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따뜻한 선생님 이수호 01] 노크하는 선생님과 코끼리 길들이기

태국에는 ‘파잔’이라 불리는 의식이 있다. 야생의 어린 코끼리를 잡아 인간을 위해 길들이는 의식이다. 원래 코끼리는 야생성이 강해 길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무리생활로 개체끼리의 의존성도 강하다. 이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인간이 선택한 방법은 극도의 폭력이다.
잡혀온 어린 코끼리를 꼼짝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가둔다. 그리고 고통을 각인하기 시작한다. 스물네 시간 잠재우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커창’(쇠꼬챙이)으로 찔러 대는 것이다. 잔혹한 각인은 짧으면 며칠에서 길면 한 달 이상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한 채 절반 이상의 새끼 코끼리가 정신착란을 겪거나 죽는다. 유사이래 가장 잔혹한 동물조련 파잔은 아이를 등에 태워 코끼리가 얌전하다면 비로소 끝나게 된다.
파잔을 거쳐 성장한 코끼리는 조련사의 커창이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진저리를 친다. 앉으라면 앉고 뛰라면 뛰고 태우라면 태운다. 심지어 자기를 고문했던 커창을 집어 주인에게 돌려주기까지 한다. 덩치 큰 고깃덩어리로 숨만 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 교육에도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머리를 박박 밀었던 때가 있었다. 조금만 떠들어도 끌려나가 두들겨 맞고, 가난으로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면 복도에서 벌서던 시대, 마치 파잔처럼 일상화한 폭력이 묵인된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이상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체벌하지 않겠다는 말로 조회를 시작했다. 심지어 수업 종이 울리면 노크를 하겠다는 말도 했다. 고개를 갸우뚱, 학생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말한 대로 했다. 수업종이 울리면 교실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왁자지껄 시끄럽던 교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의 노크소리가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나중에 누가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우리 아이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야 인격적으로 아이들을 키우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 선생님이 바로 이수호다.
이수호의 제자 중에는 판사도 있고, 사업가도 있고, 교수에 교사도 있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은 이수호 선생님을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노크하는 선생님’ , 낮은 자세로 자신들을 인격적으로 대했으며,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언제나 자신들을 편들어 주었던 선생님, 따뜻하고 배려하는 참 스승이 이수호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파잔으로 돌리느냐, 선생님들이 낮은 자세로 학생의 소리를 듣는 시대로 나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분명한 것은 유무형의 폭력이 일상화한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을 파잔을 거친 코끼리처럼 숨만 쉬는 존재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