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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형을 향한 넋두리.
형은 가시고
가시고 나니 사람들은 형을 별이라 부른다.
형이 별이 되다니 누가 형더러 죽어 별이 되라 하였나.
별처럼 스러져서는 어찌하란 말인가.
슬프다.
슬플 뿐이다.
누가 민주주의를 목숨 바쳐 지켜 나갈 우리들의 이상이라 가르쳤던가.
그래서 기껏 이 모양으로 아직도 너절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토록 피 터지게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목이 메었던가.
형 말대로
이렇게라도 버텨야 이만한 세상이라도 만들어 진다는 건가.
밀고 또 밀고 나아가다 보면 좋은 세상은 있다는 건가.
그래서 형은 할말도 다 못하고 골병을 안은 채 이대로 쓰러져야 한단 말인가.
이게 역사란 말인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형이 말했었다.
막히면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우리에게 무슨 교과서가 있었겠냐 만 형은 교과서처럼 말하길 좋아했다.
그래, 역사를 사랑하는 건 대중을 섬기는 거였다.
진짜 무서운 건 대중이고 대중을 신뢰해야 한다고.
민주주의의 방법은 대중의 정치적 진출.
그래서 형은 노동판이든 데모판이든 빌어먹게 썩어버린 제도정치판이든
아무데라도 앞장서 뛰어 들어야 했다.
진짜 대중이 뚫고 나갈 길을 만들기 위해.
그래서 슬프다.
앞장서 나아간다고 그 만이 숱하게 얻어 터지고 갇히고 죽어 넘어져
일년 삼백육십오일 날이면 날마다 민주열사들 제사 모시기도 바쁜 이 나라에
아직도 꼴난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북악산에서 강남에서 여의도 어름에서 비싼 밥 먹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의 난장판이고
경제살리기 사기극 한판 성공으로 낄낄대는 놈들에게 여전히 조롱 당하고 있다.
슬프다.
형이 죽고 나서야 이렇게 슬픈 것이 더욱 슬프게 한다.
그래. 까짓 것.
지긋지긋하게 영악하던 박정희도 무너 뜨렸는데
전두환이 노태우,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
제 몸이나 영화 누리자고 몰려다니던 그 줄줄이 졸개들까지
까짓 것들은 참고 참으면 견딜만하고 오래지 않아 이길 수 있다고 형은 말했었다.
결국 이 고난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이루고야 말 대중의 훈련장일 뿐이라고.
그래. 지금도 그렇다.
되도 않는 이명박이 떼거지들쯤이야 제풀에 죽을 놈들.
한줌 마수거리도 아니다.
촛불로라도 태워버릴 게다.
그렇지만 그래도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우리들의 아름다운 민주주의는 왜 이렇게 싸워야만 할 적이 있어야만 하는 건가.
들판을 날아오르는 새들처럼 자유롭고 풀꽃 향기처럼 싱그럽던 꿈.
우리들의 해맑은 청춘은 왜 이글거리는 분노로 불살라져야 했는가.
그러고도 왜 우리는 지금
빚진 죄인의 통한을 안고 형 앞에 가슴 때리며 울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형은 참 지독했다.
너무 순진해서 우리를 부끄럽게 할 만큼 지독한 거였다.
열 이레 동안인가 전기고문을 받고도 이를 악물고 고문으로 남은 피딱지를 숨겨 들고 나왔지.
고문을 예술로 아는 기술자 놈들이야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게 무서웠지만
앙칼지게 피딱지를 들이댄 형은 정말 그 놈들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형이 두려워했던 건 고문 따위가 아니라
발가벗겨 짓뭉개지는 자존심과 함께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순수.
그저 맞고 버티고 그래서 더 맞아도 순수한 믿음을 지키는 것.
그것 밖에 이겨낼 방법 없었던 형은 우리들의 순진한 영웅이었다..
그래. 지금도 놈들은 또 달려들겠지.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것 만이 아님을 기어이 증명하려는 놈들.
민주주의가 피와 눈물로 이뤄진다는 것을 결국 보여주고야 마는 놈들.
게다가 이제는 천 번의 수정 만 번의 변검술로
무슨 자본주의든 무슨 민주주의든 탈을 바꿔 쓰고
소용 닿으면 우리의 웃음 우리의 꿈까지 자기 것이라 우기면서.
밖으로 치고 안으로 파고들어 이미 문 앞에 잠복하고 있겠지.
더럽게 지독한 놈들.
그래 .그래서 우리들은 형이 필요한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 교과서 같은 형이 있어야 한다.
너무나 순수해서 놈들 보다 더 지독한 형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형이 가시고 없다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누구더러 형처럼 독한 청춘을 다시 살으라 할거냔 말이다.
서러워 마신 소주에 형의 노래를 불러볼 뿐이다.
별 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 간 바람처럼 기약 없이 멀어져 간 내 사랑아.
아. 사랑은 한줄기 불꽃
아. 사랑은 한줄기 바람인 것을.
아아 까맣게 잊으려 해도 왜 난 너를 잊지 못하나.
오 내 사랑아.
젊은 시절 숨어 다니면서 노동자들 속에 술 마시기를 배우며 불렀던 노래.
단 한 곡 뿐이었던 형의 수줍은 18번 이었지.
그래서 정말 노래처럼 되고야 말았는가.
그래서 이제는 눈물 복바쳐 다시는 부르지 못할 노래가 되고 마는가.
그래 형.
누가 운다해도 형은 갈 길을 가야겠지.
우리가 붙들 수 없는 길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만 가시오.
여긴.
민주주의는.
남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테요.
형처럼은 지독하지 못하더라도 보듬어 안아 끝까지 끝까지 버텨 볼테요.
부디 잘 가시오.
기왕이면 환하게 웃고 가시오.
더는 말을 못 잇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