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도 벌써 100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한 일도 많다. 약자와의 연대에 노력을 기울이며 기득권층의 박해를 받은 일도 많았다. 심지어 진리를 위하여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수 많은 신앙인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점차 우려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기득권층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한국교회가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사례를 살펴보자. 사학재단들의 비리가 심각하고 그것은 이미 제법 알려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개정이 마치 교회의 선교활동을 제한하려는 의도라도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태도를 보였다. 어린 학생이 요구하는 종교의 자유를 종교사학이 짖밟고 퇴학을 시킨 일도 있었다.
또 교회의 힘을 사용하여 언론사를 만들고 편향된 보도를 일삼기도 하였다. 비리혐의가 드러나서 형사처벌을 받고도 특별히 반성하는 보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인천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여신도와 간통하다가 들켰다. 그는 제법 큰 교단의 중요인물이었다. 사정이 급하자 창문을 통해 벽면에 있는 에어콘에 매달렸다 떨어져 사망했다. 기독교계에서 설립한 신문은 그가 과로로 순직하였다고 보도한다.
또 하나의 초대형 교회도 문제를 일으켰다. 담임목사가 여신도를 성추행하고, 교회재정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방송이 상세히 취재하고 보도를 하였다. 해당교회의 교인들이 방송사에 몰려가 항의를 하고 방송을 막으려 했다. 그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담임목사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설교들을 쏟아내고 있다. 툭하면 집권세력을 좌파발갱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오늘은 그가 특정 대선주자의 당선을 위해 목숨을 건 금식기도를 선포하였다고 한다. 친공, 친북, 반미 정권을 막아야 한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가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1992년 대선에서 한국의 교회들은 개신교의 장로인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물론 그들만의 지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회들이 노골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똘똘 뭉쳤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를 위해서 교회가 열심히 기도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집권말 나라를 외환위기에 빠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국민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일이 없다.
우리는 엄혹한 독재의 시대를 견뎌왔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독재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축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민주정부가 탄생하였을 때 지속적으로 집권자를 저주하던 모습도 보았다. 전쟁광 부시 미대통령에게 축도하고 우리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붓던 모습도 목도하였다.
또 하나의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정권에게 설교중 악의에 찬 비난을 퍼부었다. 기독교 방송에서 그 설교를 방송하며 편집했다고 항의를 한 사실도 알고있다. 교회가 특정정파의 편들기를 하고, 사실에 의거하지 않은 비난을 퍼붓는 모습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뜻과는 다른 것같다.
그리스도는 그시대의 지배자들에게 굴복한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약자들과의 연대를 게을리 한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이유없이 누구를 저주한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부자들을 편든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꾸짖고 내치셨다. 그리스도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누구를 강압하여 따르도록 하지 않았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강압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따랐을 뿐이다. 그리스도는 힘으로 집권할 수 있었으나 세상의 권세를 탐한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거짓으로 누구를 속인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세속적 권력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아부한 일이 없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인류를 위하여 희생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함부러 행동해선 안된다. 세속적 권력에 아부하고 이익을 취하면 안된다. 자신들의 편으로 하여금 권력을 취하도록 노력할 일도 아니다. 기득권층과 연대해선 안된다.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삶속에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의를 배우고, 약자와의 연대를 배우고, 사회가 부패하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 사회가 음습한 어둠에 묻히지 않도록 빛의 역할을 해야한다. 부정을 하건, 부패를 하건 우리편이라면 편들고 보는 일은 안된다. 교회가 장로의 집권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금식기도를 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참다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지금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참다운 가르침을 따르길 바란다. 세속적 욕심에 더 이상 물들지 말기를 바란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