 제사의 끝 지방을 태우는 소지의 덧없는 사라짐처럼 과연 끝이 났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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