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체결을 위한 2차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한미 양국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쉽지 않은 협상이 전개될 것이다. 각국의 내부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엇갈릴 것이 분명하다.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중에도 양국의 노동자들은 반대집회를 열고 있으며, 각기 다른 산업들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1. 우리정부가 서두르는 이유.
그동안 한미FTA는 가급적 뒤로 미루고 비교적 충격이 적은 대상국들과 먼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미 칠레와는 체결 및 국회비준을 마치고 시행결과에 대한 부분적인 평가가 나와 있기도하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한미FTA에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부가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지만 그런 이유는 결코 표면화할 수 없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만을 가지고 추진동기를 추론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정부가 다급해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미 정부 스스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통상교섭은 최종권한이 의회에 있다. 임시로 의회가 행정부에 신속협상권을 위임한 상태이다. 그 위임시한이 내년 상반기이고 시한연장이 안되는 사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시한내에 체결하지 못하면 각각의 주정부와 교섭을 하고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시한안에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미국의 공화당이 차기에 재집권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국제질서를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전쟁의 참화를 일으키는 부시와 네오콘의 공화당 정권이지만 통상교섭에 있어서는 민주당에 비하여 좀 덜 빡빡한 상대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자유무역에 대한 의지는 민주당이 훨씬 확고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화당의 경우 세계를 지배하는 대신 그것에 대한 비용으로 경제적으로는 민주당에 비하여 좀 더 유연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말하자면 차기에 민주당이 집권하고 나서 협상을 하면 더욱 우리가 불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지금도 미국의 공산품이 우리에게 큰 제동장치없이 들어오고 있다. 약간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산업을 지켜주는 역할은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바꿔 말하자면 공산품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크게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공산품이 미국에 수출되면서 부담하는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면 현지생산의 비중을 낮추고 국내투자와 고용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측면도 고려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개방인데 차라리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여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넷째, 우리경제가 이미 저성장과 저투자 및 높은 실업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을 수 없는 선진국형 모델로 변하고 있다는 다급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동북아 물류중심국가의 비젼은 여전히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녹록치 않아서 실현이 어렵고 금융허브론은 무역자유화의 정도나 선진기법이 유입되기 어려운 실정이니 장기적 경제비젼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을 한미FTA에 대한 역발상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일리없다고 일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서두르고 국민은 극도의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정부가 서두르는 이유도 타당하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나 그리 타당한 이유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으로 정부가 서두르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2. 세계화, 신자유주의, FTA
과거 모TV에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동물의 세계는 냉혹한 힘의논리가 형성되어 있다. 강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고 약자는 모든 것을 상실하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강자는 약자의 목숨을 빼앗고 잡아먹는 것이 동물세계의 질서이다. 먹이사슬에서 상위에 있는 동물에게는 더없이 합리성이 높은 자유경쟁의 세계이다. 약자에게는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목숨을 보존하기 바쁜 세계이기도하다.
약자들은 주로 무리를 지어서 살아간다. 여럿이 무리를 지으면 홀로 위기를 맞을 때보다 자신이 죽을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약자들의 무리지음은 강자에 대항해서 싸우는 데까지 발전하기는 어렵다. 사자같은 종류는 매우 강자에 속하는 동물이지만 무리를 지어서 사냥을 하고 협업을 하기 때문에 약자들의 무리지음이 대항력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서로 뭉쳐서 자신이 사냥감이 될 확률을 낮추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는 그런 약자들의 번식률이 높게 되어 있어서 항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자유무역협정은 바로 인간세계에 구현되는 동물의 왕국이다. 강자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시스템이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원망스러운 시스템이다. 동물처럼 처음부터 숙명으로 안고 태어난 것도 아닌 인간들이 그런 동물의 왕국에 내던져진 상황은 약자에게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무엇으로도 강자의 독식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모든 나라에 정부가 존재한다. 강자의 횡포를 적절한 수준으로 억제하고, 약자의 도태를 적절한 수준에서 방어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말하자면 강자를 주로 편들지만 너무 심한 독식에는 제동을 걸어주는 것이 바로 정부이다. 그래야 결국 최강자 하나만 살아남는 극단적인 사회로 변화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약자들이 자연을 은폐수단으로 연명하거나 번식률이 높아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세계화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논리, FTA의 논리는 정부의 기능을 최소한의 것으로 억제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인 것이다. 자유무역은 동물의 왕국에 가깝다. 보호무역이나 정부의 역할확대가 지나치면 사자는 사자끼리 사슴은 사슴끼리 따로 분리하고 철조망을 치는 일이 되고만다. 풀을 뜯는 사슴은 풀이 소진되면 죽고, 사자는 사냥감이 없으면 죽고만다. 결국 조화를 이루는 수준으로 적절한 개방과 적절한 보호가 정답인 것이다.
세계화를 추진하며 OECD에 가입하였던 문민정부는 우리경제를 파탄의 지경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 때 이미 잉태된 것이다. 중산층은 실직하고 몰락하여 서민이 되고, 그렇게 늘어난 서민들은 다시 자영업에서도 도태되어 파산하거나 노숙자가 돼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을 선택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취한 정책들도 고스란히 지금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고전적인 애덤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더욱 자유경쟁을 숭상한다. 애덤스미스는 가격을 보이지않는 손이라고 하였으나 윌슨에 의하여 주창된 신자유주의는 가격을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라고 할 정도로 경쟁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가격이라는 신의 손에 의하여 시장의 자유경쟁으로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의 의하면 신자유주의의 세상에서 정부는 불필요한 낭비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목숨도 가격에 의하여 거래될 것이라는 주장처럼 들린다. 동물의 왕국을 인간세계에 구현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국민의 정부하에서 서민들의 고통을 상기해보자.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그런 서민들의 고통을 낳는다.
FTA는 신자유주의를 바탕에 깔고 각국간의 경제적 국경을 허무는 일이다. WTO가 다자간의 협정에 의하여 자유무역의 질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라면 FTA는 쌍무적인 협정으로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의 규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자간의 협상이 약자들간의 담합에 의하여 균형을 이룰 수 측면이 약간 존재하는 반면에 쌍무협정은 강자의 의사가 관철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FTA의 충격과 후폭풍은 WTO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클 수 밖에 없다.
동물의 왕국이 잔인하다고 해서 각 동물의 울타리를 정해서 분리할 수도 없듯이 인간의 경제문제도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수는 없다. 매우 복잡한 요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개방을 점차 늘려 나가야 한다는 점까지 부정하고 쇄국정책을 사용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고립과 몰락을 잉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선에서 적절히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하여 깊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한미FTA협상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이다.
3. FTA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 구성원의 컨센서스.
쇄국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고립되어서 우리가 살 길은 없다. 그렇다고 강자들이 선호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질서에 그저 따라만 갈 수도 없다. 결국 FTA라는 대세를 거스리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추구하기에 앞서서 우리사회가 최소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국민다수가 일정한 수준의 공감대를 가져야 할 것이다.
대원칙은 간단하다. 약자들이 도태되는 것에 대하여 보호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 비용은 개방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방을 위해서 더욱 절실한 일이지만 국가의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하여 항상 작동되어야 한다.
국가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감대라는 것이다. 만일 사회적 약자들이 도태될 위기에 처하여 봉기를 일으킨다면 자본주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강자들이 약자를 조금씩 배려하면서 다독이는 일이 긴요하다. 하물며 경제적 국경을 허물어 강대국의 거대자본이 들어오는 경우는 훨씬 강력한 약자보호의 룰을 합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혜택을 보게될 대규모 제조기업들이 좀 더 많은 세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농민과 취약부문 노동자들은 손해의 전부를 보상받지 못하더라도 상당부분을 국가가 보전해 주기를 기대하는 선에서 공감대의 형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돼면 물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법인세등의 부담이 증가하면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조세부담이 낮은 곳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것은 곧 더 많은 실업과 약자들의 도태를 파생시키게 된다. 그런 종합적인 고려는 정부와 정치권이 이해조정력을 발휘해서 해결할 일이다. 다만 그런 조정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공정할 것이라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가장 기본적인 컨센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서민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구호를 대하는 대중의 반응은 아주 차갑기만하다. 오랜기간 반공이데올로기에 젖어서 좌파 빨갱이론이 어김없이 반격으로 날아오고만다.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그렇다. 서민들은 그동안 충실히 성장우선론을 따라서 자제하고 살아왔다. 그렇지만 부자들은 분배론이 거론되는 꼴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쉽게 공감이 되는 주장을 우리사회는 항상 일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미FTA가 우리의 전체적인 국민총소득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전제에 대하여 부정적인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가경제 전체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득이 많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경우에도 앞서 언급한 컨센서스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수익자는 수익의 일부를 기꺼이 사회를 위하여 내놓고, 정부는 피해를 입는 쪽에 그런 재원을 활용하여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대전제가 돼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바로 그런 컨센서스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피해를 입는 계층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득을 보는 계층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화, 신자유주의, 한미FTA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능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만을 모두 챙기고 발생하는 비용은 전혀 부담하지 않겠다는 기득권층의 논리에 피해자들이 동조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그런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서두를 입장에 있지 않다. 아직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으며,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다.
한미FTA는 늦출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 안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고 좀 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추진하는 것이 옳다. 김영삼의 세계화,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노무현의 한미FTA가 항상 병렬비교되는 불행한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