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 회원가입
회원 게시판
살아왔던 일일랑 잊을 만하고
내일시 | 2013-03-26 01:13:37 | 조회 7435 인쇄하기
http://usimin.co.kr/70433     


트위터 페이스북
- 이 글은 충북광장 자유게시판에서 함께 입력된 내일시님의 글입니다.


밀물드는 가을 저녁 무렵

고운기

   

1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오고

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산마을로 들어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사립문 밖에 나와 산과 구름이 겹한

새 날아가는 쪽 하늘 바라보다

밀물 드는 모랫벌 우리가 열심히 쌓아 두었던

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

낮의 햇볕 아래 대역사를 벌이던 조무래기들

다 즈이 집들 찾아들어가 매운 솔가지 불을 피우고

밥 짓고 국 나르고 밤이 오면 잠들어야 하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분주히 하루를 정리하고들 있었다

그러면 물은 먼 바다에서 출발하여

이 마을의 집 앞까지 밀려와 모래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부터 잠재웠다

열심히 쌓던 모든 것을 놓아 두고

각자의 집으로 찾아들어간 조무래기들의 무심함이나

물은 사납거나 거세지 않게

천천히 고스란히 잠재우고 있었다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와

산마을 어디로 사라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2

이 도시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어둠

먼 시가지가 보이는 언덕길 버스 종점에 내려

돌아올 버스 토큰 하나 남았던 허전함처럼

모두 쓰고 버리고 힘들여 쌓아놓고 오는 밤

불을 키우고 어둠을 밝혀

한낮의 분주함처럼 서성이지만

먼 옛마을에 찾아와 호롱불 몇 개로 정체를 밝히던 어둠이여

오늘 인공의 빛을 피해 찾아오는 밀물이여

이미 어린아이 적처럼

만들었던 것들과 무심히 결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깊은 잠을 주고 또 평평히

세상의 물상들 내려 앉히는

대지의 호흡이여

어느 땐가 밤이 깊어져

물은 떠나온 제 땅으로 돌아가고

백지처럼 정돈된 모래벌에 아침이 오면

이루었으나 아무것 이룬 것 없는 흔적 위에

조무래기들 다시 모여들었더니

물이 들어왔다 나간 이 도시의 고요함을 딛고

내가 간다

살아왔던 일일랑 잊을 만하고

새 벌판은 끝이 없어

또 쌓아야 모습은 못날 뿐이지만

일이 끝나 날이 저물면

가슴에 벅차도록 몰려오는 밀물은

산이 되고 밭이 되고

집과 자동차와 친구가 되고

정승이 되고 나라가 되고

희망도

사랑도 되었을 것을.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다시 갔는데, 문이 닫혔네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참 이상도 하지요. 마음이 고요했습니다. 내일 할 일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는 동안, 잠시 잠시 브레이크를 밟고 어둠도 보았습니다. 참 편했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둠은 늘 고요한데, 왜 그리 벗어나려 했는지 모르겠어요.

책들이 모두 창고 속에 있는 줄 알면서도 방안의 책장을 보다 고운기 시인의 첫 시집을 찾아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좋아하는 황동규나 강연호, 그리고 김종삼이나 장석남 시인의 시들은 공부를 위해 샀고... 유일하게 이 시집이 시를 읽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산 첫 시집이네요.

이 시는 천천히 읽어야 해요. 밤이면 더 좋고요.

핸드폰 하나 잠시 놓아버린 것 뿐인데... 많은 것들이 제게 옵니다. 이 밤은 이 시집과 오랜만에 연애합니다. 저녁 6시까지 전 자유입니다.^^

     

덧글쓰기 | 전체글 0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시민광장 일정표 시민광장
62750 1004통일포럼 강연회 2 내일시 13-04-04 0 0 7927
62749 1004통일포럼 강연회 1 내일시 13-04-04 1 0 8196
62748 [영상]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라디오 광고 페이스북   2 그림자村 13-04-03 2 1 35822
62747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4 참사람 13-04-03 3 0 15503
62746 하남시 신장동에 박근혜 대통령의 차명재산이 있다네요... 하남용이 13-04-03 0 0 7602
62745 제3회 문학광장 백일장 및 헌정시집 발간   10 조이풀 13-04-03 4 0 17756
62744 [회원모집] 참여광장 '시민무대'에 동참하실 분을 모십니다.   7 불출 13-04-03 1 0 7196
62743 [참여광장 개설신청] 시민풍물패 개설 신청합니다   36 도봉솟대 13-04-02 0 0 6747
62742 도덕성도 없고, 자질도 부족하면 사퇴해야겠죠?? 도리돌돌 13-04-02 0 0 7244
62741 강원 강릉광장 낭만도로시님의 결혼식   6 태목(최두한) 13-04-02 1 0 7156
62740 1/4분기 김해 시민광장 회계보고서 수피아 13-04-01 1 0 7871
62739 [어떻게 살 것인가] "첨맘"님 저자 강연회및 사인회모습(교보..   12 그림자村 13-04-01 2 0 44086
62738 登廳합니다 꾸벅^*** 이무현 13-04-01 0 0 7806
62737 [산벗]시산제 축문-아사달의봄님 씀   1 다정무심 13-04-01 3 0 18297
62736 노무현 시민학교 - 첨맘님 강연   1 겔포스맨 13-04-01 1 0 7436
62735 <문학광장> 시 응모 2편 ㅋㅋ   2 무자 13-04-01 0 0 6911
62734 2013년 1기 시민광장 제 2 강 안내   6 진실을찾는사람 13-04-01 2 0 9179
62733 시민광장-노회찬은무죄다 페이스북 트위터   2 조이풀 13-04-01 2 0 6809
62732 시민아카데미 1강 소감문   7 솔바람향기 13-04-01 0 0 5453
62731 노원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2 도연아빠 13-03-31 5 0 18115
62730 경기서부광장 단합대회 계획안   4 한티 13-03-31 2 0 6826
62729 사랑합니다   8 솔바람향기 13-03-30 2 0 6894
62728 4월2일(화) 참여정책연구회 시즌2 제12차 토론회 안내   2 그림자村 13-03-30 2 0 7126
62727 초상화가 표준영정이 될 줄이야... 노무현시민학교 13-03-29 1 0 7149
62726 박근혜無能 이무현 13-03-29 1 0 7151
62725 이렇게 살고 있어요   5 으뜸벗 13-03-29 2 0 6739
62724 (문학광장)저녁은 여섯시님, 전서구님 감사합니다.   11 조이풀 13-03-29 1 0 6844
62723 [산벗]노원광장 서울광장과 함께하는 수락산 시산제 다정무심 13-03-29 1 0 6803
62722 3월29일 성북정모 사진 & 출석부   2 푸른호호 13-03-29 0 0 7626
62721 2013년 봉하마을 방문에 관하여~~ 호인하하 13-03-28 0 0 6761
62720 [시민방송] 명기의 사민남녀-<제1부> 그림자村 13-03-28 1 0 7697
62719 박근혜님께 묻읍니다 ?? 이무현 13-03-28 0 0 6891
62718 [시민방송 예고] 잠시 후 오후14시~ "명기의 사민남녀"를 방..   2 그림자村 13-03-28 1 0 21362
62717 [참여광장 개설신청] 참여광장 '시민무대'를 개설신청합니다.   31 불출 13-03-27 3 0 21537
62716 팍팍한 경제에 후원   3 정음아부지 13-03-27 3 0 19062
62715 김재철 해임…조중동, 김재철은 ‘희생양’·방송3사, ‘축소.. 0Ariel0 13-03-27 0 0 7619
62714 유머 국사암기법 189 연상달인 13-03-27 0 0 7651
62713 3월 28일 유시민의 허니책방 - 고려대학교 시민광장 13-03-27 1 0 9644
62712 [동영상]제3회 - 솔바의 도란도란 우리말 퀴즈   1 그림자村 13-03-27 1 0 29930
62711 포스트 김재철에 대한 단상 알콜소년 13-03-27 0 0 7811
62710 제가 송파구청 맞은 편에 사무실을 냈습니다.   18 dreamer 13-03-26 0 0 16938
62709 <동영상>제5차 문학기행 후기! 푸른호호 13-03-26 4 0 25453
62708 국민혈세로 개인빛 탕감 하는 행복기금은 역차별 기다리면 빛.. 목금토 13-03-26 0 0 7943
62707 [문학광장] 4/15(월) 노무현 헌정시집 시원고 모집(노무현재..   6 조이풀 13-03-26 4 0 17270
62706 5.18 성지(제5차문학기행) 여덟번째-마지막 조이풀 13-03-26 1 0 8167
62705 봉하마을 방문 및 밀양 학명제 방문 데이젤 13-03-26 0 0 7487
62704 천불천탑 운주사,화순(제5차 문학기행) 일곱번째   1 조이풀 13-03-26 1 0 7949
62703 고인돌 선사시대 유적지,화순(제5차문학기행) 여섯번째 조이풀 13-03-26 1 0 7851
62702 제5차 문학기행 후기-좋은하루님 글   3 조이풀 13-03-26 2 0 7566
62701 3월26일(화) 출석 그레츠키(권영철) 13-03-26 0 0 7634
62700 제5차 문학기행 사진들6(소쇄원) 그림자村 13-03-26 2 0 7557
62699 제5차 문학기행 사진들5(슬로우시티) 그림자村 13-03-26 0 0 7691
62698 제5차 문학기행 사진들4(미암 박물관) 그림자村 13-03-26 0 0 8062
62697 제5차 문학기행 사진들3(화순운주사) 그림자村 13-03-26 0 0 7670
살아왔던 일일랑 잊을 만하고 내일시 13-03-26 0 0 7436
62695 제5차 문학기행 사진들2   2 그림자村 13-03-25 1 0 7171
19119219319419519619719819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