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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 오스트롬과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
조기숙/전 청와대 홍보수석·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엘리너 오스트롬(76·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가 선정되었습니다. 오스트롬 교수는 경제학이론과 게임이론을 적용하는 정치학자이자 행정학자입니다.
대학원 시절 오스트롬 교수는 <이론정치학>이라는 학술지 편집장을 했는데 저를 조교로 발탁해주셨습니다. 저는 1년만 하고 그만뒀는데, 교수님이 자주 칭찬해 주는 게 부담이 되어서였습니다. 그 분의 기대가 너무 높아 그 분을 실망시키게 될까봐 제가 먼저 그만 둔 것이지요.
그 때만 해도 그 분은 학계에서 알아주는 대가였고, 다른 대가들을 학교에 초청해 저에게 안내를 하라고 소개하는 등, 저를 키워주기 위해 노력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문화적 차이라고나 할까요.
저도 교수가 되고 나서 오스트롬 교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에 격려하기 위해 칭찬을 한 것이지 꼭 그 기대에 맞추라는 의도는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오스트롬 교수는 제게 연구비를 주어 게임이론 실험을 하기도 했고, 저는 인디애나에 다시 가서 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그 분과 남편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워크샵이 있었는데 저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오스트롬 제자들이 다 모이는, 말하자면 홈커밍 행사 같은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검찰수사에 이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서 슬픔에 잠겨 참석할 엄두를 못 냈던 것입니다.
그러다 그 분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으니 너무 행복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살아계셨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유지 비극' 이론을 행정에 접목한 대통령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노 대통령과 오스트롬 교수의 인연입니다. 물론 두 분은 일면식도 없고 저를 통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노 대통령이 오스트롬 교수의 이론을 연결고리로,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노 대통령은 오스트롬 교수의 이론을 활용해서 행정에서 성공을 거두신 분입니다.
오스트롬교수의 이론은 ‘개인의 선택은 합리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문제에 천착하여 이를 해결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목동이 보다 많은 양을 키우기 위해 목초지에 풀어 놓으면(목초는 공짜이므로) 결국 목초는 고갈되고 모두 양을 키울 수 없게 된다는 인간사회의 모순을 비유한 말입니다. 이 이론은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을 설명하는데 사용됩니다.
공유지(혹은 목초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시장에 맡기라거나,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양극단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롬 교수는 자발적인 개인들의 자율적 규제에 의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공적인 예로 제3세계에서 마을 지역주민의 공동체가 저수지, 어장 등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꼽습니다.
오스트롬 교수의 이론을 행정에서 직접 생생하게 적용한 분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물론 노 대통령은 오스트롬 교수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오스트롬식 이론을 터득하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대통령께도 말씀을 드렸지만, 대통령께서 해양수산부 장관시절 어장을 관리하는 문제를 과감하게 지역주민에게 맡긴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 이야기는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감시보다 효율적인 스스로의 감시
대통령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난제 중의 하나는 불법어법 특히 소형기선 저인망 어업과 관련한 것이었다. 소형기저(해저면 부근에 가라앉는 긴 자루 모양의 그물(저인망)을 사용하여 조업하는 어업)는 연안에서 수산자원을 남획할 우려가 높아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현재 4 천척에 1만2천여 명이 종사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국어민총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합법화를 위한 시위도 하고 북한과 공동어로협정을 맺고 오기도 하였다. 정부는 저리의 융자를 주며 업종 전환을 유도하기도 하고, 강력한 단속도 했지만 소형기저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때로는 단속하는 공권력에 가스통을 폭발시키겠다는 등 자해하겠다는 등 공공연하게 공권력에 저항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8개월 동안 이 문제해결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못했는데 정부가 규제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강력한 단속을 하다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추락하는 공권력의 권위와 신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들은 먹고 살려고 하는데 뭐 그러느냐 하는 식으로 죄의식이 없었다. 의식 전환이 없이는 어떤 정책도 무용지물이라 느껴 자율관리형 어업부터 정착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바다와 자원에 대해 주인을 정해 주자는 것이다. 어업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때 불법어법도 고립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 믿었고 그 때가 되어야 단속이나 업종 전환의 유인도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나는 당시 <자율관리형 어업 구축방안>이란 홍보책자를 들고 어민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녔다.
또 하나의 사례는 김과 미역 값이 하락했을 때의 일이다. 토론 끝에 자발적 감축안을 제안했고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 후 어업인들이 자율적으로 김과 미역을 10% 생산 감축운동을 한 것이다. 자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실감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정부가 모든 것을 하기에는 감시비용이 너무 크다고 합니다. 어부들이 정부의 눈을 피해 수시로 물고기를 잡으면 씨가 말라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를 지역사회에 맡기자, 스스로 감시하면서 매우 성공적으로 관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무한한 신뢰
노 대통령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자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조차 비판을 하기에 이릅니다. 권력을 움켜쥐고 수구세력을 척결했어야 하는데 4대 권력기관을 자율화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정권이 바뀌고 나서 또 다른 집단에 의한 규제와 타율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궁극적으로 4대 권력기관이 제 자리를 잡는 것은 조직원들이 자율권을 한 번 맛보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내부적으로 자율을 실천한 새로운 세력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들이 언젠가는 질서를 잡아가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노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이런 경험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제도만 잘 만들어놓으면 국민은 합리적 선택을 통해 공공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이지요.
저는 노 대통령의 실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대통령의 노력은 결실을 볼 것입니다. 일단 자율을 한 번 맛본 조직원들은 지금 엄청난 외압 때문에 몸을 낮추고 있지만 기회가 닿으면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조직의 자율을 추구할 것이라고 봅니다.
오스트롬 교수의 이론이 노벨상 수상으로 학문적 공적을 인정받았으니 노 대통령의 실험도 결실을 볼 것이란 희망을 갖게 됩니다. 물론 오스트롬 교수의 제자인 제가 합리적 유권자 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요.
오스트롬 교수와 노 대통령의 이론적 연결고리를 뜻깊게 봐왔던 저로선 그 분의 수상소식을 접하며, 대통령이 더욱 그립습니다. 또 오스트롬 교수의 학문적 이론에서 우리 사회가 중요한 영감을 얻길 바랍니다. 그 분의 노벨상 수상을,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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