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개마고원
[생각의 감옥으로부터의 해방]
<이 땅에서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식인이 거의 없었고 지금도 그런 편이다.
여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자'와 거의 비슷한 뜻을 가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심각하게 오용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었다. 해방후 반세기 동안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칭한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자유민주주의가 들어가는 이름을 내건 단체도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는 사실 '반공주의'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그들이 실제로 한 일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상과 견해를 말살하는 극우적, 파쇼적 만행이었다.
이것은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모두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칭송하면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국민의 참정권을 몰수한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잘 쓰는 관변단체들도 민간단체의 가면을 쓰고 독재권력에 협조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짜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공개적으로 자유주의자를 자처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파시스트와 한 패거리라는 오해를 받기 알맞다. 자유주의자는 사상과 견해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서로 다른 사상이 병존하는 가운데 상호 비판과 토론을 통해서 '진리' 또는 '올바른 인식'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회를 하나의 지배적인 사상에 복속시키려는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특히 법률과 폭력을 동원해서 국민에게 특정한 사상과 견해를 강요하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저항과 불복종으로 맞선다. 그러면 국가권력은 그들을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좌익분자' '급진세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가두고, 추방하고, 박해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자기가 자유주의자라고 항변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지식인이 드물었던 첫번째 이유다.
어떤 독일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리버럴한(liberal) 건 좋다.
하지만 리버럴리즘(liberalism)은 개떡이다. 민족적인 (national) 건 환영한다.
그러나 민족주의(nationalism)는 밥맛이다. 매사를 사회적인 (social) 관점에서 보는 건 좋다.
그렇지만 사회주의(socialim)는 사양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친구는 자유주의자(liberal
또는 liberalist)임에 분명한데도 본인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것을 굳이 거부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물론 내게 있었다. 내가 자유주의를 오해하고 있었던것이다.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환경주의자, 자유주의자, 그리고 보수주의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의 존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적 태도는 모든 '주의자'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갖추지 못한 세력은 '극좌'와 '극우'로 분류된다.
1968년 유럽 학생운동의 극좌파를 계승한 '적군파'와 '혁명소조'는 이 기본이 없는 '극좌'다 .
공화당이나 국민전선 따위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 우익정당들도 기본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극우'로 분류된다. 좌파의 모든 '주의자'들은 극좌와의 연대를 거부한다.
우파의 모든 '주의자'들도 극우와의 제휴를 거부한다.
분할될 수 없는 자유
명시적으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특히 경제정책과 관련해 국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국민의 참정권과
선거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문학과 예술에 대한 검열의 철폐, 종합적으로 말해서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을 옹호하는,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은 자유주의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가치는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정상적인 주의자'라면 누구나 옹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독일 친구를 자유주의자라고 오해한 것은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개인의 해방과 정치적 자유를 이미 달성한 오늘날의 유럽 사회에서
자유주의는 '시장은 선이고 국가는 악'이라고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그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를 의미한다. 만약 자유주의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똘마니들을 모아놓고 100% 가까운 찬성표를 받아 대통령이 된 독재자들이 국민들에게 야만적, 파쇼적 폭력을 행사한 지난 시대 한국 사회에서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인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
사람들이 자유주의자를 자칭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만약 자유주의가 독재 권력과 싸우는 사상적 무기가 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사회주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을 내면화한 진짜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전투적 자유주의자들까지도 스스로를 좌파, 진보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라고 믿거나 자유주의자를 자처하기를 거부했다.
이러니 극우 파시스트들이 '사회주의자가 넘쳐나는 세태'에 울분을 토하면서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를 외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은 아직도 개인의 해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하여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법률적 제약이 상존하고 있으며,
공익과 미풍양속의 이름으로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진다. 그리고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면서 발언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조직과 집단을 등에
업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언행이 일치하는 자유주의자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유주의자를 자처해온 사람들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을 해방하고 자유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일은 외면한 채 기업인들의 이익과 영업의 자유를
넓히는 일에만 골몰해온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칫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다가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믿는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재벌 앞잡이와 한 패거리'라는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유주의자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첫째, 나는 시장 경제가 고도 분업사회와 조화될 수 있는 유일한 경제적 기본 질서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목격했던 중앙 통제식 계획경제는 자체의 비효율과 낭비 때문에
이미 무너졌으며 다시는 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경제 역시 예외가 될수 없다.
둘째, 나는 시장경제와 조화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시스템은 다당제와 보통선거를 기본 요소로
하는 의회민주주의 밖에 없다고 믿는다. 시장경제는 소비자와 생산자 등 개별 경제주체들이
시장을 통해서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고, 조정하는 분권적 시스템이다. 시장경제를 경제적 기본
질서로 채택하는 한 분권적 시스템인 의회민주주의 말고 다른 친화적 정치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나는 자유는 분할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진짜 자유주의자는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해 싸운다.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면서 정치적.문화적
자유를 억합하는 체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모두 이런 관점에서 쓴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며 집단의 위세 앞에
주눅들지 않는다.
술자리의 안주감으로 씹히고 괘씸죄에 걸려도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시대든 신조를 지키는 데는 언제나 비용이 따른 법 아니겠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