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군대에서 투표하던 87년 이면 저는 2학년 때 였습니다. 당시 소수 정파인 헌법제정
민중회의파 였습니다. "선거 공간에서 분노한 대중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분출시켜라. 다만 후보
전술은 후보 단일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려운 이 때 20살 어린 청년은 이 전술대로 유세장마다 쫓아다녔습니다.
그 때 우리 구호가 "낙선 노태우! 처단 노태우! 쟁취하자 민중민주주의!" 였는데 내가 군중들
앞에서 "낙선 노태우!" 그러면 "처단 ! 노태우..." 이렇게 이어지는 구호는 우리 편 몇 명만 따라하고 수 백명 군중들은 "당선! 김대중" 또는 "당선 ! 김영삼" 이럽디다!
선거는 중요하되 후보는 중요한 게 아니다는 아주 고상한 전술을 따랐기 때문에 김대중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만 20살에는 몇 달 모자랐기 때문에 투표도 못해보고
구로구청 옥상까지 밀려 갔다가 꼬박 1년 옥살이 했었습니다.
그 때 부터 한 10년 동안은 저는 자랑스러운 현역 운동권이었고 김대중은 늘 민중의 기대에는
모자란 야당 정치인 일 뿐이었습니다.
95년 전신마비인 아내와 결혼을 하고서도 노동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던 나는 97년 여름 딸애가
태어나고 나서는 직장다니랴 집사람 챙기랴 딸애 보랴 형편이 안되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97년 대선 때 저는 권영길 후보 측 투표 참관인으로 당연히 권영길을 찍었습니다.
다만 정치에 관해서는 모든 결정을 제게 묻는 제 아내가 혹 이회창이 되면 안되지 않느냐는 말에는
"그럼 당신은 김대중 찍으면 되지."라고 했습니다.
이후 IMF 극복한다고 금모으기를 했을 때 몇 개 안되는 딸아이 돌반지 다 팔았습니다.
워낙 신한국당에서 정권을 헐 뜯으니까 반대로 국민의 정부에 대한 연민이 생깁디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랑 똑 같을 것이다. 김대중이 71년 대선에서 바로 대통령
되었더라면 지금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요구보다 더 나은 정치 , 확실한 진보 노선에 섰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못난 국민들이 70 고령이 넘어 아슬아슬하게 대통령 시켜주니 마음은 있어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싶었습니다. 마치 머리속에는 온갖 진보와 민중이 쌩쌩 돌아다니면서도
달랑 우리 한 가정 건사한다고 행동하지 못하는 나와 똑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연민이 들데요.
그리고 6.15 회담을 있었습니다. 나는 뭣 하나 그 보다 못한게 없는 고 문익환 목사님이
왜 그렇게 김대중을 예뻐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이 나라 모든 모순을 함축하고
있는 분단을 극복하는 정부차원에서는 실로 처음으로 통일운동 걸음을 떼었습니다.
나는 그 것만 봅니다. IMF 극복과 정부차원의 통일운동을 개척한 것 만 칩니다.
아들들이 부정했던지 언론에 굽실거렸던지 카드 대란을 몰고 왔던지 하는 것은 마치 내가
살면서 나 하나 살자고 우리 가정 건사하자고 때로는 노동자 파업에 무심했었던 것과 같이 봅니다.
문제는 김대중이 아니라 김대중을 들먹여 자신의 안일을 꽤하는 슨상교입니다.
이 것을 극복 못하면 호남은 망합니다. 다행히 김대중 자신이 나이가 많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그가 죽고 나면 슨상교는 끝이 나겠지요.
그런데 감자호크님! 안티슨상교면 슨상교만 반대하면 되지 않을 까요?
한국의 역사에서 김대중을 무시하고서 진보와 통일을 말 할 수는 없지 않나요?
혹시, 김대중 자체도 이제는 슨상교에서 떠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팔 순이 넘은 노인네에게 슨상교의 모든 병폐를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슨상교의 폐해는 박상천,정균환이(요즘은 정동영이도) 같은 개 잡것들에게 물어야
하지 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