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경험이 많으니 통합에도, 대선승리에도 도움이 될 거다. 제가 많이 기대겠다."(정세균 의장)

"제가 원래 글쓰는 사람이니 참여정부가 해온 일, 해야할 일,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 정리해서 책을 낼 생각이다. 국회에는 나오겠지만 당에 잘 안 보여도 야단치지 말아달라.

22일 오후 이임식을 끝으로 복지부 장관직을 떠난 유시민 의원은 곧바로 국회로 이동해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과 장영달 원내대표에게 복귀인사를 했다.

정 의장이 통합작업에 도움이 돼 달라고 요청하자, 유 의원은 "전당대회 결의도 있었으니 소명을 받은 지도부가 잘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면서도 "당분간은 책 쓰는 데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 원내대표에게도 "(통합작업에) 제가 끼면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날 "책 쓰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열린우리당 상당수가 유 의원의 복귀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활동을 자제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의식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장 원내대표가 "유 의원은 별 노력을 안 해도 인지도가 높고, 나는 노력을 많이 해도 그렇지 않은데 그 비결을 알려달라"고 말하자 "악명으로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안 유명한 게 낫다"고 답했다.

유 의원은 이어 "사실이야 어떻든 미디어를 통해 비쳐진 제 모습은 제가 신문을 봐도 인간성이 못된 사람으로 보인다"면서 "많이 알려지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유 의원은 특유의 결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유 의원은 "처신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 "저도 소통에 어려움이 있지만, 제 소망은 당당해졌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우리가 국민 앞에 오만하고 나태하면 안 되겠지만, 겸손함과 비굴함이 혼동되면 안 된다"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최선 다 한다는 당당함, 의석 줄었지만 옛날보다 더 당당한, 겸손하지만 당당하다면 국민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의장과 유 의원의 대화 요약.

▲ 복지부장관직에서 물러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22일 오후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을 찾아와 당 복귀인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세균 의장: 수고 많으셨다.

유시민 의원: 의장님 오랜만입니다.

정세균: 성과 많이 냈다. 가장 크게 하려고 한 일(국민연금법 처리)을 당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유시민: 아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래도 될 일은 꼭 되지 않겠나.

정세균: 그래도 지금 합의가 된 상태니까, 90%는 된 것으로 생각해라.

유시민: 의장님이 같이 내각에 있을 때도 많이 보살펴주셨고, 당에 오셔서도 힘든 일 하는데 보탬도 안 되고 송구스럽다.

정세균: 도와주러 오신 거 아닌가.

유시민: 전당대회 결의도 있었으니, 소명받으신 지도부가 하는 일 잘 되도록 그렇게 하겠다.

정세균: 전당대회 때 대통합 책임을 맡았는데, 제가 부족해서 성과가 없다. 전략적으로 많은 경험이 있으니 유 의원이 힘을 보태면 통합작업도 성사되고, 대선승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가 많이 기댈테니 많이 도와달라.

유시민: 그러겠다. 허허허. 그런데 제가 자꾸 나타나면 원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오해가 많다. 내각에 있으면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국민들께 오해받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제가 직접 당에 도움이 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원래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 참여정부가 해온 일, 해야 할 일, 어느 당이 집권하든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에 대해 정리할 생각이다.

당분간은 그런 일 하는 게 당에 도움이 되고, 국무위원 지낸 공직자로서 국민께 마무리하는 도리같다. 저 혼자서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을 집중하겠다. 국회에는 나오겠지만 당에는 잘 안 보여도 야단치지 말아달라.

정세균: 필력이 대단하시니 잘 해서 책 내시면 당에도 도움이 되고 베스트셀러 돼서 인세 많이 받으면 당비도 많이 내달라.

유시민: 원래 필력이 시원찮았는데,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글을 안 써봐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문병호 의원: 중간에 책 내용이 나와서 신문에 나는 것 아닌가.

유시민: 그렇지 않다. 보안유지 잘 해, 책 내서 아내에게 생활비 줘야 한다.

정세균: MBC 토론 사회자 했을 때도 참 잘했었다. 그길로 계속 갔었어도 톱 클래스였을 거다.

유시민: 그랬으면 해피했는데 대통령님과 잘못 얽혀서 이 분야로 오는 바람에 여기까지 와서 사는 건 고달프다.

"못 되게 나오지 않은 사진으로 걸어달라"

이에 앞서 유 의원은 이날 오후 4시 과천 복지부 청사 대회의실에서 이임식을 열었다.

유 의원은 이날 이임사에서 "과천 오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기에 저는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 '장관시키길 잘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 숨 가쁘게,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 개혁은 확실하게 매듭짓지는 못했으나, 6월 임시국회에서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길 기대한다"면서 "저도 밖에서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한미FTA와 관련해서 "우리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국가적 의사결정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저도 복지부 장관으로서 그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에 대해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복지부 직원들과 사진을 찍은 뒤, 대회의실 뒤쪽 벽에 붙어있는 역대 장관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 사진도 저기에 붙는 거냐"면서 "(그 때) 그 점잖게 나온 사진 붙여줘, 덜 못되게 나왔더라"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 22일 오후 과천 보건복지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치고 나오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벽에 걸린 역대 장관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내 사진도 저기 걸리겠지', '못되게 보이지 않는 사진을 걸어달라'고 얘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