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듣고 그 노랠 만든 이름 모를(?) ‘무당’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했드랬다. 부시를 골로 가게 할 뻔했던 ‘기특한 과자’를 찬양(?)한 노랜 또 얼마나 한 많은 우리들을 위로해줬던가? 부시를 쓰러뜨린 기특한 과자라고 치켜세워주며 한을 위로해줘서 고맙긴 한데 ‘배후’가 어디냐면서 이제 그 과자 만든 나라는 부시한테 끝장났다고 걱정해주는 대목에선 다들 뒤로 넘어갔드랬다.
2004년.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면서 이뤄내려는 참 민주주의가 이제 막 눈앞에 보이는데 어처구니없이 ‘빽도’를 해버리려고 하는 탄핵 정국을 맞아 우린 모두 길거리로 뛰쳐나갔고 그 자리를 더욱더 가열차게 결집시키는 노래 하나에 사람들은 심하게 다쳐서 나온 가슴을 응급처치 받을 수 있었다. ‘“…개 같은 세상, 거꾸로 된 이 나라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너흰 아니야 제발 나라 걱정 좀 하지 마. 너흰 그럴 자격 없어. 너희만 삥 안 뜯어도 우리 경제는 살아날 거야. 제발 나가 있어….” 그래도 너흰 아니야…. 정말 명가사였다. 너무 신나고 너무 좋아서 당장 내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아무리 본인이 맘껏 퍼가라고 허락한 것이지만 이렇게 애써서 만든 다른 딴따라의 ‘작품’을 몰래 훔쳐온 거 같아 맘이 불편했다. 사용료를 빙자한 후원금을 내려고 사이트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위에 말한 ‘시대의 명곡’들이 모두 한 사람, 윤민석이라는 사람이 만든 노래였던 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노래들 이외에 여기저기서 귀동냥하며 들어온 수많은 민중가요들 중 태반이 그의 손에 의해 나온 것들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의 ‘가슴’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야 할 것이다. 진작에 몰라본 내 무지함이 부끄럽고 왠지 미안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상업음악으로 맞선다 해도 게임이 안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열심히 만든 노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노래들을 무조건 공짜로 막 퍼가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유월항쟁 세대들이 정치판으로 나가고 그때의 동료 딴따라들이 상업음악으로 랜딩했던 선례들이 너무 많아서 조심스러웠단다. ‘달라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노선’을 바꿨다. 처음으로 유료 CD를 제작했고 많이 팔리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나 그것조차도 마누라한테 갖다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게 진행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순수한 차원이었다. 그의 역사의식과 곡 만드는 수준은 끝없이 변화하며 발전했겠지만 내 보기에 그의 순수함은 80년 중반에서 응고돼버린 영혼 그대로인 거 같았다. 최소한 십년은 어려 보이는 그의 외모도 그걸 말해준다. 자고로 철이 안 들면 사람은 안 늙게 돼 있기 때문이다.

△ 그는 요즘 행복하다. 돈은 여전히 없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래를 하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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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족이 고생을 하건 말건 그가 영원히, 아니 이런 노래들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세상이 올 때까지 그가 철이 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있던 동지들마저 하나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민중가요라는 판을 떠나고 있는 판에 그마저 돌아서버리면 만약에 저들이 또다시 미친 짓을 할 땐, 그땐 광장에 모인 우리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며 힘을 얻겠는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는 주면서 대가는 바라지 않는 그를 바보라고 책망하는 사람에게 그는 그래도 목숨을 내어준 친구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대답할 것 같았다.
경북 영주.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픈 동네가 그의 고향이다. 게다가 동네 유지의 아들이었으니 부모님의 실망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항상 1, 2등을 다투던 고향친구 하나는 지금 검사가 되어 있는데, 지금도 고향에선 그 친구는 자식농사성공 케이스이고 자신은 실패 케이스의 샘플로 거론된다고 한다. 부잣집 공부 잘하는 도련님이었던 그는 당연스레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되고 ‘우연히’ 광주 사진을 보게 되고 ‘하필이면’ 음악하는 재주를 갖고 태어나 오늘날에 이른다.
'부자아빠' 카피가 섬뜩했지만…
함께 노래운동 하다 만난 아내는 지금은 늦게 가진 아이를 돌보면서 영어과외로 모자란 생활비를 보충하고 있지만 조만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작곡자로서 그녀의 노래실력을 썩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집스레 이 판을 떠나지 못한 죄로 아내에게 늘 미안했지만 요즘 갑자기 ‘뜨’는 덕택에 유료회원이 늘어서 그나마 체면이 좀 선다. 그에게 <너흰 아니야>가 효자둥이인 셈이다. 회원의 연령층이 초등학생에서부터 70 노인까지라는 게 의외다. 한 초등학생은 여자친구가 자기 맘을 몰라준다면서 그 친구를 욕하는 노랠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하기도 한단다. 더 이상의 무당이 어디 있으랴.
그는 요즘 행복하다. 돈은 여전히 없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래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과정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노출된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이젠 만방에 알린 상태니 빼도 박도 못하게 됐죠. 근데 오히려 딴 짓을 못하게 된 ‘장치’가 스스로에게 생긴 거 같아 다행이고 속 편해요”라면서 속없이 씩 웃는다. ‘부자아빠’라는 잔인한 광고카피가 이 땅의 많은 가난한 아빠들의 기를 죽였던 적이 있다. 그도 그 중 하나였다고 홈페이지에 고백했다. 섬뜩하더란다. 나중에 딸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할까봐 두렵지만 좋은 일 하느라 그랬다고 설명해줄 것이고 그런 부모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국하는 일과 좋은 부모 됨이 상충되지 않고 애국하는 일과 효도하는 일이 상충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한다.
살면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옷깃만 여미고 말 일이 아니다. 위로받았다면 충분히 ‘즐감’했다면 양심껏 ‘지불’을 해야 하겠다. 무당도 밥은 먹어야 할 게 아닌가.
[펌] nasanha.egloos.com
촛불시위 구경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만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종로통 청계천변, 그리고 광화문 앞에서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거기서 만난 동아리 학번이 81부터 06까지였으니 스물 몇 해의 세월을 사이에 둔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있었던 셈이죠. 문자도 연신 날아들었습니다. “너 여기 와 있지? 어딨냐? 조심해라” 는 고마운 친구의 문자부터 “야 어딨냐. 대충 하고 술 먹자.”는 예나 지금이나 일생에 도움 안되는 녀석의 유혹까지.
하나 불만인 게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쩌면 그렇게 구닥다리들 밖에 없습니까 그래. 그나마 광우병 시위를 처음 시작했던 중딩 고딩들은 발랄하고 명랑하고 댄스곡도 서슴지 않아 좋았건만 마흔 넘은 사람들이 자기들 젊을 때 부르던 노래를 각잡고 부르는데 그거 참 열적습디다. 아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부르는 건 좋은데 안녕 안녕 군부독재여 안녕을 왜 부르냐고. 군부독재 사라진 게 언젠데 말이야;. 왕년의 운동권 노래들이 난무하니까 신들이 나서는 오만가지 감정 잡아 부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분위기는 영 뒤섞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쿵쾅거리는 앰프 소리와 함께 한 노래가 들려 왔습니다. 아주 경쾌하지만 너무나 쉬운 멜로디, 그리고 그 가사는 굳이 외울 필요가 없었던 한 노래였지요. ‘대한민국 헌법 1조’였습니다. 도무지 노래 가사로 승화될 것 같지는 않은 딱딱하고 엄숙한 법 조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노래를 듣고 바로 따라 부르면서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야 바로 이거다. 함께 길 가면서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는 노래도 좋고 자유여 민주여 내 생명이여도 감동이지만, 그 순간 이 노래만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심경과 각오를 대변해 주며, 또한 별다른 정서적 준비 없이도 발을 구르며 1분 내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어디 있었겠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한 음 올려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그리고는 마치 1919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 발표하는 자세로 터뜨리는 거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 력! 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똘복이가 반나절만에 한글을 깨치듯,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단 5분만에 노래를 마스터하고 돌림노래까지 부를 수 있게 만든 건 누구였을까. ”이거 누가 만든 거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에 저는 불경한 감탄사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윤민석이야 윤민석.“ ”아 젠장.“
왜 그런 감탄사가 나왔느냐. 음 그건 신에게 보내는 항의였습니다. 같이 눈 코 입 박아 놓고 기타칠 손가락과 소리 들을 귀까지 심어 놨으면 좀 재주도 평등하게 주실 것이지, 어떻게 윤민석 같은 사람에게만 축복을 샤워기로 뿌려 주실 수 있냐 하는 불만이었지요. 윤민석의 이름을 모르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80년대 말 이후 대학 생활을 한 사람 치고 그가 지은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전대협 진군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애국의 길> <서울에서 평양까지> <하늘>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제 친구는 그의 노래 중에 <사랑하는 동지에게>를 좋아했었습니다. 형편 어려운 법대 장학생이었던 녀석은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장학금을 놓쳤고 아버님이 직접 입영원을 내 버려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지방 집에 갔다가 서울에 올라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녀석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었지요.
그리고 며칠 후 5공비리 규탄 국민 대회가 열렸고 거리에선 입학 후 가장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대학로에서 종로까지 행진하고 롯데 앞에서 대가리 터지게 싸우고 하여간 구속 전두환 퇴진 노태우 소리에 목이 쉬어버린 다음에야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단골 술집으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동아리방, 뜻밖에 문이 삐죽이 열려 있고 불빛이 새어나왔습니다. 어? 누굴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안에서 노래 가락이 점점 크게 들려 오더군요. 훌륭한 기타에 비음 섞인 노랫 소리 바로 윤민석의 초기작 “사랑하는 동지에게”였습니다.
동지여 슬퍼마소서 우리는 승리하리니 지금 비록 힘들고 외로울지나
동지여 슬퍼마소서 그길에 하나되리니 눈을 들어 그날을 바라보소서
우리의 가는길에 새벽이 살아 숨쉬고 우리의 가슴엔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
가자 동지여 투쟁의 화살되어 해방 그 함성으로 되돌아오자
동기 녀석은 여러 사정상 시위 같은 것에 참여한 적이 드물었습니다. 난 투쟁 같은 거 안혀~~~라고 능글능글거리면서도 그는 이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라는 부분을 부를 때는 ‘비암이 가슴속에 기어가는 것 같다’고도 했지요. 사람이 등 뒤에 서서 발바닥 까닥거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그는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직한 등을 들먹거리면서 그가 ‘반도의 청맥이 꿈틀거리오’라고 외칠 때 제 마음 속에서도 뱀 몇 마리가 기어가며 제 콧날과 눈두덩을 물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그의 노래일 수도 있겠구나....... 투쟁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해방이 뭔지도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 노래를 친구 녀석과 함께 부르며 목이 메었던 기억을 함부로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검색조차 안되는 노래이지만 그 노래를 불러 준 윤민석씨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친구와의 추억 한 조각을 맘 깊숙이 꽂아 주었으니까요. 더구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고 술자리에서 건배 정도는 두어 번 나눠 본 것 같지만, 지금은 얼굴 윤곽도 기억나지 않는 그에게 저는 그렇게 약간의 빚을 졌습니다. 그것은 저 뿐이 아닐 겁니다. <전대협 진군가>를 부르면서 길바닥에 누웠던 이들에게는 그 짧고 아팠던 청춘의 기억일 것이고,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를 부르면서 지금은 서로에게 고통 뿐일지라도 그것이 이 어둠 건너 우리를 부활케 하리라를 부르며 펑펑 눈물 흘리던 전교조 선생님들에게는 다시 없는 위안이었을 것이며, 어느 택시 기사의 넋두리를 그대로 가사로 하여 만든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분단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가장 신명나게, 하지만 가장 서글프게 묘사한 노래로 남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존재하는 한, 공화국의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노래이자 무기이자 함성으로 남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의 노래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 그 약간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 선배가 올린 글을 가져와 봅니다.
“민석이형 아내의 병세가..(아내와 가족을 걱정하여 자세한 말은 함구하라 부탁하셔서)
... 젊은 날부터 시작된 암투병인지라 변변한 보험도 없고 오랜 투병으로 별다른 여유도 없습니다. 게다가 병실이 없어 3일간 응급실 앞 야전침대에서 치료를 받다 겨우 나온 병실이 특실 뿐이라... 급한대로 입원을 했고 일반병실이 비는대로 옮길 계획이지만 그 또한 기약없는 일입니다.
젊은 시절 반복된 투옥으로 몸도 맘도 많이 상했고, 작곡가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저작권료 한번 변변히 챙기지도 못하고 자신의 음악을 역사에 내어준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에 눈물 흘리고, 그의 음악에 가슴 뛰던 청춘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관심과 도움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큰 액수이면 좋겠지만 1,2만원이라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병을 어찌해줄 수는 없지만, 그의 노래가 많은 이들 가슴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음을, 믿음을, 희망을 전해주세요.”
국민은행 043-01-0692-706 윤정환
(윤민석 본명입니다. 계좌번호를 물을 수가 없어서 형이 운영하시는 송앤라이프 계좌를 올립니다. )
힘을 합쳐야 할 곳도 많고, 이리저리 도와 주어야 할 곳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주 약간만, 제가 졌던 빚을 갚고자 합니다. 윤민석을 아는 분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를 노래로 부르며 신나 했던 분들의 성원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