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판 솔로몬의 재판
한 집에 두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창녀였다. 두 여자는 비슷한 시기에 각기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둘 중 한 여자가 잠을 자다 무심결에 아들을 깔아 뭉개 죽여 버렸다.
한 밤중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의 아기가 죽어버린 사실을 깨달은 그 여자는 아무도 몰래 또 다른 한 여자의 아들과 바꿔 놓았다.
아들을 바꿔치기 당한 여자가 아침에 젖을 먹이려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죽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자기 품에 안긴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니었다.
아들을 잃어버린 여자는 또 다른 여자가 품에 안은 아이가 진짜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고 그 여자가 바꿔치기 하였음을 금새 알아 차렸다. 아들을 잃어버린 여자는 당장 그 여자를 향해 자신의 아들을 돌려 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꿔치기 한 그 여자가 아이를 돌려줄리 만무했다. 두 여자는 다투기 시작했다.
결국 두 여자는 왕 앞에서 판결을 구하기로 합의했다. 왕 앞으로 나온 두 여자는 누가 이 아이의 진짜 어머니인지 판결해 달라고 간구했다. 하지만 산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한결 유리한 입장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여자는 만일 산 아이가 자신의 진짜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들을 잃어버린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웠다.
왕이 판결을 내렸다.
“칼을 가져와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훔친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는 잠시 동안이었지만 자기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이 아이를 자신이 키울걸 생각하니 앞날이 깜깜해 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저 여자의 아이라고 고백했다.
한편 아들을 잃어버린 여자도, 본인이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어미로써 보호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그 여자에게 아이를 주라고 답변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왕의 판결에 의해 결국 칼로 나누어지고야 말았다. 이미 나누어진 아이는 어떤 여자의 아들도 되지 못했다.
아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
여러분들은 2007년판 솔로몬의 재판을 읽어 보시면서 엉뚱하게 묘사한 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엉뚱한 부분은 왕의 판결에 두 여자가 아들을 서로 양보하는 마지막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는 괜한 자격지심에 한번도 정치공학적인 분석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서프의 예리한 논객되신 내과의사님의 글에 대한 반론을 제기 하려니, 부득이 비유를 통한 정치공학적인 분석을 할 수 밖에 없으니 널리 이해를 구한다. 한편으로는 난해한 정치공학적인 분석을 비유를 통해 말하는 것이니 이해하기는 한결 쉬울 것이다.
참여정부.
열 달 동안 자신의 뱃 속에서 길렀고, 산고의 진통을 겪은 뒤에서야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들을 낳은 여자가 두 명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 집에 살았던 그 두 여자는 이 아들을 모두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심하고 다투고 있다.
그 두 여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잘 알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개혁국민정당과 민주당이 모태다. 열린우리당이라는 한 집에 살았던 두 당은 현재 열린우리당과 탈당한 통합신당으로 양분 되어 버렸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한 통합신당의 다툼은 아무래도 국민 앞에 판결을 구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만 같다.
국민의 판결 앞에 선 두 여인
통합신당이 탈당하기 이전에 열린우리당에서 참여정부라는 아들을 멋지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었겠는가? 그들 모두가 아들을 갖기 위해 함께 노력과 힘을 기울였고, 산고의 고통도 함께 겪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에 있을때 탈당한 통합신당측들은 무심결인지, 의도적인지 참여정부라는 아들을 깔아 뭉개 버렸다. 그래 놓구선 뛰쳐 나가서 누가 진짜 참여정부를 만든 평화민주개혁세력인지 국민 앞에 판결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릴 것이다.
“칼을 가져와 그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자! 이렇게 되면 2002년, 후단협과의 단일화 문제에 직면한 노무현 후보의 모습이 생각날 것이다.
‘내 아들임을 주장해서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 둘 것이냐! 아니면 타협을 통해 아들을 양보함으로 아이를 살릴 것이냐!’
결론은 다들 아시다시피 노무현 후보는 타협을 통해 아이를 살려 놓는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노무현 후보가 살리고 싶은 아들은 후단협이 생각하는 그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말하고 싶다.
살리고 싶은 아들은 서로 다르다
2007년 솔로몬의 재판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재판관 앞에 선 두 여인은 아들을 서로 양보한다. 결론은 두 여자가 모두 보는 앞에서 아이는 칼로 나뉘어져 어느 여자의 아들도 되지 못한다. 이 비유를 한 것은 국민 앞에 판결을 구하려는 열린우리당과 탈당한 통합신당측이 살리고 싶은 아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탈당한 통합신당측은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을 열리우리당 사수파로 엮어 놓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자신들이 얻고 싶은 아들은 2008년 총선에서의 국회의원 자리다. 정권재창출은 사실상 그들에겐 옵션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낳은 아들이지만 참여정부의 공과, 자산과 부채를 열린우리당 사수파, 너희들에게 양보한다는 것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이 살리고 싶은 아들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 곧, 참여민주주의다. 나아가 참여민주정치를 통한 정당개혁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은 참여민주정치를 통한 정당개혁을 할 수 있는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탈당한 통합신당과 대통합을 양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양보하면서 대통합이라는 묘미를 이루어 내면, 국민들이 감동하여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냄으로 정권을 재창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통합을 시도하다가는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대통합이 이루어지기도 어렵거니와, 만일 대통합의 모양새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정권재창출이나,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은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국민이 살려낼 아들 - 참여민주주의
나는 2002년 후보 단일화 시점에서 노무현 후보가 살리고 싶었던 아들은 참여민주주의라고 여긴다. 노사모를 통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를 체험한 노무현 후보는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 합의 시점에서 너무나도 불리한 여건 가운데서도 참여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을 믿었다고 여긴다.
내과의사님이 말한 것처럼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와 일관되게 상통하는 ‘이주일 고스톱’이라는 거래자세에 국민이 공감을 하고 감동을 먹어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 준 것은 아니다. 노무현 후보가 정치적 고수라서 아무도 쉽게 보여줄 수 없는 내공을 그 당시 발휘했다고 추측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보 노무현’은 다만 노사모, 즉 참여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믿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그러한 대의는 2007년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선출된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발언은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고, 나아가 참여민주정치를 통한 정당개혁을 이루기를 여전히 소망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시대정신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최근 이해찬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앞으로의 정치권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가 된다. 인물도 좋고, 정책도 좋다. 그러나 지역주의와 대세론에 치우쳐 편승된 여론의 벽을 깨뜨릴 바람은 아직 불지 않고 있다. 딴나라당의 여론이 언론의 부채질에 의한 것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선간위의 간섭까지 생각하니 간혹 불안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님의 시대정신, 곧 참여민주정치의 대의를 이을 자가 있다. 그가 누구인가? 인위적으로 일으킨 바람이 결코 자연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능가 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는 결코 태풍을 만들어낼 수 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금까지 국민들은 살려 내었고, 앞으로도 살려 낼 것이다. 결국 정도를 가는 것이 사는 길이다. 참여민주주의의 깃발을 높이 드는 후보가 결국 승리할 것이다.
※ 이 글은 서프라이즈 내과의사님의 글 '진짜 어머니'가 되라.(바로가기)에 대한 반론글입니다. - 편집자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