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新加波클럽
1993년 봄부터 3개월동안 싱가폴에서 땡땡이 치면서 분단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 본 적이 있다. 부산보다 조금 큰 사회주의국가 싱가폴은 베를린장벽
붕괴후 마지막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그만 도시국가에 경찰이
1십만이고 군인은 주로 인도용병이지만 같은 1십만을 숨겨두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근 1백만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지만
아시아의 소국들도 분단국이 아닐뿐 만만찮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국경도 분단선인 것이다.
2. 싱가폴에서 만난 故장준하의 장남
귀국한뒤에 알았지만 싱가폴에서 만났던 사업가중에 한사람이 튀뷔에
비친뒤에야 그가 故장준하선생의 장남인 것을 알았다. 97년선거에서
승리한 디줴이는 베를린루트를 개척해 노벨평화상을 손에 쥐었다.
베를린장벽 붕괴후 궁지에 몰린 러시아는 유태계 자국출신 소로스를
부추겨 동아시아에 IMF광풍을 몰아치게 했다. 김우중은 동구권을
손에 넣었다 되려 그룹과 함께 사업적 종언을 고했다.
- 동아시아자본주의를 희생시켜 살아난 러시아국가주의
러시아는 아시아의 활력을 희생시켜 동구권을 맥여살린 것이다.이후
중화의 쇼윈도 싱가폴은 그 광채를 잃을뻔 했다. 뒤제이의 베를린행은
이러한 세계정세를 파악한 뒤에 선택한 가일수였을까?
동구라파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동아시아 자본주의를 거덜나게한 통일독일
에게 자신의 北行에 대한 보증을 서게 한 것이다.
중국은 관문 싱가폴을 지키기위해 홍콩반환후 1국 양제를 선택,아시아의
자본주의국가들과 인민사회주의국가 모두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의 자본주의를 통째로 구워먹고 다시 세계사에 재등장한 북극곰은 소치를
앞세워 똥개올림픽마저 가로챘다.
- 결국 국가시스템의 강화로 귀결된 베를린장벽의 붕괴
독일통일의 문제점은 여러가지 면에서 앞으로 밝혀지겠지만 결국 강대국의
국가시스템을 강화시키고 신흥아시아의 활력을 뭉게 버렸다. 화가난 미국은
이라크를 달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장준하라면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