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권력은 정말 이념보다 비정한가?
과거 프로이센의 찬란한 수도였으며
지금은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진 분단 독일의 상징
이념의 도시, 베를린.
한때 스파이의 도시로 불리웠고
대치하는 두 이념의 장벽이 굳건했으나
통일독일의 쇠망치는 그 분단의 벽을 허물었다.
그럼에도 이 세상 마지막 남은 문제적 분단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대한민국.
그 둘을 돕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미국의 CIA
이스라엘의 모사드
그들은 철학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권력과 무기거래, 검은 돈을 위해 싸우고 희생되고 소모된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
탄탄한 스토리텔링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있다.
데자뷰되는 영화 <쉬리>는
남북대결이라는 끝나지 못한 비극적 요소를
남한의 한석규와 북한의 김윤진의 멜로를 통해 구현했다.
그런 멜로의 차용은 이념의 대립이 의미하는 것을
쉽고 익숙한 화법으로 감성적으로 그려내었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영화 <베를린>은 상당히 마초적 영화이다.
서바이벌 게임의 대리만족처럼
다분히 배설적 코드로 정교한 액션의 합을 맞추고있다.
가족이나 멜로같은 감상을 이용해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는다
동물적 근성으로 뭉친 각 개인은 지지않고 죽지않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권력을 얻기위한 배신과 모함이 마치 남성적 전유물인 것처럼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전지현은 무기력하고 이념과 가장 거리가 멀다.
분명 시대는 변하고 있다.
이념의 장벽과 오랜 분단으로 인한
서로에 대한 공포와 몰이해는
그 사이 크게 변화해 갔다.
아직도 수많은 언론과 정치가
시시때때 필요에 따라 분단을 도구로 이용하고
때론 여전히 그 카드가 먹히기도 하지만
분명 이념은 더이상 시대적 키워드는 아니다.
영화도 말한다.
국정원 한석규가 욕처럼 뱉어대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더이상 과거의 그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총을 겨누게 하는것은 그들 개인의 이념이 아님을.
권력자의 아들이 권력을 대물림하고
실세장군의 아들이 돈이 되는 베를린을 뒤흔들어 권력을 탐한다.
모든 비극과 분쟁은
바로 권력의 욕망과 그를 이뤄줄 돈줄임을,
그래서 과거에 이미 용도폐기된
이념의 도시 베를린에서
그들은 피튀기며
달리고 겨누고 죽이고 죽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의 감시와 불신을 견디며
전지현은 아이를 꿈꾼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품은 그 배에 총을 맞고 죽는다.
희망은 죽고
비극은 끝나지 못하는 것이다.
배신자 류승범을 애써 단호히 죽여 없애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 명계남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굳건하다.
결국 남이건 북이건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이념의 탈을 쓴 권력이 그들을 죽인다.
권력자의 탐욕이 이념을 만들고
차이와 대립을 만든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이런 메시지는
볼거리와 배우들의 변화무쌍한 액션에 묻히기도 하고
작법이 어려운 영화라 소문이 나기도한다.
수많은 관객들은 네이버 평점과
영화사의 홍보비로 점심을 얻어먹은
문화부 기자들의 기사로
영화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CG와 오버액션.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의 춤사위와
수없이 맞아도 부러지거나 멍들지않고
총맞아 피튀겨도 죽지않는
액션영화의 과장쯤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 딴지는 오히려 유치하고 치졸한 관객이 된다.
그럼에도 영화 내내 가장 거북한 것은
그런 영화적 과장이아니었다.
정말 우리의 국정원이 저런 첩보력이나
굳건한 화력이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
선거조작용 댓글알바나 해대는 알려진 일상이
정말 국정원의 실체가 아닐까하는 물음들.
영화 <베를린>의 최정예 일당백 국정원이
정말 우리가 기대하고 꿈꾸는 영화같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물음들.
영화 내내 푸른 한숨이 나는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