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는 공물(共物)인데, 어찌 정해진 주인이 있겠는가? 누구든 능력있는 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정여립-
"물이 있어야 배가 떠다닐 수 있듯이, 권력은 왕이 아닌 백성들에게서 나오는것이다." -조식-
400여년전, 왕조의 세습을 부정하는 학자가 있었다.
바로 정여립이다.
국사시간에 배웠던 정여립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조직을 만들어 반란을 도모했다는 죄로 죽어갔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선조라는 임금은 자기 자신의 집권이 대내외적으로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있었고, 당시 동인세력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는상황이었다.
서인세력은 어떻게든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그 대표주자가 정철이다.
율곡도 서인이었기는 하나, 정치욕망은 정철보다는 못한 중도의 자세였던것 같다.
정여립은 본래 율곡의 제자였으나, 탈당하고 동인에 입당한 인사이다.
그후, 정여립은 스승인 율곡을 자주 씹는다는 이유로, 선조에게 미움을 사게되고 그 연유로해서
관직을 박탈당하고 전주로 낙향하게된다.
당시 동인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상황인데, 서인인 율곡을 욕했다는 이유로 그리한 선조의 마음은 이미, 동인처단을 작심하고 있었던듯하다.
남명조식의 영향을 받은 정여립은 진보적 성향을 갖게된다.
그래서, 낙향한 후에도 항상 많은 이들이 그의 주위에 머물어 있었다.
사명대사나 서산대사도 그와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선조에게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정여립은 과연 역모를 획책했을까?
아니다.
이유는 이렇다.
1. 이미 기득권세력에 속해있는 그가 역모를 획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서인의 좌장격이고 자신의 스승인 율곡마저 씹어갈기던
인사 였다.
2. 증거가 없다.
오로지, 온갖 고문으로 얻어낸 관련자들의 자백만으로 죄를 뒤집어 쒸웠다.
3. 대동계의 진실.
선조가 말하는 역모의 집단인 대동계는, 해안가에 출몰하는 왜구의 토벌을 위해서 관의 요청에
의해 조직된 공개된 조직이었다.
심지어, 관군과 공조하여 왜구를 소탕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4. 정여립은 역모가 발각되자 전주의 죽도로 도망가서 자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이 아니다.
역모를 꽤하다 발각된사람이 어찌 자신의 고향으로 숨어들수 있단말인가?
발각될것이 뻔히 알만한 장소에 숨는다는것은 당시의 최대권력을 갖은 학자를 폄하하는것이다.
오히려, 경상도나 함경도 쯤으로 도망가서 숨어야 옳은일일것이다.
그리고, 정여립은 자결한것이 아니라 정철이 보낸 민씨라는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
5. 정여립이 동인이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대부분 동인들이었다.
결국, 그 사건으로 처형된 사람들은 동인들이었다. 그로인해 동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득세하는
결과가 된다.
6. 정여립사건 이후, 그일에 연루된사람들은 모두 회복이 된다.
정여립이 죽은 이후에 왜 선조는 그들을 사면해주었을까?
바로, 짜여진 각본에 철저하게 조작되고 변절되었다는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권력욕에 눈이먼, 정철의 번득이는 재치로 인해 당시 최대 진보학자 정여립은 없어졌다.
그리고, 조작된 사건이 분명함을 알고 있는 선조는 비대해진 동인권력을 없앰으로써, 왕권강화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성리학의 윤리를 최대의 덕목으로 삼았던 틀을 깨고자 노력했던 정여립.
너무도 앞서나간 생각을 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도 볼수있으나, 그의 정신만큼은 다시 조명해봐야한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왕위세습을 부정하는 사상을 가졌다는것 만으로도, 귀감을 받을만한데,
스스럼없이 행동에 옮겼다는 자체가 경의 스럽다.
그는결코 실패한 반란의 수괴가 아니다. 망할놈의 양반 상놈의 신분체제를 뽀개고, 백성이 주인되는세상을 부르짖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수밖에 없었다.
대권에 눈이 멀어서 정여립과 같은 진정성과 원칙을 가진사람이 죽어 나자빠져는 안된다.
제2의 정여립은 다시는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
그것은 다시 400년 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것과 다를바없다.
당장의 눈앞의 이득에 이합집산이 아닌 거시적안목과 냉철한 판단이 지배하는 대선판이 되길 바래본다.
그런점에서 한마디...ㅎㅎ
시민광장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