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무수히 등장하는 부족사회와 봉건사회 그리고 왕조들은 대부분 참략을 받기도 하고 침략을 자행하기도 하면서 발전하거나 소멸하였다. 최근의 세계사에는 민주공화국이 대세지만 여전히 국가간의 전쟁과 다른 쟁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단 한번도 외적과의 쟁투를 경험하지 않은 사회가 존재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으나, 존재한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원시적 부족국가와 제법 체계를 갖춘 왕조들이 명멸해 왔으며 쉬임없이 외세와의 쟁투를 극복하며 우리의 역사를 개척해왔다. 물론 지금은 민주공화국을 수립하여 다양한 쟁투를 벌여나가며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쟁투의 끝자락에서는 항상 내부의 배신세력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 필요한 응징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차후에 분명한 경계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교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일제의 침탈기에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협력하던 자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도 떵떵거리고 잘사는 현상은 매우 좋지않은 깨달음을 후손에게 남기고 말 것이다. 다음에 강대국의 침탈을 다시 받는다면 외세에 빌붙거나 협력하여 이득을 얻는 것이 유리하다는 가르침이 될 수 있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대대손손 가난을 물려주는 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정치에도 이런 논리를 차용한 철저한 응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리는 동일하다. 반칙을 사용해서 이익을 누리고 불리할 때는 자기편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는 정치인들을 응징하지 않으면 영원히 책임정치는 발붙일 수 없게될 것이다. 항상 내부의 적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응징하는 것이 고품질의 정치를 향유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누가 지역주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의 단물을 빨아먹고 사는 정치인인지, 누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사실은 민주적 원리에 위배되는 협잡을 꾸미는지, 누가 상향식 정치를 자랑하면서 사실은 그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지, 누가 독재의 향수를 간직한 채로 민주주의를 입에 담고 있는지, 누가 국민의 참여를 신성하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국민의 참여만을 바라는지, 누가 스스로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책임지지 않는지, 모두 정확히 기억해 두어야한다.
그렇게 기억해 두었다가 표로 응징하는 길만이 민주주의도, 국민통합도, 더 나은 미래국운도 개척하는 길이다. 누가 진실로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추구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누가 진실로 반칙을 사용하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신봉자인지를 가려내야한다.
잘못에 대한 응징도 잊고, 옳은 것에 대한 보상도 하지않는 국민은 좋은 정치를 향유할 자격이 없다. 누가 옳은가와 누가 나쁜 정치인인가를 가리는 기준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가 아니면 자주 말을 바꿔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는가를 보면 된다. 정도를 가지 않은 정치인은 항상 일관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것 하나로 모든 정치인을 가려낼 기준은 되지 못하지만 이것이 아마 최소한의 분별은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옳다고 했던 것을 갑자기 부정하고 비판하는가 아닌가, 이당저당을 기웃거리는가, 특정한 사안을 놓고 찬성과 반대를 왔다갔다 하는가 아닌가를 놓고 보면 의외로 간단히 분류가 가능하다. 그렇게 분류하고 잊지않고 투표에 반영하는 유권자가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이며 주인이다. 그저 망각하고 지역주의에 기대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정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