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대한민국의 미래
유시민(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호주 시드니 교민 강연
2012. 4. 28(토)
1. 발전국가에서 복지국가로
대한민국은 광복과 함께 찾아온 민족분단을 계기로 탄생한 ‘안보국가’였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민국은 ‘안보국가’의 토대 위에서 ‘발전국가’로 진화했다. 그리고 1987년 6월민주항쟁을 계기로 ‘민주국가’의 길을 걸었으며, 이제 ‘복지국가’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서성이고 있다.
복지국가는 무엇인가? 흔히들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많은 재정을 쓰는 국가로 이해한다.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삶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복지국가는 “사회적 연대의 기능을 독점하는 국가”이다. 출산, 육아, 교육, 취업, 보건, 노후 등 시민들이 혼자 힘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갖가지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사회적 연대의 책임을,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그러나 사회적 연대의 기능을 독점하는 완전한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느 곳에서든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사회적 연대의 기능은 국가와 시민들이 함께 나누어 수행한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국가와 시민이 담당하는 몫이 다를 뿐이다. 복지정책이 높게 발달한 유럽 산업국가들도 점진적으로 국가의 몫을 늘임으로써 복지국가라는 이상에 접근해 왔다. 대한민국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복지국가의 주요기능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가의 규제를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시민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조세 징수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일이다. 셋째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와 공동장비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복지국가는 조직화된 권력으로 시장법칙을 세 방향에서 수정한다. 첫째 개인 또는 가족에게 노동의 시장가치나 재산 수준과 관계없이 최저소득을 보장하고, 둘째 질병과 노령, 실업 등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며, 셋째 계급적 귀속이나 사회적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서비스를 보장한다.
2. 진보, 보수, 복지국가
복지국가론은 진보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보수주의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국가의 목적을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것 하나로 규정한 보수주의 국가론의 창시자 토마스 홉스의 이론도 인민의 안전을 더 넓게 해석하면 복지국가론과 맞닿게 된다. 홉스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는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타인의 폭력이나 외부의 침략만이 아니다. 빈곤, 실업, 질병, 산업재해, 소득 없는 노령, 시장 거래를 통한 경제적 강자의 착취 등 예전에는 없었던 사회적 위험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모든 위협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국가의 목적으로 인정한다면, 보수 국가주의자조차도 복지국가론을 일정 부분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1880년대에 독일 복지정책의 토대를 만든 인물은 국가주의의 화신으로 알려진 독일 제2제국의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였다. 그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과 일요휴무, 아동노동 제한 등 노동시장 규제를 도입했으며 세계 최초로 산재보험과 노후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법을 제정했다. 한편으로는 ‘공공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사회민주주의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세칭 사회주의탄압법)을 만들어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적절한 사회복지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국민건강보험(1977년)과 산재보험(1964년)을 도입한 것이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했고 유신체제를 만들어 영구집권을 시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국민연금은 전두환 정권이 기획해 노태우 정부 때 처음 도입되었다. 고용보험을 대폭 확대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이런 토대가 이었기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을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하고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새로 도입할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복지국가론이 진보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가 진정으로 구원하려 했던 것은 시민이 아니라 국가였다. 급증하는 사회주의혁명의 위협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폭넓은 사회복지정책과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보호받은 것은 국가만이 아니었다. 동기가 어떠하든, 복지국가는 시민들을 사회적 위험에서 보호한다. 진보주의자만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국가론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 또는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우게 되면 오히려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호감과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소위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논쟁은 소모적인 ‘허위논쟁’이다. 복지정책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시민의 삶을 보호하려는 수단이다. 그 위험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가에 따라 정책수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회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서비스 둘 모두를 필요로 한다.
3. 선별복지와 보편복지
사회적 연대를 구현하는 복지정책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사회보험이다.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우리나라는 이 다섯 가지 사회보험을 통해 질병, 고령, 실업, 산업재해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한다. 국민연금은 장기 재정안정성에 문제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보장율이 너무 낮다. 고용보험도 비정규직과 소규모 사업장에 사각지대가 있다. 장기요양보험은 아직 규모가 너무 작아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크고 작은 보완이 필요하지만, 이 제도들은 수십 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사회보험은 국가가 관리하면서 일부 재정지원을 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시민들이 가입하여 소득에 비례하여 책정되는 보험료를 납부하고 필요한 혜택을 누린다는 면에서 시민들 사이의 수평적 연대를 실현하는 소중한 공동체이다.
두 번째는 공적 부조(公的 扶助)이다. 이것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한 헌법 제34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은 어느 국민이든 소득과 재산이 적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할 경우, 그 원인이나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고 공동체의 지원을 요청할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공적 부조제도가 김대중 대통령이 도입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다. 스스로 최저생계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제도의 혜택을 요구할 수 있다. 수혜자를 가리키는 법률 용어가 수급자(受給者)가 아니라 수급권자(受給權者)임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를 보장한다. 참여정부가 도입한 기초노령연금 역시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 이하인 65세 이상 노인 70%에게만 지급하는 공적 부조제도이다. 중증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급식비 지원제도, 소득 하위계층부터 시작해서 점차 중산층까지 확대해 온 영유아 보육비 지원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적 부조는 국가가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실시하는 정책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공적 부조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 복지정책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세 번째는 보편 서비스이다. 이것은 어떤 정책수요를 가진 국민 모두에게 국가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학생까지 부모의 재산과 소득을 따지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의무교육은 전형적인 보편 서비스이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나누는 견고한 울타리는 없다. 공적 부조 형태의 선별적 복지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면 보편적 서비스가 된다. 영유아 보육비를 중하위 소득계층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모든 가정에 제공하거나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면 선별적 복지정책이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지급하던 학교 급식비를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모든 가정으로 확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 복지국가와 진보자유주의
학교급식을 둘러싼 소위 ‘무상급식’과 ‘부자급식’ 논쟁은 학생들에게 점심밥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부유층 자녀라고 해서 따로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 이런 것이 보편 서비스이다. 학교급식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 국가가 모든 아이들의 급식비를 감당하면 공적 부조에서 보편 서비스로 넘어간다. ‘부자급식’이라는 반박은 적절하지 않다. 학교급식을 보편 서비스로 제공할 때, 그 비용은 국가재정에서 나온다. 국가재정의 원천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소득과 재산이 많은 부유층은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직접세를 많이 낸다. 소득이 적은 국민들은 부가가치세와 유류세 등 소득이 적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간접세를 납부한다. 국세 수입 중에서 직접세와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비슷하다. 국민들은 자녀의 학교급식비를 이미 납부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보편적 학교급식 서비스를 ‘부자급식’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세금을 많이 낸 것을 공동체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 사회적 징벌의 대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더 높게 발전한 복지국가일수록 더 많은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한다.
복지국가는 사회보험, 공적 부조, 보편 서비스를 통해 시민의 삶을 사회적 위험에서 보호하고 평등한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한다. 사회보험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키자는 데는 특별한 이견이 없다. 논쟁의 초점은 국가가 얼마나 다양한 서비스를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제공하느냐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가능한 한 많은 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기를,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시민들의 훌륭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국가주의자와 보수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작은 정부를 선호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책임을 중시한다. 그 사이에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는 진보 자유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그 자신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중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공동선, 기회균등,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노력과 민주적 개입을 요구한다.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며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 그 대신 국가는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하라.”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