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산벗 산행후기에서 함께 입력된 아사달의 봄님의 글입니다. |
지리산, 그 품에 안기다
<#1>
도시는 죽음과도 같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하나 둘 빌딩은 어둠속으로 스며들고, 저 홀로 졸고 있는 가로등은 오가는 차량이 반가운 듯 두 눈을 깜박였으며, 인적 드문 거리엔 허허로운 바람만 갈 길을 잃고 배외하고 있을 때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낯 선 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우리를 실은 버스는 서서히 고속도로를 향해 육중한 몸뚱이를 움직였고. 이제 저 어둠을 뚫고 서너 시간을 달리면 지리산이다. 겨울 지리산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주려는지. 아니 무얼 하려고 이 추위에 나를 찾았느냐? 야단을 칠지도 모를 일이지만 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반겨주면 좋겠다만, 종아리 걷어 올리고 눈물 쏙 뺄 회초리를 휘두른다 해도 뭐 대수일까. 내가 좋아 가는 길, 누굴 탓하고 겨울 지리산을 탓해 무엇 하랴. 건방떨지 않고, 조심조심 그 품에 안겨보는 거다. 내 걷는 걸음걸음이 거짓되지 않고, 내 마음가짐이 조바심 갖지 않으면 품에 품어주겠지. 육중한 엔진 소리가 차창을 스치며 요란스럽다.
<#2>
3시 30분. 어둠을 뚫고 달려온 버스가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네 시간여를 달려와 멈춰 선 지금. 사위는 어둠속에 고요하다. 아스라한 도시도 잠에 취해있고, 어둑어둑 고요한 숲도 아직은 한밤이다. 모두 잠든 시간,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가 좋다. 지리산의 그 너른 품이 여기서 시작이다. 어둠에 묻혀 모습은 간데없다만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저 어둠 뒤편에 팔짱끼고 나를 내려다보는 지리산이 웅장하다. 보이지 않아도 그 웅장하고 대단한 위용이야 미루어 짐작하면 그만이다. 눈길을 걸었다. 앞 다투어 달음박질 칠 길이 아니다. 도란도란 두런두런 이야기가 좋다. 같이 걷는 모양새가 좋고,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도 좋다. 이런 고요한 산길을 어찌 왁자지껄 걸을 것인가. 발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반짝이는 별빛소리. 어디 별들이 이야기를 하겠냐마는 환청이어도 좋고, 바램이어도 좋다. 별들이 속삭인다. 까만 천장에 매달려 두 눈 반짝이며 이야기를 건다. 어디서 왔느냐고? 뭘 하고, 그 하는 일은 잘 되는지 시시콜콜 묻고 또 묻는다. 유년기의 기억 저편에 아득했던 그 별들이 오늘은 이렇게 되살아나 말을 건다. 큰곰자리, 오리온자리, 사자자리, 전갈자리에 궁수자리까지. 노고단대피소로 향하는 길엔 사람도 별들도 이야기로 가득했다. 가득했지만 결코 시끄럽거나 번잡스럽지 않을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3>
버너에 불을 붙이고 새벽을 깨워 아침을 준비한다. 이른 새벽 쓴 소주에 뜨끈한 국물이면 그만이다. 진수성찬에 산해진미야 한가롭고 여유로운 자의 식탁일 뿐. 산을 찾은 자의 식탁은 허기짐과 추위를 쫒아내면 족하다. 걸인의 찬과 황제의 여유로움이면 행복한 그래서 겉치레 없는 산이 좋은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마음도 다시금 다잡아 이틀 밤, 삼일 낮의 그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헤드렌턴에 불을 밝히고 어둠속을 걷는다. 이제는 세상의 잣대에 맞춰진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몇 분이 흐르면 내가 어디에 있겠지 하는 따위의 기대는 애초에 버리는 것이 좋다. 내가 걷는 만큼 정상도 다가올 것이고, 내가 움직이는 만큼 가야할 거리도 좁혀지는. 그래서 요행이나 꼼수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 거짓 없음이 산이 아닌가. 가다 보면 눈도 내릴 것이고, 걷다보면 칼바람이 얼굴을 때릴지도 모르지만 그게 산이다. 지리산의 너른 품을 파고들 내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적당한 압박이 오히려 가슴을 뛰게 하는 시간. 노고단의 짧은 새벽은 그래서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설렘을 가슴에 품고 새벽을 내내 걸었다. 어둠을 지나고 너럭바위를 지나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사이사이를 지나 노린재덩굴 가득한 숲길도 지났다. 조릿대로 푸르른 비탈길도 돌아 다래덩굴 얽히고설킨 길을 지나 새벽 희뿌연 여명에 깨어나는 이름 모를 봉우리에서 서리꽃으로 눈부신 선경도 만났다. 가는 길 내내 소복이 쌓인 눈이 좋았고, 알싸하게 스치는 바람은 더욱 좋았다. 눈길 가는 곳이 그림이요, 발길 닿는 곳이 무릉 이었지.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서성여야 하는 지리산은 겸재의 붓끝처럼 황홀하다 말할 뿐. 더 이상의 수식어를 나는 모르겠다. 아름답다 예쁘다는 말로는 그 깊이가 부족하고 오묘하고 신비하다 말하기에는 너무도 허공중을 헤매는 듯 해, 사람의 말이란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부족한지를 깨닫게 되는 그래서 지리산은 그저 지리산 이라고 말할밖에.
<#4>
노고단, 반야봉 그리고 연하천대피소에서의 점심. 점심을 먹는 내내 손가락이 터질듯 아리고 쓰려 라면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에 없다. 겨울 모진 바람이 왜 모진지를 알게라도 하는 것처럼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멈춰 선 시간만큼 몸도 얼어붙고, 물이며 바람이며 모든 게 순간순간에 얼어붙어 댕그렁 댕그렁 소리도 요란하게 부서져버린다. 추위에 몸서리치며 다시 길을 걷는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하얀 설원에 우뚝 선 구상나무가 푸르르다. 파란 하늘가에 우뚝 선 모습은 가히 대장부의 기개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아름드리 넓은 품은 지리산을 빼닮아 칼바람 앞에 당당하니 ‘너는 지리산의 아들이다’ 칭찬의 말이라도 건네주며, 바위며 나무며 이름 없는 풀들마저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무엇인들 소중하고 예쁘지 않을 것인가. 말도 없고, 보채고 투정부림도 없이 선 자리에서, 박힌 자리에서 타고남에 만족하는 ‘너희는 멋쟁이다’ 이야기도 했다. 손끝에 닿는 모든 것들,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 내 품에 품고 나니 벽소령대피소다. 예서 만날 소중함이야 산천과 초목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대피소에 이르는 내내 마음이 급하고 몸도 급하다. 해거름에 달려올 소중한 사람들. 산허리에 내려앉는 그림자가 이내 밤이 온다 말해주고 하루의 산행이 가져다주는 피로함은 발길을 붙잡아 걸음걸음이 더디다.
<#5>
뭐라 할까? OO님. 어떤 식으로든 OO님을, OO님과의 따듯한 인연을 이야기 하고 싶지만 부득이 묘령의 님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음이 참으로 아쉽고....그리고 수더분하고 붙임성이 좋아 듬직하고 믿음직한 그래서 마음이 가는 사람. 부지런한 발걸음에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있고, 세상을 좇는 눈가에는 시퍼런 칼날 하나쯤 품에 품을 수 있는 사람. 느리지만 느리지 않고 터벅터벅 끝끝내 가고야 마는 성품에서 누런 황소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사람. 그 큰 눈에 ‘난 선한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 익산광장의 녹두꽃님. 인연이란 게 무엇인지. 겨울 찬바람을 뚫고, 눈길을 헤쳐 벽소령을 찾아 준 두 사람을 만났다. 뭐라고 말을 해야 이 멋진 사람들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지. 그저 고맙다는 말. 내가 이런 인연을 감당할 만한 사람인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그런 소중한 사람들. 그들이 짊어지고 올라온 오리고기와 갈비. 감동에 또 감동. 그렇게 소중한 인연들과 소주 잔 기우리며 벽소령대피소에서 하루가 지났다. 웅웅웅 요란스럽게 우는 바람도 아리고 쓰리게 매서운 추위도 더 이상은 맹위를 떨치지 못했다. 가슴에는 소중한 인연들이 만들어낸 뜨거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6>
벽소령에서의 아련한 기억을 뒤로하고 눈꽃에 서리꽃까지 가슴에 아로새기며 걷는 길이 행복했다. OO님, 녹두꽃님, 가야산님, 독야님, 다정무심님 그리고 나 아사달의 봄. 여섯이 만들어내는 훈풍이 지리산의 겨울을 멀리멀리 내칠 것 같은 착각을 가슴가득 품고 또 품었다. 벽소령에서 세석평대피소에 이르는 길은 향기롭고 짧았다. 겨울도 없었고, 힘들다 이야기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행복이었지. 세석에서 점심을 나누고 소중한 만남은 기억에 꼭꼭 보듬고서,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했던가. 우리가 그랬다. OO님과 녹두꽃님과 아쉽고도 아련한 이별의 정을 나누고 길을 또 걸었다.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 종주가 아니던가. 눈 뜨면 걷고, 밥 먹고 나면 또 걷는다. 산에서의 몇 십 킬로미터는 말 그대로 걸음의 연속이다. 세석을 지나 장터목으로 향하는 길. 구름인지 안개인지 세상이 희뿌옇다. 가지가지마다 꽃이 앞 다퉈 피어나고 제 잘난 맛에 산이 온통 시끄럽다. 사람도 시끄럽고 산도 시끄럽다. 산은 잘났다 재잘대고 사람은 아름답다 감탄의 말로 시끄럽고. 선경이 아마도 이런 풍경을 두고 이르는 말이겠지. 신선이 머루를 풍경. 그랬다. 지리산은 신선이 머무를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7>
오후 8시, 대피소는 이제 자야하는 시간이다. 세상에 있으면 어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할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저녁이지만 산에서는 자야만 한다. 소등을 하고 여기저기서 벌써 코를 고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종일 산에서 돌아쳤으니 피곤도 하려니와 어둠이 주는 고요함도 분명 한 몫을 했으리라. 빛이 없는 캄캄함. 스스로 알아서 잠들고야 마는 정적. 내일의 일출을 상상하면서 잠을 청했다. 밤의 시작이 빠르듯이 새벽의 시작도 그만큼 빠른 게 산이다. 청명한 하늘에 시뻘건 심장처럼 붉은 해가 떠오르기를 소망하고 기원하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자리의 부스럭거림에 눈을 뜨니 아침. 새벽 4시 30분. 아침을 먹고 드디어 천왕봉을 향해 출발이다. 어둠을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 하늘로 통한다는 바위 문을 만났다. 이름하여 통천문. 좁고 가파른 돌구멍을 철제계단을 이어 붙여 만든 길. 두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구멍을 통해 오르면 시야에 가득 하늘이 담긴다. 뜻을 두고 몸을 닦으면 신선에 이르러 하늘에 닿을까. 아니면 진심을 담아 소원하고 기원하면서 이 문을 통하면 그 소망이 하늘에 닿을까. 어찌되었거나 통천문을 지나며 빌고 빌었다. 사람 사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길. 이런저런 생각 끝에 오른 천왕봉은 매서웠다. 바람이 매서웠고, 온몸을 엄습하는 추위가 매서웠으며 발 아래로 펼쳐지는 그 웅장함이 매서웠다. 세상을 굽어보는 그 웅대함은 무섭고도 차가웠지. 산허리를 타고 넘는 구름이 신비했고 바람에 부서지는 안개가 오묘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칼바람에 묻어 떠오르는 불길은 심장을 멎게 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붉게 타는 불덩이. 세상 어떤 말로는 설명 못할 그 붉은 심장을. 붉은 피 뚝뚝 세상에 흘리며 떠오르는 고동치는 심장을 온몸에 기억하기 위해 나는 몸서리 쳤다. 부는 바람이 엄습하는 추위가 이렇게 몸을 떨게 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하면서.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일출은 그만큼 장엄하고 웅대했다. 내가 공덕을 쌓았는지 아니면 다른 이가 공덕을 쌓았는지 몰라도 하늘에 내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통했을까. 선혈 흐르는 펄펄뛰는 심장을 가슴에 품었으니 행복이다.
돈이 많아 행복이 아니요, 지위가 높고 기 기세가 대단해 행복도 아니요, 다만 좋은 벗들, 좋은 인연들, 향기로움에 둘러싸여 오늘 천왕봉에 올랐으니 행복이다. 그리 믿는다. 향기로운 인연 손끝에 닿으니 난 행복한 놈이다. 이 향기로움 가시기 전에 이만 문을 닫는다. 바람이 차다. 하지만 가슴이 따뜻하니 이 겨울이 춥지만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