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 제약과 남는 쌀 문제(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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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희소성'을 전제한 학문이다. 대중적인 경제원서인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학(economics)이란 사회가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쓰는 자원은 대부분 희소하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부족함을 느끼지않고 원하는대로 자동차, 벽걸이 TV, 최신식 에어콘 등을 공급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자원이 희소한 것은 아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공기의 경우, 어느 누구도
희소성의 제약을 느끼며 살고 있지는 않다. 누구나 필요한만큼 마음껏 공기를 들이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희소성의 제약이 없는 자원을 '자유재'(free goods)라고
한다. 이런 자원의 경우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사회주의적으로,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자원 가운데에는 본래 희소하지 않았으나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희소해진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깨끗한 물이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깨끗한 물을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이 아주 깨끗해서
희소하지 않았을 때에는, 깨끗한 물을 파는 행위가 '봉이 김선달'이나 하는 황당한 일로
여겨졌음직하다. 그러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이제 깨끗한 물은 희소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시냇물은 말할것도 없고 수돗물도 그냥 마시기 찜찜한게 사실이다.
반대로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고도의 생산성 향상에 힘입어 희소성 제약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자원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쌀이다. 1950, 60년대 보릿고개에는 쌀의
희소성이 아주 높았다. 강제로 통일벼를 심게하고, 도시락에 잡곡을 섞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 당시에는 심지어 굶어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쌀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우리나라의 쌀 재고는 4년 뒤 400만 석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남는 쌀을 보관한 창고가 포화상태라, 정부는 어떻게 추가로
발생하는 재고를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다.
쌀이 부족하지 않고 넘쳐나니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희소성이 사라진
자원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니다.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자유재'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진다. 고학(苦學)의 길을 택한 학생들이 거주하는 고시원에서도 최소한 밥은
공짜로 제공한다. 요즘 먹는 쌀이 대개 고양이 키우는 데 쓰는 모래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는 바람직할지 모르나
생산자로 시장에 참여하며 생계를 꾸려온 농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우리는 크게 두가지 정도의 해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소비자 후생을 위해 쌀의 희소성을 계속 낮춘다. 전면적 수입개방과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쌀을 극히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이 경우 재정상의
압박이 덜 해져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밥퍼 운동'의
사회화와 관공서나 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이 가능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지만 완전히 터무니없는 가설은 아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자유무역과 국가개입
으로 식료품 가격이 굉장히 싸다. 집에서 밥해먹지 않고 노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는게
일상적일 정도다. 그러나 국토면적이 서울보다 조금 작은 싱가포르에는 농민이 없어
자국 농민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314만 농민들의 어려움을
고려해야만 한다.
둘째,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쌀의 희소성을 높여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시킨다. 점진적으로 쌀 생산 농가를 줄이는 동시에 남는 재고를 없앤다.
재고를 없애는 세부적 방법으로는 북한이나 기타 가난한 국가들에 대해 남는 쌀을
지원하기, 정기적으로 거점을 잡고 국민들에게 쌀이나 쌀로 만든 간식을 나눠주면서
쌀 소비 진작 캠페인을 벌이기, 가축사료로 쓰기(이미 지난 2002년 남는 쌀 400만 톤을
가축사료로 쓴 적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 다국적 곡물 메이저들이 그러는 것처럼 바다에
버리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해법을 선택해야 할까? 역시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각각의 선택에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현재 정부는 두번째 방안을 택하고 있다. 두번째 방안 가운데에서도
재고처리에 관해서는 가축사료로 쓰는 방법을 가장 선호하는 듯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시민사회는 그 동안 남는 쌀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넘쳐나는
쌀을 가축사료로 쓰는 가운데 50만 명에 달하는 결식아동이 존재하고, 동시에 농민들이
쌀값 폭락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정상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민사회는 남는 쌀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글이 작은 고민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