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나라당의 당내경선만이 주목을 받고 있을 뿐 소위 말하는 반한나라당 진영의 움직임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 하고 있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주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도 제법 있는 것 같으나 그것만이 지금의 이상한 구도를 만든 원인은 아니다.
1. 전통적인 대결구도
대선의 대결구도에 작동되는 몇가지 틀이 있다. 영호남의 지역구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그리고 집권세력의 공과에 대한 평가 등이 가장 중요한 틀로 작동하곤 하였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작동되고 있고,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너무 단순하게 도식화하면 오히려 판세를 오인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첫째,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대결양상은 우리정치의 오랜 병폐이다.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지만 엄연히 현실에서 위력을 갖고 있는 요소여서 무시할 수 없다. 영남의 유권자수는 호남과 충청을 모두 합한 수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호남과 충청의 연합만으로 대선을 이길 가능성은 없다. 영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우리의 역사는 바로 거기에서 연원한다.
둘째,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은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묘한 균형추의 역활을 해 왔다. 주로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민주를 상징하고, 영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독재자들의 후예였지만, 지역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영남의 민주세력이 가세하고, 수도권이 민주세력의 손을 들어주면서 항상 민주 대 반민주간 대결은 균형을 이뤄왔다.
셋째, 집권세력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대선의 가장 중요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게 만든 요인이다. 집권세력의 공과를 평가하는 일은 늘 객관적이거나 옳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나 국민이 평가하는 정도에 따라서 정권의 재창출과 교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곤한다. 다른 요소들이 강하게 작동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대결구도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된다.
넷째, 위의 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구도를 형성하고 승패를 결정하기도 하며, 세력간의 연합에 의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때로는 미묘한 언론들의 역할이 대세를 바꿔놓는 경우도 있고,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아젠다가 결과를 좌우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지역대결, 민주화에 대한 생각,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에서 대결구도가 형성되곤 하였다.
2. 과거 대선에서 형성된 대결구도
1987년 직선제 개헌후 처음 실시된 선거에서는 4명의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영남후보 2명, 호남후보 1명, 충청후보 1명이 대결하였다. 이들은 다시 민주화 세력이 2명, 독재정권의 후예 2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당시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3명의 야당후보와 1명의 여당후보가 대결하였다.
대구경북을 주요 지지기반으로한 군사독재의 승계자가 결과적으로 승리하였다.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했던 김영삼이 2위, 호남표를 싹쓸이 한 김대중이 3위, 충청의 맹주였던 김종필이 3위였다. 민주화 세력의 분열이 낳은 패배였다.
1992년의 대선은 영호남의 대결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민주화 세력을 배신하고 군사정권과 야합한 여당후보와 여전히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던 야당후보의 대결이었다. 거기에 재벌의 총수가 돈으로 표를 사서 정권을 잡겠다는 듯 욕심을 부렸지만 크게 변수가 되지 못하였다. 결국 호남의 민주화 세력과 영남의 반민주세력의 대결에서 호남의 패배, 민주세력의 패배를 확인한 선거였다. 영남과 충청의 연합은 결과적으로 호남을 고립시켜서 승부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1997년의 선거는 자뭇 흥미롭다. 영남과 호남의 대결,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크게 판세를 좌우한 변수들이 있었다. 호남과 충청의 연합, 영남표의 분산, 집권세력의 엄청난 실정이 그것이다. DJP연합, 이인제의 PK표 분산, 거기에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파탄이 작용하여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다. 아무리 지역적 연합을 꽤하더라도 집권이 불가능한 호남의 대표주자가 다른 요소들이 복합작용을 하여 집권하게 된 것이다.
2002년의 선거는 집권세력의 여러가지 부정부패 의혹들이 난무한 가운데 치뤄졌다. 호남이 지지하는 민주화 세력, 영남이 지지하는 반민주 세력의 대결에 더하여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의 표를 가져왔으며, 영남표를 25%이상 빼앗아 옴으로써 또 다시 승리를 하게 된다.
정권에 대한 평가가 사상 최악이었지만 분명히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겠다며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도 대결구도의 형성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또 전국을 돌며 국민경선을 실시하여 국민의 높은 관심을 모았고, 사상 초유의 후보단일화도 강력한 승인중 하나이다.
결국 지역구도와 민주 대 반민주, 그리고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는 대선의 기본적 대결구도 형성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여전히 그러한 요소들이 복합하여 판세를 좌우할 수 밖에 없다.
3. 현재의 구도
지금은 대선이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여전히 대선의 촛점은 한나라당의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반한나라당 연합을 외치며 소통합, 대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모두가 그만그만한 낮은 지지율에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너무나 다른 일방적인 구도이다. 왜 대선국면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까?
집권세력의 평가치가 낮고 지지율이 낮아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인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정부 지지율은 지금의 참여정부보다 훨씬 낮았다. 대통령의 아들 세명이 모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구설수에 올랐고,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여당후보는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고도 유효한 대결구도를 이미 형성하고 있었다.
반한나라당 진영의 분열과 인물난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분열은 있었다. 민주당이 스스로 국민에게 의뢰하여 선출한 후보를 폐하고 외부에서 후보를 데려오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분란을 겪고 있었으며, 후보가 그리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도 아니었다. 아무리 분열이 되어도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구도를 형성한 적은 없었다.
진정한 원인은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지역대결의 구도가 과거에 비하여 희석된 점이 있으며, 이것은 한국의 정치발전에 부족하나마 유익한 발전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지금은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구도도 이미 많이 희석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이 가시면 독재세력의 후예들에 대한 반감도 줄어든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원망도 이제 10년이 지나 희석되고 많이 잊혀졌다.
물론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진 한나라당과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유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반한나라당을 외치며 통합을 추진하는 제 세력의 진정성을 국민이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상태에서는 결코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찰떡공조로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반한나라당만을 위해서 모이고 뭉치자고 주장하는 것은 뭔가 이치에 맞지가 않는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연합하여 부당하게 밀어부친 사람들이 표변하여 반한나라당을 외치면 국민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입법은 한나라당의 반대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권세력으로서의 대표성을 가졌던 사람들이 현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5년내내 해오던 참여정부 비판의 입장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결국 한나라당이 그다지 상대조차 해주지 않고 있어서 대립각의 형성은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몇일 전까지 한나라당의 핵심이었던 인사가 참여하는 반한나라당 연합이라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4. 대결구도를 복원하는 지름길
소통합이니 대통합이니 주장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상대방으로 인정받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재의 반한나라당 연합의 실체이다. 국민이 무엇으로 나누고 분류하여 지지의사를 나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반한나라당 연합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고 명확히 정체를 구분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이렇게 해서는 국민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뭔가 다른 곳에서 대결구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첫째, 탄핵에 있어서 한나라당과 공조한 것에 대하여 철저히 대국민 사과를 하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공조하여 그렇게 숫자로 밀어부친 부당한 행위를 여전히 옳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반한나라당인가? 설혹 반한나라당이라고 치더라도 언론들이 보도하는 범여권이라는 분류에는 어떻게 부합할 것인가? 잘못을 반성하는 데에서 일을 시작해야한다.
둘째, 자신들이 누릴 것을 모두 누리고 돌아서서 차별화를 시도한 데에서 돌이켜야한다. 한나라당이 10년내내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형성하였다면 그들과의 대립각은 바로 지난 10년 집권의 정당성과 역사적 필연성 그리고 적지않은 성과를 들고 나와서 대립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과 구별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이렇게 대결구도의 명확한 정리가 있은 후에야 비로서 대통합을 추진하건 각기 후보를 만들고 단일화를 추진하건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지역구도의 복원을 바라거나, 한물간 민주대 반민주의 대결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 실질적 효과도 없고, 패배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정체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정체가 모호한 사람들이 정체가 분명한 한나라당의 대척점에 서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난 10년 집권세력을 공격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분명한 정체성임을 잊어서는 도무지 대립 자체가 무의미하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한나라당과 반대의 포지션으로 만들고 나면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지금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20%내외에 불과하다는 점도 희망이다. 나머지 80%는 아직도 고정된 지지의사를 갖고 있지 않거나 판이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과 분명히 구분되는 정체성이다. 지역주의나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과거와 같이 강하지 못한 지금은 지난 10년의 집권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