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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조정래, 그가 전향한 걸까?
푸른 바위 | 2006-07-06 21:59:39 | 조회 843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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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동안의 사색의 주제를 얻기 위해 잠시 짬을 내어 서점엘 들렸다가 조정래 선생의 신간이 놓여 있는 진열대 앞에 멈춰 섰다. <인간 연습>이란 제목과 그 책의 볼륨을 보는 순간 정말 조정래 선생의 소설이 맞는가 싶었다. 그의 소설이라면 당연히 1권부터 몇 권까지 번호가 붙는 대하소설이어야 한다는 우리네 통념 때문인지 조정래와 그 책은 매우 낯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그렇듯 대부분의 독자들은 조정래 선생의 차기 작품으로는 민주화와 그 이후의 한국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아리랑으로부터 시작해 태백산맥과 한강으로 이어지는 그의 소설 산맥은 20세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소설에 옮겨 놓았다. 그의 소설에는 우리 민족의 겪었던 최근의 삶과 역사가 담겨져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소설가 자신의 삶과 역사 및 그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삶과 역사를 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20년 동안 그토록 조정래의 문학에 심취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서 또 다른 삶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80년대 후반에 민주화가 되고, 그 후 경제적 위기를 지나오면서 바뀌어진 가치관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고민과 갈등을 되 집고, 그것으로부터 미래의 삶을 전망하게 해 주는 그런 소설을 기대했다. 그것이 인간 조정래의 마지막 소설 산맥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 본 <인간 연습>은 순간 초라해 보였다. 마치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화랑에서 르네상스로부터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이끌어 온 대작들을 보다가 복도 한 구석에 놓여져 있는 작은 소품을 볼 때의 시시함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 이런 나의 자문(自問)은 이 책은 어쩌면 조정래의 소설 산맥의 한 줄기에서 잠시 쉬어가도록 놓여 진 구릉쯤으로 여기고자 하는 나의 선입견의 결과였다. 그러나 몇 년 전인가 그런 선입견을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의 오만한(?) 사유가 무너졌다. 그 때도 나는 이 서점에 서 있었다. 오랜 만에 황석영의 신간이 나왔던 때였었다. 그의 소설 <손님>을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을 그의 소품쯤으로 생각했었다. 그 때도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장길산>이라는 대하소설 앞에서 <손님>은 정말 시시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한 참을 망설이다가 시간도 좀 넉넉하고 해서 난 대충 살펴볼 요량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난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 책을 다 읽어 버렸다. 분단의 아픔이라는 우리 민족의 운명과도 같은 경험을 다룸으로써 황석영은 그 작은 소설 한 권으로 장길산만큼이나 깊고도 넓은 사유의 세계를 쓰고 있었다. 그 해 난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지인들에게 연말연시 선물로 주었다.


그 때처럼 난 <인간연습>을 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장기전향수 박동건의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해 나이만큼이나 무거운 이념의 무게에 짓눌려 삶의 가치를 상실한 윤혁의 모습은 지금까지 조정래가 추구해 온 전형적인 이념형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평생의 화두를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그였기에 윤혁과 같은 인물은 매우 전형적인 조정래의 인물상이었다. 아니 그런 인물들은 모두 어쩌면 작가의 한 분신인지도 모른다.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빚어낸 비극을 그려낸 <태백산맥>에서의  김범우, 그리고 <한강>의 유일민 형제...이들의 삶 속에서 작가의 삶과 사상이 오버랩 되듯이 윤혁 또한 작가의 한 분신처럼 떠도는 그의 사상 세계의 편린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삶의 역사를 소품처럼 스케치한 것일까?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현실적 가치가 무너진 황폐한 세계 위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아이들과 정을 나누면서 윤혁의 삶은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던 경희, 기준 남매를 구해주고 그들과 더불어 정을 느끼면서 윤혁은 사회가 이데올로기의 전장이 아닌 인간이 정을 나누며 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행간을 음미하면서 난 이것이 소설의 흐름이기 이전에 작가의 깨달음이라는 사실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 그는 거듭나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몰락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본질의 몰락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윤혁은 자신과 그의 동지인 박동건의 몰락의 이유를 알게 된다. 그건 지극히 이념형 인간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이념형 인간은 그 이념의 본질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고 인간 위에 이념을 두는 어리석음을 범해 왔던 것이다. 결국 인간을 황폐케 하는 이념이 어찌 인간 위에 설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인간과 그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이념의 차선성을 발견한 윤혁은 그의 동지들처럼 몰락해가는 대신에 이념형 인간으로부터 거듭나기를 시도하게 된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윤혁은 사회주의가 그렇게 꿈꿔왔던 인류의 희망이 어디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난 작가에게 수 없이 되물었다. ‘이것을 작가 조정래의 거듭남으로 이해해되 되겠느냐고?’ 그렇다. 작가는 거듭난 것이 틀림없다. 한 평생을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씨름하던 작가는 이제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이 앞선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이념형 인간으로부터 참된 휴머니스트로의 전향(거듭나기)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인류의 미래요 희망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모든 독자들이 자기처럼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연습하기를 호소하고 있다. 그 자신이 이념적 객체로부터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하면서 인류의 희망을 찾았음을 고백하면서, 작가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연습에 미래 희망이 있음을 설교하고 있다. 그는 드디어 정치적 인간에서 종교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삶의 또 다른 화두를 인간, 즉 ‘호모 필로시스’(Homo Philosis, 사랑하는 인간)에서 해결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구도자의 길에 당당히 서게 된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덮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결국 조정래는 그렇게 거듭난 인간으로 니르바나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나의 처음 이미지처럼 이 책은 그저 그의 소설산맥에서 작은 구릉일 뿐이고, 우리의 이전 기대대로 그는 마지막 대하소설을 집필하기 위해서 또 다시 삶과 역사의 현장에서 몸부림칠 것인가? 지금 소설을 읽고 난 느낌으로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무의미해 보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념형 인간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듭났기 때문에 이제 그는 더 이상 민족이나 이념, 정치나 경제와 같은 담론으로 인간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 같기에 또 다른 대하소설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평범한 독자로서 이 점이 좀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 연습이라는 더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는 화두를 던져준 그의 거듭남은 숭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그 깨우침의 임펙트는 이전의 그의 모든 업적을 접어두고서도 가치를 충분히 입증 받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그의 소설 <인간연습>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도 그와 같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연습을 또 해야 할 것 같다. 인터넷으로 몇 권 사서 지인들에게 또 나눠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서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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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기  

음...역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이념을 우선한다는... 깨달음.. 거듭나기..

푸른바위님 감사합니다.^^
06-07-07

시민폐인  

결국 이념형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의 구조적 원죄는 그대로인데 그걸 잊으려면, 아니 극복하려면 구도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거군요.
이념형 인간에서 참된 휴머니스트로 전향이라...
이념은 인류의 희망을 그 방향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도구의 하나였을 뿐인데...
06-07-07

해당화  

앗~!
푸른바위님이시다.
안녕하세요?

방학하면 자주 오세요.^^

멋진 이미지도 만드시구요 ^^
0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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