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던 사람이다. 소매상은 어떤 신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은 아니다.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제품들 중 괜찮은 것을 고르고, 이것을 소비자들에게 잘 판매하는 것이 소매상의 역할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치인의 역할이란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 자신이 독창적인 이론이나 정책을 개발할 필요는 없으며, 동시대의 다른 똑똑한 사람이 제시한 여러 국가발전노선 가운데 가장 쓸만한 것을 골라내고 이것을 국민들에게 잘 세일즈 하는 사람이 우수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강연을 시청하면서 한가지 기분 좋았던 점은 이제 우리 정치의 담론 수준도 선진국의 그것과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지점까지 올라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사조의 본고장이라면 여전히 영국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사회투자국가론과 관련된 여러 논의는 그쪽에서도 약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치 선진국과의 격차가, 최소한 담론의 영역에서만큼은, 10년 안팎으로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유시민 말마따나, 우리는 뭐든지 한번 변화를 시작하면 굉장히 그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므로, 정치 분야에서의 격차줄이기도 더 속도를 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 유시민의 저서가 출판되기 전이고, 어제 강연은 총론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아직 그의 구상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제 강연을 들으면서 느낀 점 두가지를 간략하게 코멘트하도록 하겠다.
1. 국가와 민간의 관계 설정이 모호하다
유시민 강연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밖으로는 문을 열고 안으로는 사람에 투자하는 선진통상국가-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도 대외적으로 통상국가를 지향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대내적으로 국가는 민간부문을 이끌며 국가주도형 개발을 선도하는 적극적인 개입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국가는 대내적으로 이런 역할 보다는, 사람을 길러내는 사회투자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대내적으로 수행하는 국가의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제 강연에서 한가지 분명하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면, 이렇게 국가역할을 조정할 경우 민간부문과의 관계설정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발전 전략이 온전한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것에만 그쳐서는 미흡하다. 국가가 이렇게 역할을 조정할 경우, 민간부문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공공-민간 부문의 변화들이 합쳐져서 어떻게 전체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는지 그 상이 잡혀야 한다.
예컨대 전통적인 산업정책의 영역을 보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참여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신성장 동력 10대 산업이니 뭐니 해서 차세대 주요산업을 국가가 지정하고 여기에 재정을 투입해서 발전을 돕고 하는 일들을 했었다. 소위 말하는 차세대 먹거리를 만드는 사업이다. 유시민의 어제 강연만으로 판단해 보면, 이런 산업정책은 이제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국가가 이런 산업정책의 영역에서 후퇴하고 사람키우는 일에 집중한다면 그 공백을 과연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메꿀 수 있을 것인가. 또 개혁세력이 입만 열면 하는 얘기가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국가가 사람키우는 일로 역할을 재조정한다면 기존의 중소기업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오게 되는가. 유시민의 어제 강연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어떻게 새롭게 역할분담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아직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제까지 유시민이 "복지대통령"을 지향하는 줄 알았는데, 어제 강연을 들어보니 오히려 "투자대통령"이 더 적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사람에 투자해서, 기업의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 뭐 이런 컨셉이 가능할 듯 싶은데, 이를 위해서라도 국가와 민간의 관계설정에 대해서 더 분명한 비전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 너무 추상적이다
어제 강연은 정치인의 그것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대단히 학구적인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론은 "한나라당은 신이 내린 정당" 발언에만 집중한다). 숫자와 그래프가 난무하고 (프리젠테이션 기술은 좀 고민을 해야할 듯), 사회과학용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특이한 강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시민 특유의 역량으로 인해 졸리고 난해한 강연으로 전락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제 강연이 총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람"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를, 내가 동시대의 최고의 정치 천재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빌 클린턴의 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클린턴의 최대 강점이라고 한다면, 이론의 영역과 유권자들의 구체적인 삶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것은 물론, 이 둘을 매우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특출한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92년도에 클린턴이 부시를 토론에서 격파하는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클린턴은 단순히 레이건때부터 이어져온 공화당의 경제정책과 그 부작용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경제학 이론 자체를 공격했다. 그리고 이런 공격을 단순히 숫자나 이론용어를 사용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칸소주의 주지사를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스토리와 연결해서 비판을 했다. 다시 말해 그의 정치적 담론에서는 이론과 구체적인 스토리가 대단히 효과적으로 결합을 한다.
요새 미국에서 오바마가 뜬다고 해서 주의깊게 살펴 보았더니, 이 사람 역시 이라크전을 단순히 정책의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구에서 만난 이라크전 상이군인, 그의 가족, 그들과의 대화로부터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공화당의 감세정책을 비판하고 공동체적인 미국의 비전을 강조하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설에는 정책과 삶의 구체적인 문제가 하나로 잘 결합되어 있다.
나는 유시민도 이런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즉 이론과 삶, 정책과 스토리를 결합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복지장관 하면서 많은 현장을 다니고 많은 소회가 있었을 것 아닌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삶의 모습들이 품격있는 이론과 만날 때 정말로 폭발력있는 대중성이 나올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보완이 있다면, 유시민이 들고 나온 새로운 국가비전은 보다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