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이철신 목사의 설교를 CBS가 방송하면서 임의로 편집한 것이 문제가 돼서 영락교회와 방송사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방송분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편집이 불가피했을 테지만 아마도 편집하면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한 발언을 삭제한 것에 대하여 교회측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설교내용에서는 이번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냐, 반미친북이냐?'를 가려서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부분 민주화 세력을 NL과 PD로 분류하고 현정권도 그 범주에 넣어서 마치 사회주의 혁명이라도 꿈꾸는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일부 대형교회의 부당한 정치행위는 이번에 돌출된 영략교회만의 일이 아니다. 교회의 자금을 횡령하고, 여신도와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강간을 하고도 언론의 비판보도를 물리적으로 막고 사법당국의 수사를 방해하던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목회자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에게 저주를 퍼붓는 한편, 전쟁으로 수 많은 목숨을 앗아간 부시 미국대통령을 축복하는 도무지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바가 있다.
여신도와 간통현장을 들켜서 고층의 벽에 붙은 에어콘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한 목사를 과로로 순직하셨다고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잘못은 지속적으로 숨기기에 급급하며 수구세력의 편들기에는 과감히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예배시간에 교회는 선거운동의 공간이 되고, 목사는 설교시간에 마치 선거지원 유세를 방불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렇게 지금 정치적 관심을 많이 갖는 교회들이 과거 엄혹한 독재의 시대에는 무엇을 했는가 반문하고 싶다. 민중이 피를 흘리고,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죽어가던 시기에 독재자들을 향해서 태연히 축도를 하던 사람들이 왜 지금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기에 이렇게 정치행위에 몰두하는 것일까? 그 동기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선의로 생각하자면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거치고, 남북이 갈라진 후 6.25라는 비극을 겪는 동안 공산주의를 주장하던 세력에 의하여 교회가 받은 상처가 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에 비유할 정도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교회와 상극인 점도 있다. 그래서 일부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레드컴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또 과거 NL과 PD등의 운동권이 공산주의 사상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소련의 몰락후 환상에서 깨어났다 하더라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바로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이미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지났지만 일부 운동권의 과거에 대한 의혹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마도 교회가 공산주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공포가 여전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선의로 보고 용인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렀고, 교회가 말하는 자유는 교회가 숨죽이고 함부러 말도 못하며 독재자에게 절절한 축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때에 비하여 지금이 훨씬 높은 수준으로 향유되고 있다. 과연 종교의 자유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비하여 지금 더 나빠졌는가?
또 지금 공산주의는 이미 체제경쟁의 상대가 되지도 못할 뿐 더러 잠시 학생운동 시절에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386세대는 이미 기성정치인 뺨치는 자본주의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어찌보면 그들의 타락상이 너무도 심해서 기성정치꾼들을 뺨칠 정도가 되었다. 그들의 과거가 그렇게 무서운가?
여전히 교회는 내외부의 비판에 대하여 가장 배타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교회들이 자유주의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교회만큼 비판이 어렵고 배척당하는 조직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스스로 비판받지 않으려는 것은 그만큼 도덕성에 자신이 없어서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비판에 대하여 관대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교회들이 세상을 향해서 자유민주를 외치는가? 자유가 구속된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거늘 왜 하필이면 민주앞에 자유를 붙여서 강조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자유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비리의 덩어리인 사학재단에 대하여 감시장치를 마련한 정치세력에 대한 보복심리가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앞에 결코 그런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유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맹세할 수 있는가? 비리가 만연한 사학들이 종교집단의 일부에게 밥벌이의 수단이 되는 것을 침해당할 것이 속상한 그런 반발은 정녕 없는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종교행위를 강요할 수 없도록 자유를 좀 더 확대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 반발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다짐할 수 있는가? 심지어 채플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어린 학생들의 장래에 치명적인 퇴학조치를 내리는 그러한 재단측의 자유만을 확대하고픈 의도는 없는가? 정당하지 않은 강압으로 선교를 할 자유를 얻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과거에 비하여 밝아진 세상을 불편하게 느껴서 과거로의 향수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부 대형교회들의 정치적 행위가 스스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을 때도 과연 떳떳하고 당당한 것인지를 돌아볼 일이다.
물론 교회의 사회참여를 찬성한다. 교회의 정치참여도 찬성한다. 교회가 어둠속에 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교회도 그것을 누리는데 소외될 이유가 없다. 비판도 할 수 있고, 찬성도 할 수 있다.
다만 진정 인간의 양심에도 부합하지 않는 떳떳하지 못한 모습이라면 하나님의 기준에는 많이 모자라는 것이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 옳다. 과거 양민을 학살한 자들에게 축도한 것, 신사를 참배하고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 독재자들의 폭정에 아무런 비판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도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으로 특정한 정치세력을 돕기 위하여 양심을 속이고 선동하는 일은 교회답지 못하다. 그러한 목회자들을 비판하지도 못하는 교회는 확실히 자유민주를 주장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누구를 위한 어떤 자유를 주장하는가? 혹시 서민과 빈민층에게 오로지 굶어죽을 자유만을 강요하는 비정한 그런 자유를 원하는가? 그것은 교회가 주장할 자유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명은 분명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