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87년 6월 10일, 대학캠퍼스
밤새 마신 막걸리 때문에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아침 1교시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등교한다.
교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신입생인 나에게는 그동안 여러번 경험한 그 분위기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1교시 수업은 이미 물건너 가고 학과별로 무리를 지어서 단과대학 광장에 집결하기 시작한다.
공대앞에 모인 학생수만 어림잡아도 4천여명.
단과대학 깃발을 들고 앞에서 안내하는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서 중앙도서관 앞에 집결한다.
모든 단과대학이 한 곳에 집결하니 족히 1만은 넘는다.
낮익은 선배들과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역력하다.
자유와 자주와 통일에 대한 선배들의 열정속에서 6월 항쟁의 대의는 전선을 덮었다.
그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투쟁의 정당성이 6월 항쟁의 대세를 만들었다.
그렇게 스무날을 하루같이 푸른하늘에 깃발 높이 들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쳐댔다.
6월 29일 마침내 철옹성처럼 견고하던 군부독재의 사술이 열사들의 피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처음으로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린다.
87년 6월 수많은 열사들의 피로 이루어낸 승리였지만 그 자부심과 자신감은 오랜 추억이 되었다.
Scene 2. 2000년 6월 6일, 대전 PC 방
2000년 4월 지역주의와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어느 바보를 위해서 "인사모", "안티조선우리모두"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이 뭉친다. 대한민국 정치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미련한(?) 바보 노무현을 살려야 한다고.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사에 반드시 필요한 정치인 노무현을 이렇듯 허망하게 보낼 수 없다는 간절함에 산소마스크라도 씌워서 목숨만은 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노사모가 제안되고 임시 싸이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네티즌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침내 2000년 6월 6일, 대전 한남대학교 앞 PC방에 전국 방방곡곡의 네티즌들이 집결한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 창립식을 위해서다.
모임을 준비하고 당일 행사기획부터 내용을 채우는 일까지 모두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필요한 경비는 회원들의 십시일반 회비와 특별히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회비로 운영된다.
대전까지 차비는 각자부담이고 오히려 하나라도 더 준비하기 위해서 혈안이다.
바보는 바보들만 알아보는 것인가?
낮익은 얼굴들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은 온라인에서만 만난 정겨운 아이디들.
그들의 열정과 결연한 참여 속에서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사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의지는 빈사상태의 노무현을 기필코 다시 살려내겠다는 기세였으며 지역주의를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그들의 대의는 하늘을 뚫고 그들의 대세는 대한민국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2002년 12월 19일 그들은 마침내 바보가 승리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지역주의에 부서진 바보 노무현의 꿈은 그들의 꿈이 되어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땀흘린 사람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2000년 6월 네티즌에 의해서 시작된 그 지난한 싸움이 2002년 12월 마침내 끝나고 그 승리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아직도 유쾌한 추억이다.
Scene 3. 2007 6월 9일, 서울 여성플라자
이른아침 서울을 향한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옷장을 열어서 핑크빛 라운드 셔츠를 찾아보지만 라운드는 없다.
대신 빛바랜 핑크빛 폴라셔츠를 꺼내 들고 슬며시 미소짓는다.
12시 30분이 조금 지나서 대전역에 도착하니 오상고절님, 빤짝이님, 아엔데님이 먼저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신다. 티켓팅을 하고 대합실에서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서울역에서 대방동으로 대방동에서 여성플라자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여성플라자 입구에 들어서니 낮익은 얼굴들과 낮익은 아니디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오랜시간 함께한 분들도 더러있다. "안티조선우리모두-노사모-개혁당-참정연-열린우리당", 내가 지나온 여정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만났던 분들도 있고, 더러는 한두 곳에서 만난 아이디들도 보인다. 서울에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잠시 동안 떠 올렸던 6월의 투쟁과 승리의 경험이 여전히 나를 행복하게 한다. 2007년 6월 역시 반드시 새로운 승리의 추억이 되리라 확신하면서..
창립대회 회원들의 분위기는 참 으로 유쾌하다.
200명이 넘는 불온한 자유주의자들이 모였으니 당연할 수 밖에.
그들의 눈에는 투쟁에 대한 의지보다는 더 즐거움을 탐닉하기 위한 열정이 넘친다.
즐겁게 싸우는 사람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007년 6월도 또 그렇게 새로운 추억을 향해서 시작되었다.
상큼 발랄한 즐거움의 향연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엔돌핀이 솟는다.
승리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2007년 12월을 여전히 유쾌한 6월의 추억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