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기준이 많이 높아졌다. 특히 국무위원 후보자들에 대한 인준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로 의심되는 행위를 했던 공직후보자들이 낙마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제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상당한 수준의 도덕성을 갖춰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기준이 높아진 것은 결코 국민에게나 국익에 불리하지 않을 것이다. 기준이 높고 엄격히 요구될수록 국민은 청렴한 공복을 두고 국정을 맡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렇게 된 것은 사실 한나라당의 공이 크다. 국무위원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청문회에서 열심히 아주 작은 흠결이라도 찾아서 낙마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심지어 보수언론과 합작하여 의혹을 제기하곤 하였던 것이 결과적으로 국익에 부합한 행위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을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한나라당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것같다. 지금 대선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스스로 높여놓은 도덕성 기준이 자신들의 대선후보군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위장전입이나 부동산등을 통한 치부에 대하여 국민들이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여 지지율이 유지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점차 과거 한나라당이 내밀던 엄격한 도덕성 기준이 기억에 되살아날 것이다.
지금은 반한나라당 진영의 후보군이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부각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국민이 비교하여 도덕성 요구를 높이지 않고 있지만 비교대상이 등장하면 상황은 다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비교대상이 도덕성 높은 인물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 상황을 대비하여 사전포석을 열심히 깔고 있는 것도 주목해볼 일이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포석은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무능보다 부패가 차라리 낫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깨끗하고 무능한 정권이 부패하고 유능한 정권보다 실질적 국익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사실은 깨끗한 세력이 반드시 무능하지도 않으며, 부패한 세력이 유능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는 것이 상식이다. 부패한 자가 어떻게 유능할 수 있는가? 수구언론과 기득권층의 이러한 구호는 여론을 잠시 호도할 수 있을 뿐 최종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둘째, 외환위기를 초래하고 부정부패로 얼룩진 문민정부의 수장 김영삼 전대통령이 한 말을 곱씹어볼 일이다. '대선은 성인군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도덕하다는 것만으로,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것 만으로는 집권의 당위성이 전혀 없다. 왜 부도덕을 이렇게 칭송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장관자리도 할 수 없는 도덕성으로 어찌 국가원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일까? 어불성설이다.
셋째, 조갑제씨는 '도덕교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숱한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한나라당의 검증공세로 낙마할 때는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국무위원은 도덕성이 필요하고 그들을 이끌어갈 국가원수는 좀 부도덕해도 된다는 주장일까? 참으로 신기한 논리이다. 도덕성이 높고 청렴한 관료들이 과연 부도덕한 대통령의 통치를 진정으로 따를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이번 대선에서의 도덕성 시비를 회피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사전포석의 사례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책동은 결코 국민에게 용납될 수도 없으며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다시 깨어나 이미 높아진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을 철저히 대선후보군에도 적용할 것이다. 국무위원보다 더욱 대통령의 도덕성은 높아야 당연하다. 우리국민이 도덕성 검증을 회피하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한나라당을 향하는 도덕성 기준이라는 부메랑은 결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국익에 그만큼의 기여를 했고, 이점은 칭찬을 들어 마땅한 일이다. 한나라당, 그동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