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산벗 산행후기에서 함께 입력된 아사달의 봄님의 글입니다. |





五里霧中, 그 속에 찻잎은 자란다!
달리는 차를 향해 빗방울이 달려든다.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들짐승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거친 몸짓과 숨소리가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달아나는 먹잇감을 향한 날카롭고 예리한 몸짓으로 부딪히고 또 부딪혀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헉헉 쇳소리를 내며 줄행랑치던 그 아침 하늘은 무채색으로 퉁명스러웠고, 바람은 윙윙 소리를 내며 잰 걸음으로 나를 스쳐갔다. 비 내리는 주말 아침, 거리는 스산해 오가는 이도 눈에 띄지 않는다. 휑한 거리에는 가로등만이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섰다. 밤새 거리를 밝히던 가로등의 깜박거림엔 밤을 지새운 피곤함이 역력하다. 눈은 퀭하게 들어가고 눈꺼풀 위로는 천 근 만근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었다. 지난 밤 취객들의 비틀거림도 지켜봤을 테고, 삶의 무게로 휘청거리던 뭇사람도 보았겠지. 만취한 술꾼의 허허로운 삿대질에 알차게 먹었던 토사물. 더더욱 재수가 없었다면 노상방뇨를 뒤집어쓰는 굴욕도 당했을지 모른다. 2011년 10월의 마지막 주말아침은 그렇게 깨어나고 있었다.
젊음의 거리, 혜화동 혜화역 3번 출구 앞에서 낯익은 동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내리는 이비가 그칠지 아님 더 극성스러워질지 하는 따위의 말들이 오가고 그렇게 시간도 같은 보폭으로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들이 어디 강물뿐이랴. 사람도 가고, 돈도 가고, 시간도 간다. 무릇 영원한 멈춤이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먼 옛날, 뜨거운 함성과 땀 냄새 진동하던 거리는 울긋불긋 곱게 단장한 연인들이 밀물로 썰물로 왔다가 간다. 그들을 보면서, 숱한 선거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요즘 젊은것들은 생각이 없어! 그저 소녀시대에나 열광하고 도대체 ‘가치’에 대한 탐구는 없는 한심한 놈들이야”
하지만 나의 이런 자조가 기우였음을 깨닫게 하는 요즘이다. 그래 세상은 그래도 늘 조금씩이라도 진보를 한다. 세상의 진보에 털끝만큼의 보탬이라도 된다면, 그런 삶을 살았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멀어지는 혜화동이여, 내일을 부탁한다!
한강을 건너 버스가 달린다. 이 강을 건너면 그 자랑스러운 강남이지.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으름장을 놓는 대단하신 분들이 사시는 강남. 하지만 그 속에도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동지들은 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세상을 보듬는 따듯한 사람들이 숨 쉬고 있는 거다. 그들도 이아침 저 비를 맞으며 나를,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마음이 급하다. 늘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고 뭔가를 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하면 그때부터 마음은 조바심으로 종종거리지. 왜 조바심을 내는 걸까? 어차피 시간은 정해져 있고 목적지가 물결에 떠내려가는 것도 아닌데 진득하게 기다리면 만나질 사람이고 만나질 장소 것만. 그저 그런 만남이 좋고 또 기다려지고. 뭔 다른 말이 필요하랴. 난 그저 그대들이 좋아 이 밤을 뒤척였을 뿐.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더 크고 거친 몸짓으로 그대를 안지 않는다 해서 원망일랑 하지 말자. 나는 이미 그대를 사랑하니까!!
예당저수지로 가는 길 내내 오락가락하는 비는 내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들녘엔 안개가 가득했다. 사물이 흔들린다. 고즈넉하게 자리한 마을도 흔들리고 붉은 감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도 흔들린다. 차가 흔들려서가 아니다. 내리는 비에 세상가득 들어찬 안개가 모든 것을 몽롱하게 만들어서다.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불어가는 바람도 비틀거린다. 하지만 뭐 어떠랴. 선명하고 또렷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문명의 역사를 바꾼 보이차로 유명한 중국의 운남성은 구름과 안개로 유명하다. 늘 축축하고 몽롱하고, 불어오는 바람만으로도 목을 축일수도 있으리만큼. 그 구름과 안개가 녹차를 키운다. 몽롱한 세상에 똑바로 정신 차려 살아가라고 차나무가 자란다. 찻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마침내 강물이 되어 도도하게 흘러가지 않던가. 말발굽소리 천둥처럼 울려 퍼져 중국이란 땅덩어리 하나로 묶어내던 역사의 축에 한 잎의 찻잎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가는 길 내내 우리 내 산야를 휘 감돌던 그 구름과 안개가 예당지에도 변함이 없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도통 그 경계가 모호하고, 아득히 먼 수면과 논과 밭의 경계가 또한 모호했다. 세상천지가 모호하고 애매해서 뭐라 불러야할지 온통 그 부름마저 모호하고 애매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밤새 세월을 낚고 마음을 낚던 첨맘님이 거기에 서있다는 거지.
저수지 입구에 들어서자 바람도 잦아들고 흩날리던 비도 멈췄다. 마치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말이라도 건네는 듯 낯빛을 바꿨다. 그리고는 이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시민광장 동지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전북님들의 곱디고운 현수막들.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고 가슴은 뻐근해졌지. 산다는 것. 그것도 행복하게 산다는 것. 이렇게 사는 게 행복이 아닐까. 더 이상 뭔가를 바란다는 것. 그것은 끝내 채우지 못하는 욕망이고 욕심일 게다. 반가운 얼굴과 고마운 마음들. 그래서 함께 행복해지는 우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또 다행인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 뒤에 난 두텁게 입은 옷을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러면 잠시의 따가움이 뒤따르겠지. 차가운 금속이 닿는 느낌에 몸서리치고 날카로운 바늘의 찔림에 손을 떨겠지만 그게 다다. 아픔이 가시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 혈관을 타고 심장박동에 맞춰 따듯함이 온몸으로 퍼지겠지. 몸이 쇠한 사람이야 포도당이니 뭐니 하는 따위의 링거를 맞겠지만 나는 오늘 우리가 만들어 낸 이 온기를 맞을 게다. 그게 내게는 가장 좋은 링거가 될 테니까. 같이 꿈꾸는 길이 있어 행복하고, 그 꿈을 같이 좇는 동지들이 있는 한 나는 그런 즐거움 속에 살아가겠지.
붕어를 몇 마리 낚았는지? 베스를 몇 마리 낚았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애초에 낚시에는 관심이 없었다 말하는 게 정답이다. 다만 좋은 님들과의 행복한 한때가 그리워 먼 길을 나섰을 뿐. 사람 사는 앞날을 훤히 안다면, 그래서 내일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살고 있을지를 안다는 게 행복일까. 오늘같이 안개로 구름으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음이 좋을지도 모른다. 모르기에 꿈을 꾸고, 모르기에 내일에 희망을 품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벗님들과 이렇게 한나절 행복함이 좋고 희뿌연 내일에 희망을 건다. 안개가 최고의 찻잎을 키우듯이 오늘의 모호함이 내일의 태양을 잉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제의 안개를 가슴속에 새기련다.
차마고도를 오간 말의 말발굽에 역사의 수레바퀴 굴렀듯이 오늘 예당지의 안개는 향기롭고 쨍한 찻잎으로 자라나 몽롱한 세상을 일깨우는 각성제가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