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ㅣ권경률 기자] “밤마다 저 대신 축구공 세 개를 끌어안고 자요”

국회축구단 이영근(71) 총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 의원회관 127호의 문을 빼꼼히 열자 아내 최미란(53)씨가 부산스레 손님을 맞는다. ‘부인이 아니라 축구공과 자는 사람’, 그 말 속에 이 감독의 축구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국가대표, 감독, 대한축구협회 임원, 월드컵 조직위원 등 그의 개인사가 담겨있다.

오전 8시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이 감독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그는 이 차림으로 127호에서 업무를 보다가 의원실에서 지도요청이 오면 축구공 하나를 끼고 달려간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 시축행사가 있으면 전화를 해. 볼 멀리 차는 방법이 없냐고. 무슨 일이든 룰과 기본이 중요하잖아? 그럼 의원실에 올라가 스텝을 어떻게 밟고, 볼을 어떻게 다루는지 시범을 보여줘.”

그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인연이 깊다. 1959년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 대표로 뽑혔는데 여의도 비행장에서 쌍발기를 타고 말레이시아로 날아갔다. “당시 우리나라엔 잔디구장도, 야간경기도 없었어. 국군묘지에서 군용트럭 라이트를 켜고 딱 한 번 연습했지. 그런데 우리가 결승까지 올라가 말레이시아를 2:1로 꺾고 우승한 거야. 유니폼도 없어서 빌려 입고 나간 팀이 순전히 힘과 투지로 이긴 거지. 거기서 발 갖다 대면 우리는 머리 갖다 대고.”

1960년대 국가대표로 뛴 이 감독은 양지팀(현 국정원 축구팀) 주장, 외환은행 축구팀 감독을 거쳐 은행에서 근무를 한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주말마다 짬짬이 시간을 내 재경부 직원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것. 그가 내민 그 시절 사진 속엔 홍재형 국회부의장, 임창렬 전 경기지사, 강만수 산은회장의 얼굴이 또렷이 박혀 있다. 난다 긴다 하는 정치인, 행정가들이 다 그의 축구제자인 셈이다.

그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국회의원축구연맹은 축구를 통하여 여야 화합을 이루고 의원외교를 펼칠 목적으로 지난 1997년 설립됐다(사단법인 등록은 2003년). 연맹은 월드컵 공동개최에 발맞춰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는 양국을 오가며 그동안 모두 7차례 치러졌다.

또 국회의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 파주국가트레이닝센터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이 감독은 “파주트레이닝센터 덕분에 대표팀의 경기력이 크게 올라갔다”며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4강까지 간 건 그런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유소년축구와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빼먹지 않았다.

이 감독에게 축구는 화합의 스포츠다. 그래서 작년 12월 국회에서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주먹다짐을 벌였을 때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연맹 회원이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서 쫓아가보니 서로 미안해하고 있었다고. 지난 2008년 총선 때 동작에서 맞대결한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도 축구장에서는 호흡을 맞추는 동료였다.

“원래 축구인끼리는 다투는 법이 없어. 축구공은 항상 둥글단 말이야. 운동장에 나가서 함께 땀 흘리고 끌어안고 뒹굴다보면 묵은 감정도 싹 풀리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

그에게 넌지시 누구 축구실력이 가장 좋은지 물어봤다. 이 감독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사진을 일일이 가리켜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센터포워드는 최재성 의원, 레프트윙은 김학용 의원, 라이트윙은 조해진 의원, 미드필더는 조승수 의원, 스위퍼는 박민식 의원, 골키퍼는 권영세 의원이 거론됐다. 대체로 후한 점수였다.

현재는 회원이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선수도 궁금했다. 이 감독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첫 손에 꼽았다. “어느 날 유시민 의원이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왔더라고. 처음이고 하니까 내가 풀백을 시켰어. 그랬더니 오버래핑을 하고 나가서 센터링을 올리는 거야. 전반이 끝나니까 나한테 와서 그래. 옛날 독일 있을 때 주말마다 원정 다니며 축구를 했다고. 그 다음엔 라이트윙 시켰지. 오버헤드킥도 하고 아무튼 깜짝 놀랐어.”

이 감독은 인터뷰 하는 내내 축구공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틈만 나면 몸을 움직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 그에게 필생의 과업이 있다면 벤 승합차를 몰고 팔도를 누비며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전수하는 것이다. 고 김용식 선생으로부터 축구 묘기를 물려받은 그는 강성민(48), 우희용(47), 허남진(44) 등 프리스타일(묘기) 축구의 실력자들을 길러낸 바 있다.

<사진=배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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