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사의 자동차 전시장이 통크게 광주시 청사 바로 앞에 들어섰다는 것에 더 화가난다”
광주시 청사 건너편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는 전시장 철수와 더불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전시장은 지난 달 25일 광주시청 맞은편에 개장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서는 두 번째다.
특히 지난 9일 한글날에는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할머니들이 시위에 나서 관심을 끌었다.
앞서 이틀 전 7일에는 강제합병 100주년을 맞아 신임 일본총리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에게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과 보상을 촉구하는 격문(檄文)을 보낸 바 있는 광주 효광 중 김선호 교장이 1인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시민모임에서는 내년 5월까지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10만 서명운동을 전개한다는 것과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전시장이 철수 할 때까지 1인 시위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무기한 시위를 해야만 하는가! 왜 미쓰비시사의 자동차 전시장이 광주 시청사 앞에 들어서면 안되는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최대 군수업체가 미쓰비시사다. 우리에게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미쓰비시사의 자동차 전시장이 광주시 청사앞에 들어섰다는 것에 더 화가난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계속된 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소녀와 여성을 취업이나 진학을 미끼로 유인, 군수공장인 미쓰비시사 등에 투입했다.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12세~14세 소녀들이 주로 모집됐다고 한다. 그들은 일본최대 군수업체였던 미쓰비시 중공업의 군용 항공기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야 했다. 임금 또한 전혀 받지 못하는 열악한 조건에서 인권유린에도 시달려야 했다.
이 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조선인 소녀들은 약 400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일본정부의 사죄와 미쓰비시사의 임금착취와 관련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7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상고심 재판에서 일본최고재판소는 ‘기각’ 판결을 내렸다.
강제노동 등 피해 사실은 인정받았음에도 1965년 맺은 ‘한일청구권’ 협정이 결정적 패소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1999년부터 약 10년간에 걸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은 일본에서의 사법적 구제의 길이 막혀 현재 80세 이상의 피해자들의 한 가닥 희망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서글픈 역사속의 피해자들. 우리들이 외면하고 잊고 지낸 사이 피해자들은 80세 노모가 되어 지금 서럽디 서러운 울음을 토해 내고 있는 것이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우리를 대신한 역사의 피해자들이다. 그것도 전범 기업의 미쓰비시 자동차를 광주에서 팔겠다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몰염치한 행위다. 우린 1인 시위뿐 아니라 불매 운동 등 다양한 반대운동을 무기한 전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광주시민들은 “미쓰비시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나 과거사를 듣다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반응이다.