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게임의 법칙 상편에서 언급하였거니와 중요한 것은 칼자루를 쥐어야 함에 있다. 이곳 하편에서는 이 칼자루의 행방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아울러 부디 바라건데는 스나이퍼의 글 [謹弔 민주주의] 나를 고발하라! 와 같이 선관위가 나를 고발하기 바란다.
80년 중반에 그 뜨겁던 거리에서 돌 하나 던지지 못하고 오직, 십대 가장으로 생계의 굴레에서 못 벗어났던 지난날을 오늘까지 열등하였기에 이 기회를 통해 이를 해소하길 진.정. 희망한다. 당시 학생나이라는 이유로 경찰서를 끌려 다니며 닭차에서 보았던 젊은 그들의 헌신적인 싸움에 뜨거움을 느꼈음에도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찰서를 나오며 안도했던 자신은, 너무도 수치스러웠던 거다. 이것이 나의 대의이고, 소망인 것이다.
보수라는 이.미.지.의 이해, 보수를 교두보로 활용하라.
[어느 누가 보수는 개혁이 없다고 하는가? 아~ 딴나라당 ㅡ.ㅡ]
경험이라는 바보들의 교과서…
경험의 오류는 이렇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괌에 세번 갈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피천득의 ‘인연’처럼 두번의 좋은 기억이 있다가 세번째 아쉬움으로 남는 경험이었는데…
세번째 갔을 때는 괌에 크나큰 동상까지 쓰러뜨릴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 원주민들이 미국 본토로부터의 보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바람이 괌 전체를 뚫고 지나가 모기조차 남지 않은 파라다이스로 보았건만 그 곳도 뜨거운 태양의 양지만큼 그늘이 있는 그저 인간이 사는 곳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의 아내는 피천득의 인연에 세번째 만남이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란 로 갈음되는 것에 적잖이 불만스러워 한다. 세번째 만남의 ‘시들어가는 백합’의 비유 때문인데…
피천득의 아사코에 대한 인식이 다분히 여성성에만 국한 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 피천득은 ‘인연’이라는 제목을 ‘인연의 인상’으로 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보수, 그 현주소
네이버 백과사전중에서, 보수주의.
[K.만하임도 심리적 보수주의를 '전통주의'라 하였으며, 사상적인 것을 '보수주의'라 불렀다. 실제로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보수적 행동을 취한다거나,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개인의 심리적 태도는 반드시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민주주의에 성공한 어느 나라가 [보수=수구]로 성립되는가 말이다.
일본 따위의 민주주의를 복제하고 있는 전체주의를 예로 든다면, 가라 고향 앞으로. 그 따위 식견으로는 민주주의의 ‘ㅁ’도 모르는 이가 아니겠는가? After All Tomorrow Is Anther Day 에서도 말한 바 있거니와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에!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보수의 가치에 여론의 충돌을 일으키고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 반.드.시.
눈을 들어 세상을 보매 진정한 보수 중에 과연 어떠한 보수가 긍정적 국가 이미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 흙탕물로 끌고 들어가는가 말이다.
과연 인물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가?
우리의 승부처는 인물에 있다.
우리에게 인물은 그야말로 ‘인물의 자질’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여론의 쏠림은 인물의 자질을 보지 않고 있다. 자질 보다는 ‘인물의 인상’을 보고 있단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지금의 여론 순위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윗글에서 거론컨대 나는 보수성향을 가지고 있다. 지금 커밍아웃 하는 거다.
진보를 통한 변화만이 나에게 이 사회에서 기회를 제공받게 될 것이지 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지지하는 것에는 개인의 성향을 중시하는 보수가 집단을 중시하는 진보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쪽 주자들이 민노당과 같은 진보를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그를 자를 것이다. 우리의 진보는 선진복지로 귀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빵 조각을 주워먹지 말라는 말인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진화되는 것이고, 인간의 욕구는 결코 퇴보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현상유지만 된다고 해도 지금 타고 다니는 차보다는 더 낳은 차를 선택할 것이니, 제발 내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란 말이다.
서두에도 말했거니와 나 같은 사람 열등감에 몰아 넣고 어쩌자는 것인가 말이다.
이는 DJ가 언급했던 다음 대선에 갖춰야 할 후보의 자질중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석을 토대로 스스로 진화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인물론은 살아있다.
우리가 가치를 공유할 신뢰 있는 인물이 아니면 우리도 지지 할 수 없다.
때문에 인물은 여전히 중요하다. 피상적인 인물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 인물의 가치는 인물 스스로 경선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하거니와 여기에는 어떠한 사전 점수도 없다. 적어도 우리의 후보진영에는 내신성적이 떨어지는 이가 없으므로…
왜 대학이 내신성적 비율을 낮추는지 이것으로 엉뚱하게도 짐작해본다.
아…성적 나쁜 1, 2위여… 그대들도 어찌 아니 서글플 것인가?
공부면 공부, 민주화면 민주화, 사회봉사면 봉사, 어느 것으로 우리의 신뢰를 얻을 건가?
하물며 이들이 비전을 제시하는데 사기라고 믿지 않는 다면 그것이 이상할 지경이 아니던가!!!
우리가 갖은 최대의 자산인 인물…충분히 있다, 이 말이다.
이것이 이번 대선이전과 지금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선 때마다 인물이라곤 한 두명 보기도 힘들었다. 단언컨대 지금은 아니다.
게임에 임하는데 있어서 선수는 자신 있는 강점으로 승부해야 함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틀려버린 대통합, 미련을 버려라!
높은 수준의 사기꾼은 단순히 현란한 거짓말로 남을 설득 하지 않는다. 사기대상이 기회를 상실할 것이라는 암시를 던져서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여기에 역이면 백약이 무효다. 사기를 치자는 것이 아니다.
명분을 잃을 기회를 주지 시키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합이던 소통합이던 잊어라. 우리가 강자라는 기억을 상기해라.
여기에서 우리는 단지 열린우리당 만으로 ‘우리’가 될 수 없다. 온전히 참여정부를 계승함을 천명하고 이 토대 위에 비전을 이루어 갈 누구든 우리에게 ‘우리’인 것이다.
죽도록 ‘을’로 살아온 우리는 ‘갑’에게 물건을 공급해도, 공급 받아도 언제나 ‘을’이다.
이 죽일 놈의 ‘을’주의가 우리를 열등감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을’로 계약하는 따위의 허접한 전략일랑 떨쳐버려라. 미.련.없.이.
대통합이 틀렸다면, 소통합도 없다, 소통합은 그들만의 리그인 거이다.
앞 글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노대통령은 한때 현재 한나라당의 1위+2위 후보의 지지율에 육박할 만한 여론을 모아왔다.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여론은 어떠했던가? 결국 단일화에 성공한 극적 결과를 무시하고 선거의 시점이 언제였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지정되어 있는 만큼 여론을 그리로 가져가는 수 밖에…
바로 이것이 이번 대선을 맞이하는 맞.는.방.법.인 것이다. 통합하되 시기를 맞춰라 이거다.
이 시기가 소통합에서 대통합으로 연결되는 시점과 맞아 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대의의 진열을 갖춘 각개약진이 중요하다.
현재의 열린우리당은 대통합과 거리를 둬야 한다. 각을 세우고 그들과 대치해야 한다.
‘을’이 되어 치욕스러운 계약을 체결하면 대의도 잃고 명분도 잃는다.
나는 과거 탄핵의 후폭풍 속에서 열린우리당이 30~40%의 의석수를 갖게 되기 희망했다.
이른바 매기 이론에 입각해서 여소야대가 되어야 치열하게 살아남으리라 생각해서였다.
과반의석 점유가 현실로 나타나서 나는 절망했다. 이것은 곳 분당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성근이 잡탕이라고 하며 분당을 예견한 것과는 좀 다른 의미였지만…
의원석을 주운 이들이 때가 되면 다시 그.걸. 주우러 나갈 것이 분명하지 않겠나 싶었다.
이것이 바로 예측 가능한 세상의 이치이기에 또다시 어설픈 통합을 운운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현아빠 내 말 듣고 있것지?)
반한나라 당의 전선을 유지하여 비노는 비노대로 반 한나라는 반 한나라 대로 판을 벌여서 각자 여론을 벌어라. 그리고 친노의 진영은 스스로 약진하여 반 한나라의 전선 싸움에서 홀로서기 하여 최대의 여론을 벌면 된다.
지금 그대 통합을 논하는가? 오픈프라이머리? 허울만 좋다.
나경원 대변인이 찌질 거리지 않더라도 이제는 비현실적인 오픈프라이머리다.
이것을 하려는 돈은 어디서 날것이며, 과연 할 만한 곳이나 변변히 있는가?
통합민주당은 경상도 어디에 가서 누구를 데리고 이것을 할 것인가?
더구나 중도통합신당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제는 열린우리당 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의 대통합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오픈프라이머리는 물 건너 간 이야기다.
더구나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슨 민주주의의 대단한 수단도 아니다,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