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전사회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1. 지나친 부의 양극화와 소득의 불균형이다. 20%의 소수가 80%의 부를 누리는 `20 대 80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부의 재분배 정책이 절실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신고자 중 상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1999년 5천800만원에서 2009년 9천만원으로 10년 새 55%나 늘어 대부분 억대 수입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하위 20% 소득자의 1인당 소득금액은 같은 기간 306만원에서 199만원으로 54% 급감했다. 10년간의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소득이 크게 줄었다. 월급쟁이의 양극화도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부의 양극화는 수출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 대기업의 영역 확장과 `골목 상권'으로 불리는 자영업자의 몰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소득의 양극화를 방치할 경우 사회적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구매력 약화로 인해 성장동력 자체를 상실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치해서는 결코 안 된다.
2. 정부와 기업의 투자 불균형이다. 국민혈세나 성장 동력이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정부를 운영해야 되는데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엉뚱한 곳에 투자하고 있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자본의 소비이다. 자본의 쓸데없는 소비는 돈을 내다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서민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의 1205개 세부 실천과제 중 완료로 분류했다. 대통령 선거 공약을 바탕으로 추진 중인 주요 국정과제 98.5%가 '완료' 또는 '정상추진'이라고 밝히고 있다. 거의 미쳤다.
3. 중산층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중산층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몰락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산층 가구비중은 2003년에 60.4%였다가 2005년 58.2%, 2007년 56.4%로 갈수록 감소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에는 55.5%로 떨어졌다. 2003년에 54%였던 중산층의 소득 비중도 2005년에는 52.3%, 2007년에 49.4%, 2009년에 48.1%로 줄어들었다. 대기업의 유통구조에 각 지역의 소상공인들이 무너져가고 있다. 정부가 그들을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영세 사업자의 소득이 줄고, 사업장이 줄도산하고 있다.
4. 소득과 이윤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대기업과 가진자들에 대한 감세 정책을 하다보니 국민과 기업의 일부만이 소득을 올리고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 대기업의 이윤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의 건강한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소비를 할만한 돈이 돌지 않는 것이다. 제자리 걸음인 임금에 실질 소득은 되레 줄어들었다. 체감경기는 살얼음 판이고, 물가 불안까지 겹쳐 웬만한 중산층은 버텨내기 힘든 상황이다.
5.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일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천만원씩 학자금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고 있다. 쓸데없는 고학년 위주의 사회가 그 근원이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는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87%가 대학을 진학하는 상황은 가정과 사회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실질 교육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다. 대학은 엄청난 돈을 쌓아 놓았다. 그게 다 누구의 돈인가? 분명한 것은 대학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수천억원씩 쌓아 놓고 있다. 상아탑을 돈으로 쌓으려나 보다.
6. OECD회원국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임기 여성 1인당 출산율이 1.19명에서 1.15명으로 더 떨어졌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지난 2001년 이후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일본의 출산율 보다 더 낮아지기 시작해 매년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육아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보육비 지원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어 "저출산 문제는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만큼 육아휴직제도 등 사회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7. 서민이 가진 부동산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그 규모는 한계에 도달했다. 삶의 기초단위인 소득과 주거가 불안하고, 전세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모두 거리로 나 앉을 판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다시 시골로 이사 가야 한다. 올해 상반기 수도권 전세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서울ㆍ경기지역의 전세가 총액이 연초에 비해 30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중산층은 치솟는 물가에 소득은 감소하고 폭락하는 자산가격에 고통을 겪고 있다.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은 겨우 면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 빈곤층과 견줘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8.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생활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식품비, 연료비의 증가를 따라갈 수가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뜻하는 국내 총소득(GDI)은 전분기보다 0.6% 감소했다. 국내총소득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8년 4분기(-0.6%) 이후 27개월만에 처음이다. 제자리걸음인 임금에 실질 소득은 되레 줄어드는데 체감경기는 살얼음판이고, 거기다 물가불안까지 겹쳐 웬만한 중산층은 버텨내기 힘든 상황이다.
9. 사람이 사는 공간이 서바이벌 현장으로 급격히 변했다. 강한자 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사람사는 세상에 적용된 것이다. 이것은 성공한 사람에게도 엄청난 부담이다. 실패자와 패배자에 대한 부활의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FTA(자유무역협정)등으로 얻은 기업과 산업의 이득은 그로부터 피해를 입은 쪽으로 이전해 주지 않았다. 서바이벌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상생의 세상으로 선회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10.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단위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검찰, 금융감독원, 감사원등의 감독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부정과 연루되어있거나 정치검찰화 되고 있다.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졌고, 정의는 불의에 감추어져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는 청산하지 않아, 비리는 전사회적인 현상이 되고 말았다. 가진 자들의 몰염치와 방탕, 감시 기구의 부도덕과 타락, 공직자들의 후안무치가 국가 사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이끌려면 부든, 명예든, 권력이든 힘을 가진 자의 솔선수범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고, 그의 사악한 진화는 계속 진행중이다.
11. 보수신문과 방송들은 진실과 사실보도를 하지 않고, 국민을 눈멀고 귀멀게 하고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누가 힘이 있고, 있을 것인가? 에만 관심이 있다. 잘못된 사회와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한진중공업은 170명 대량해고 후 주주들에 174억원 배당했다. 부도덕한 사회이다. 시장(경제)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한국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12. 이명박정부는 힘겨운 서민과 국민에 대한 특별한 생각과 대안과 정책이 없다. 동의하지 않는 치적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도 생각하고 있다”는 흉내만 낼 뿐이다. 이들에게는 국가를 경영할 만한 능력이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없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어떻게 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다. 국민이 원하는 직접적인 소통은 그 어디에도 없다.
대한민국이 꿈을 잃어 가고 있다. 국민들이 불안해서 살수가 없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물질적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실업과 빈곤, 질병, 재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시민들은 참고 견디면 좋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인내가 아니라,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멀지 않은 시기에 어쩌면,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들어 몇년간 삶은 고통스러웠고, 역사는 퇴보했다. 정치의 폭력성도 보았고, 우리사회의 근원적인 폭력성을 부추기는 자본의 잔혹함을 경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