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서 일어나는 '중도론'은 선거패배 원인의 본질을 흐리는 것과 더불어 진보를 부정하는 것으로 들리어 불편하다. 언제부터 민주당이 진보였다고 이제 막 시작한 진보와의 연대에 자성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모습은 또한 진보적 의제를 죽이려는 보수언론의 꼼수에 현혹되는 것이라 한심스럽기도 하다.
진보 안하는 중도는 보수이지 중도가 아니다. 중도라는 개념은 사안의 필요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교차하는 균형이지 진보 안하는 것이 아니다.질주하는 시장자유경제 체제의 문제점이 진보적 정책으로 제어되지 않는다면 부도덕한 탐욕과 양극화의 부작용만 야기할 뿐이다. 북부유럽 복지국가들의 중도론도 진보를 부정하는 뜻이 아니었다.
비록 중도주의 정당 민주당일지라도 해군기지와 한진중공업, 한미FTA 문제에 외면하지 않고 전착하는 것은 공당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 결과 잣대 하나로 이러한 노력들을 부정하는 뜻의 중도론을 선보여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 했다.
스스로가 고정불변의 가치인양 규정해놓고 "나는 중도요"라고 자랑하는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중도란 것은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 요소이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보수와 진보의 균형으로 이루지는 자연적 모습이지 진보를 부정하는 뜻이 아니다.
실상 우리 사회의 '중도론'은 진보를 부정하기 위한 말장난으로 쓰여진 것이 다반사였다. 독재 권력의 잘못을 질타하지 못하는 보수적 지식인들의 도피처였고, 그렇게 말하는 부류들 치고 진보에 관용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MB가 그랬고 노무현 흔들었던 구민주계들이 그랬고 진보정당 의제들을 무시했던 열린우리당이 그랬다.
해군기지에 관한 의견 중에 중도적 입장은 해군기지 자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경찰의 강경진압은 잘못되었고 재검토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주당도 이런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해군기지 의제에 뛰어든 것이 실수라며 진보를 부정하는 논리로 귀결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이런 경우인가 보다. 선거에 앞서서는 좌클릭을 약속하다가 선거 지나니 철회한다는 민주당 본색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 박근혜의 보수적 프레임에 빠져드는 못난 정당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민주당은 또한 선거과정 공천잡음의 자성과 독일식 비례대표 등의 선거제도 개혁 및 정책선거 위한 비젼을 보여주지 못한 반성이 우선인데도, 엉뚱하게도 안철수 영입을 의식한 선거공학적 '진보철회'와 '친노 - 비노' 프레임으로 몰고가는 당권싸움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이는 안철수 현상에서 나타난 국민의 열망과도 배치된다. 안철수 현상의 중요한 핵심은 밥그릇 싸움으로 얼룩진 기존정당들의 구태에 대한 반감이었지 불필요한 '노선 타령'이나 당권을 위한 계파 싸움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안철수 교수도 기존 정당의 문제를 꿰뚫어 보는 본질적 시각과 거리가 멀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표현이라면 모를까, 난데없이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오해를 낳게 했다.
선거초반 안철수의 '인재근 - 송호창'에 대한 지지표현이 인권문제에 접근하고 촛불시위를 대변하는 것이어서 매우 긍정적이었다. 정당을 보지 말고 인물을 봐라는 발언도 그런 연장선에서 보았다. 그러다가 새누리당 - 민주당의 기존정당 구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를 운운했다.
이러한 발언은 우리 사회의 특수성에서 볼때 진보를 부정하는 것이 1차 목적이 된 수구보수세력들에게 절대 손해볼 것이 없는 이용거리다. 안철수 주장을 이용해 야권연대의 진보적 의제들을 무력화하는 어중이 떠중이 지식인들의 인용 수단으로 이용되어 지고 있다. 혹여 이것이 민주당을 진보로 보고 말하는 실수적 발언이라면 당장이라도 재고되어야 한다.
문재인 이사장도 이 같은 중도론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였지만 그 동안의 진보적 의제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 이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민주통합당의 노선 타령과 맞물려 있는 시점이라 매우 부적절하다. 안철수 대망론 흐름을 의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보수와 진보의 균형으로 얼마든지 중도로 인식될 수 있는데도 불필요하게 민주당의 노선타령에 불을 지피우는 것은 가벼운 처사이다. 문 이사장의 의견이 그 동안의 야권연대 의제에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원론적인 지지 확장론으로 볼 수 있겠지만 혹여 그 동안의 의제들을 부정해 말하는 중도론이라면 현실적인 전략적 선택으로 문재인에게 가는 마음을 접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가는 문재인이라면 통합진보당 후보의 독자적 대선 출마로 갈 수 밖에 없다. 야권연대라는 것은 진보 저변화를 위한 첫 걸음을 위한 것이지 단순히 선거에 이기기 위한 연대만이 아니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있음에도 그것이 진보를 부정하는 중도론을 위해 이를 외면한다면 공당으로서의 책임 방기에 해당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본격적인 진보였다고 벌써부터 그 첫걸음부터 민주당은 부정하는 것인가
추신수 선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데에는 이념이란게 없었다. 단지 사람이 좋아서 지지했을 뿐이다. 보수도 싫고 진보도 싫다는 중도적 감정은 이념이 아니라 그 세력들의 사람들이 싫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보편적 규범으로 용인될 수 있는 노무현과 안철수 임에도 흔들어대는 보수와 진보세력의 경직됨을 보며 싫어하는 감정들이 중도이지 결코 이념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탈북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중국에 분노하면서도 미군 장갑차에 쓰러져간 효순 미선 양의 죽음에 분개하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이 있음에도 진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중도론을 말하는 이가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 감성마저 부정하는 것이 된다.
물론 예를 들어 반미주의자라는 것에 얽매어 서구적 팝송을 억지로 듣지 않는 진보주의자가 있다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노래에 정치 철학적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융통성 없기 짝이 없는 일이다. 사회 진보적 운동의 U2라는 그룹도 있는데도 말이다. 안철수와 노무현 마저 대화 상대의 상생으로 보지 않는 진보와 보수들도 융통성 없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교수가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표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보수정치에 비해 홀대 받아왔던 진보정치에 접근하는 것이 안철수에겐 우선이었다. 그리고나서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것을 해도 늦지는 않았다.
이럴때 통합진보당도 마음을 열고 안철수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 없다. 물론 안철수 교수는 대기업에 비판적이면서도 대기업 규제에는 부정적이라 진보당과의 시각 차이가 있다. 그는 대기업 - 중소기업 상생공존을 위해 대기업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안철수와 함께 하면서 논쟁할 수 있고 좁힐 수 있다.
그러나 우선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들을 보면 매우 걱정케 한다. 민주당과 달라야 하는 것이 바로 밥그릇 정치의 탈피인데 어찌된 것인지 민주노동당 출신들에게 이 같은 의혹들이 계속 불거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당권 갈등으로 볼려는 시도도 있지만 의혹이 있으면 철저규명해 바로 잡아야 하고, 선거 논리에 매몰되어 문제가 된 통합진보당 최근 흐름을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 정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안철수 현상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요즈음 안철수 측에서도 안철수 교수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요소들도 있다. 야권연대 통한 민주통합당의 좌클릭에 적대적으로 표현하는 안철수 지지자의 댓글을 보면 이명박 - 박근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안철수 지지자들이 이명박- 박근혜의 지지자들의 답답함과 다른 면이 있다면 아직 안철수에 대한 기대는 있다. 안철수 교수가 긍정적이고 감동적인 진보적 접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안철수를 따라 옮길 수는 지지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지자들이 단순히 기존 구도와 이념에 고정적이지 않음을 안철수 교수는 알아야 할 것이며 진보를 갈망하는 국민들을 믿어야한다. 겉으로는 진보적 갈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한 편에서는 진보를 갈망하는 마음들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