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와 억압체제下에서는 은유법이 발달한다
태백산맥의 조정래작가가 이붸스에 나와서 자신이 발휘한 은유적 표헌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찬 적이 있다. 과히 적벽가였다.
조조가 똥쭐빠지게 도망가듯이 독자를 앞서 가야 했던 것이다. 직설은
빵으로 가는 첩경이었을 터니까....그 시대에 직설은 터부였다.
그 시절 피해자에서 곡필을 앞세운 수혜자로 변신한 언론은 참여정부들어서
직필과 직설의 하수인으로 맹활약중이다. 꿀리는 것이 많아 뒷북치는 쪼다쉬.
- 성숙한 민주사회에서는 반어법을 통한 강조가 자연스러울텐데...
유시민의 경우 이미 言說의 수준이 입신의 경지에 다달아 無僞의 경계를
넘나드는 文字不立의 무아지경에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표현이 바로
성공한 독재자 박정희론인 것이다. 그런데 받아 적은 언론의 수준이 문제다.
발언자 역시 자연스러이 분위기를 타고 토해낸 어떤 반어적 강조를
언론이 곧이 곧대로 옯겨 놓으니 웃고 넘어갈 말이 분란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놈이 박정희를 성공한 독재자라 생각할까? 씨부랄..
(아들같이 키운 부루투스에게 칼맞아 죽은 시이저가 성공한 독재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의 죽음은 총독 빌라도가 아닌 로마시스템의 우두머리
시이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부루투스나 김재규가 예수나 장준하를
알았을까 확인할 수는 없지만....)
- 치졸한 국어시간에 접한 만해와 이육사에 대한 더러운 은유들
고삼국어시간에 만해와 이육사의 시를 다루는 선생놈들이 깔아주는
수개의 은유적 해설들을 먹고 자란 기자들은 정치면 기사를 열두가지
스펙트럼으로 장식하며 종이를 더럽힌다. 역사적 어름장,개인사적 배경
심리적 복선하며 등등등...시는 다만 노래일 뿐이다. 흥얼거리듯 저절로
외워지는 시가 좋은 시다. 작가 역시 그렇게 아무렇게 옮겨 받아 적었을 테니...
- 우리 동네 깍뚜기 형님들의 씸플한 직설법하나, 됐나? 됐다!
복잡다양한 논쟁고수들의 란제리 패션쇼장인 이 게시판을 결론지을
딱 두마디를 반어법적 억양과 강조를 통한 직설적 표현을 쓰면 무엇이 될까?
<유시민 됐나? 됐다!> 혹은 <유시민 으잉? 으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